나라 망치는 ‘똑똑한 인재’

발행일 2020-11-01 14:35:4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 논설위원

한국인의 일류 선호는 유별나다. 속칭 SKY로 대표되는 일류 대학과 삼성, 현대 등 일류 기업에 대해 무한 애정을 보인다. 일류 대학 출신들은 나라의 인재가 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들은 변호사 시험과 고시를 통과해 판·검사가 되거나 행정부의 고위 관리가 된다. 또 의대를 졸업, 의사가 되는 이도 상위 1%의 인재들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다수가 국가를 이끄는 인재들이다.

얼마 전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며 우리나라의 정치와 행정의 현실을 꼬집은 적이 있다. 그는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웠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인재 90%를 싹쓸이한다고 한다. 각 분야의 인재들이 앞에서 끌고 국민들은 피와 땀을 쏟아 우리나라는 어느덧 세계12위 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인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분야별로 일류가 많으면 그만큼 국가 위상도 높아지고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구성원 모두가 일류라고 해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면 누가 근로자와 청소부 일을 하겠는가. 사회는 일류도 있고 이류도 있어야 하며 삼류, 사류가 어우러져 돌아간다.

-재주는 넘치나 덕이 부족한 사람 수두룩

이건희 회장의 사람 보는 안목은 특별했다. 그는 야구의 포수에게 관심이 많았다. 속칭 ‘포수형 인재’다. 항상 쭈그리고 앉아 투구를 리더하는 포수가 없는 야구는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게 승패를 좌우하는 포수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일만 잘하는 사람은 상사만 바라보는 해바라기형 관리자를 양산하는데 미래 사회에선 휴먼네트워크 즉, 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도자의 오만과 편견이 나라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도 없는 것 같다. 혐오와 막말을 일삼고 부여받은 권한을 조자룡 헌칼쓰듯 휘두르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본인들은 온갖 편법과 탈법을 일삼으면서도 내로남불하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아파하거나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면서 주위를 돌아본 적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만과 독선, 편벽함이 이들의 특징이다. 자신만이 유일한 선이고 진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되레 조직을 해치게 된다. 오직 위만 바라볼 뿐 국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 백서’를 출간, 세간의 관심을 끈 경산 문명고의 교육 목표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2018년 국정교과서 파동으로 유명세를 치른 홍택정 이사장이 내세운 교육 목표는 ‘난 사람 보다 된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나라 어지럽히는 ‘난 사람’보다 ‘된 사람’ 필요

그는 “난 사람이 나라를 위해 기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난 사람은 오히려 나라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된 사람은 바라는 것이 적고 난 사람은 바라는 것이 많다고도 했다. 홍 이사장은 “잘 나지 않아도 제할 일, 제 몫을 다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문명고의 목표”라며 된 사람으로 만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홍택정은 문명고의 학교법인 2대 이사장이다. 그는 학교 설립자인 선친 홍영기 이사장의 뒤를 이어 학교 법인을 이끌고 있다. 고 홍영기 이사장은 학교 교육과 사학 수호를 위해 불꽃 투혼을 불사른 이다. 5·16민족상을 수상했고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청도에 새마을 정신을 심고 뿌리내리게 한 사람이다.

자치통감에 ‘德勝才(덕승재-덕이 재주를 이긴다)’라는 말이 나온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나라를 어지럽힌 신하나 집안을 망친 자식은 재주는 넘치나 덕이 부족한 이들이 많았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의 일류 대학을 향한 교육열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인간 됨됨이는 뒷전인 채 일등만 목표 삼은 때문이다. 일류와 최고만을 좇다가 자칫 괴물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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