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65) 의성 비나리농원

발행일 2020-07-01 16: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마늘 재배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청년 강소농

100가지의 이로움이 있다는 일해백리의 주인공 너는 누구니? 나 마늘이야

농튜버 ‘시골소녀 하이디’의 농촌생활 엿보기 구독자 10만 만들기

부가가치가 높은 마늘 가공과 면적 확대로 소득의 안정화

부부가 마늘의 수확 적기를 판단하기 위해 마늘을 뽑아서 살펴보고 있다.
지구 상에 수많은 민족과 국가는 자신만의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건국신화는 민족이나 국가의 기원이다. 우리에게는 단군신화가 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를 열고 인간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기도를 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곰은 사람이 되었고, 환웅과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았다. 우리 민족의 시조다.

수많은 채소 중에서 마늘이 단군신화에 등장한 것은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늘을 일해백리(一害百利)의 채소라고 한다. 강한 마늘 향을 제외하면 무려 백가지의 이로움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단군신화에 마늘이 등장한 이유일 것이다.

마늘종(줄기)을 뽑는 모습, 마늘종을 뽑아 주면 마늘이 굵어지는 데 도움이 된다.
양념 채소로 분류되는 마늘은 항균·항암작용과 함께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식탁의 감초로 부를 만큼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이 마늘에 청춘을 걸고 농촌으로 들어온 청년 농부가 있다. 의성군에서 마늘을 재배하는 ‘비나리농원’의 안희동(40)·김현진(34)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마늘 1만㎡와 벼 4천㎡를 재배하면서 자신만의 꿈을 키우는 청춘이다.

◆왕초보의 귀농을 환영한 농심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아내가 생면부지의 농촌으로 들어왔다. 귀농보다는 창농(創農)에 가깝다. 가진 것은 열정뿐이었다.

수확 후 덕장에서 건조작업 중인 마늘 모습, 난지형 마늘이다.
안 대표는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도시농업 일손지원센터를 드나들다가 농촌을 접했다. 과수와 버섯농장을 견학하고 일손을 거들면서 재미를 느꼈다. 일은 힘들지만 스트레스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좋았다.

가족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농사일이 재미있고 정년 없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다는 말로 아내를 설득했다. 그 길로 귀농투어를 시작했다. 2017년 의성 산수유축제장에서 은인을 만났다. 주택과 농지를 소개해 주겠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부부가 마늘 싹을 비닐 밖으로 뽑아 올리는 유인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주택도 그때 소개받은 집이다. 처음 논을 살 때도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흥정했다. 주민들은 젊은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데 조금 싸게 팔라고 논 주인을 설득했다. 덕분에 아주 싼 값에 2천㎡의 논을 살 수 있었다. 임차 농지도 구했다. 마늘 주산지라 모두가 마늘농사에는 박사다. 주민들은 수시로 마늘 논에 들러 재배기술도 알려준다. 2018년에는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돼 3년간 매달 100만 원씩 받은 지원금도 영농정착에 큰 힘이 됐다.

◆최고 품질의 마늘 생산은 물관리

마늘은 국민 양념인 만큼 소비자들은 품질에 민감하다. 따라서 안 대표의 관심도 품질관리에 있다. 고품질을 위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배수 관리다. 마늘은 습해에 약해 수분이 많으면 생장이 지연되고 품질도 떨어진다.

농튜버 ‘시골소녀 하이디’가 스마트폰을 활용해 유튜브 영상물을 촬영하고 있다.
원활한 물관리를 위해 관리기를 이용해 3회 정도 배토 작업을 해 고랑을 25㎝ 정도 높게 만든다. 생육과정에는 수시로 토양 속의 수분함유량을 점검해 관수 여부를 결정한다. 이랑관수를 통해 한 번에 충분한 물을 주고 빼는 방식으로 관수작업을 한다.

안희동 대표가 경운기에 부착된 파종기를 활용해 마늘 파종 작업을 하고 있다.
안 대표는 한지형과 난지형을 함께 재배한다. 한지형은 11월 초에 파종해 다음해 6월에 수확하고, 난지형은 9월에 파종해 다음해 5월에 수확한다. 따라서 한지형은 수확 이후에 벼를 심는 이모작이 가능하지만 난지형은 이모작이 어렵다.

시골소녀 하이디로 불리는 김현진 대표가 트랙터로 로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성 육쪽마늘은 한지형이다. 수확량은 난지형이 1.5~2배 정도로 많지만 가격은 한지형이 2~3배 정도 높다. 한지형은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으며 마늘 특유의 향과 매운맛이 강해 김장용 마늘로 많이 찾는다.

◆전통시장 자리 잡기

재배는 안 대표가 하지만 판매는 아내인 김 대표의 몫이다. 그런데 김 대표의 마케팅 솜씨가 탁월하다. 지난해 8월 경산지역 목요장터에 마늘을 싣고 나갔다. 하지만 정해진 자리가 없어 한쪽 모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마침 옆자리에 할머니가 이삭 주운 자잘한 마늘을 까서 팔고 있었다. 용돈 벌이라고 했다.

안희동 대표가 수확한 마늘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대표가 자잘한 마늘 버리고, 직접 수확한 것을 판매하라며 좋은 마늘 한 접(100개)을 건넸다. 두 경쟁자(?)는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수다를 떨면서 마늘을 팔았다. 할머니는 깐 마늘을 팔고, 김 대표는 통마늘을 팔았다. 헤어질 때 할머니가 고맙다면서 칠성시장 지하철 출구 옆에 자기 자리가 있으니 내일부터 거기서 마늘을 팔라고 했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한지형 마늘인 의성 육쪽마늘(오른편)과 난지형 마늘의 모습.
전통시장에서 노점 자리는 모두 주인이 정해져 있고, 좋은 자리를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김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지하철 운행시간이 되자 마늘은 불티나게 팔렸다. 3시간 만에 가지고 간 700㎏을 모두 팔았다. 품질과 가격, 좋은 자리가 맞아떨어졌다. 가격표시제를 한 것도 한몫을 했다. 아침부터 가격을 물어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주부들의 심리를 알고 접근한 마케팅기법이 적중했다.

소상공인진흥회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가격표시제를 실시한 점포의 매출이 11.5% 증가했으며, 이것은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진 결과로 분석했다. 진심을 담은 마늘 한 접으로 대형 전통시장의 노른자 자리를 얻고, 가격표시제로 완판을 기록한 것은 김 대표의 타고난 마케팅 능력인지도 모른다.

◆농튜버 시골소녀 하이디

올해 들어 유튜브를 시작했다. 능숙한 인터넷 활용 능력을 농사에 접목한 것이다. 거창한 내용과 화려한 영상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마늘을 심고 가꾸는 모습과 같은 소소한 모습들을 올린다.

한지형 마늘인 의성 육쪽마늘(앞쪽)과 난지형 마늘의 모습.
마늘을 캐고 묶어서 덕장에 걸어 자연 건조를 시키는 작업도 보여준다. 트랙터 운전법을 배우면서 남편으로부터 핀잔을 받는 모습도 그대로 들어 있다. 구독자 수와 상관없이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 무엇보다 마늘의 모든 모습을 알려준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아직 구독자가 300명에도 못 미치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지형인 의성 육쪽마늘 모습.
지난 5월에 올린 ‘마늘종 장아찌 담그는 법’이란 24초용 영상물은 조회 수가 1만7천 회를 넘어섰다. 앞으로는 농장의 일상뿐만 아니라 농촌마을 모습과 어르신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 줄 계획이다. 유튜버 ‘시골소녀 하이디’의 꿈은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해 실버버튼을 받는 것이다.

◆초보농부 농촌 정착기

초기 정착은 쉽지 않았다. 도시와 농촌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농촌은 오후 8시만 되면 암흑천지로 변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보안등만이 홀로 마을을 지킨다.

안 대표는 그 어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나마 밝은 빛이 있는 읍내로 핑계를 만들어서 나갔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위안이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다독인 것은 이웃 주민들이었다. 마음을 붙이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새마을지도자를 맡겼다. 의용소방대에도 가입해 주민들과 어울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도 느꼈다.

수확한 마늘농장 모습.
지금은 귀농귀촌모임 총무직도 맡아 활동한다. 마을 이장을 맡으라는 요청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고사하고 있다. “농촌과 농업을 모르던 우리가 이 정도라도 자리를 잡은 것은 이웃 주민들의 배려 덕분이었다”면서 “이제는 농촌에서의 삶의 재미가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한다.

◆마늘 가공으로 부가가치 UP

귀농 4년차 초보농부에게 농촌은 희망이지만 등락을 거듭하는 농산물 가격은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풍년에는 가격이 내려가고 흉년에는 팔 물건이 적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가공을 계획하고 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단순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계획이다.

깐 마늘과 다진(분쇄) 마늘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모든 농산물이 그렇듯이 마늘도 1차 가공만을 거쳐도 부가가치는 크게 높아진다. 또 5만㎡ 정도로 면적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화로 소득의 안정화를 도모할 계획도 갖고 있다.

가공을 통해 이웃농가와 윈윈 할 수 방안을 찾고 있는 청년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도시로 몰려갈 때 농부가 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했던 ‘짐 로저스’의 말이 떠올랐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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