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 (6) 고령 관음사 신중도

발행일 2020-05-12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괴질이 지구촌을 뒤덮어 기본적인 사회시스템 마저 흔들리고 있다. 인간은 병고로부터 속절없이 고통을 받게 되면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게 된다. 바로 지금이 종교에 관계없이 명상과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기독교의 성화나 사찰의 불화도 경배의 대상이 된다. 신중도(神衆圖)라는 불화의 형태가 있다. 예로부터 절 집 내부 벽면에 가장 많이 장엄되고 있다. 신중도는 말 그대로 여러 신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불교 발상지 인도에서는 이미 여러 종교가 있었는데 그들의 신은 불교와 다투는 대신 부처님을 지키는 호법신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가 유입되면서 원래 있던 토착 신앙을 흡수하게 되는데 산신과 용왕, 칠성이 불교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모든 제신들이 불화에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신중도는 불교가 다른 종교와 교류한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그림이다. 신중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구촌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교적 메시지나 지혜라도 찾아보려는 것이다.

◆안정된 구성과 섬세한 기법의 고령 관음사 신중도

지난해 3월25일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관음사 신중도’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3호로 지정됐다. 1908년 금어(金魚)인 원일(圓日)과 진규(眞珪)에 의해 제작된 화면 119.8×112.2㎝ 크기의 불화이다. 금어는 불모(佛母)라고도 불리며 불화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이 불화는 하단의 붉은 색 화기(畵記)를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자, 봉안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처음 조성 당시의 사연도 적혀 있다. 원래 해인사 백련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했었다. 함경남도에 사는 박씨라는 여 신도가 세상을 떠난 남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단독시주했다. 안정된 구성과 섬세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후기 불화의 정통성을 계승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기록하고 있다.

고령 관음사에는 신중도 외에도 2점의 문화재가 더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2호 ‘아미타여래도’와 2017년 5월2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84호로 지정된 관음사 칠성도이다. ‘아미타여래도’는 신중도와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고 동시에 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됐다. 이 불화는 관음사의 주불전인 관음전의 후불화로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이 서방 정토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화면의 정중앙에 아미타여래가 연화대좌에 앉아 있으며 좌우 협시로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4위가 유희좌 형식의 자세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유희좌는 한쪽 다리는 세우고 다른 한쪽은 대좌 아래로 내려뜨린 자세를 말한다. 그 뒤 편으로 가섭, 아난, 지장보살을 포함한 4위의 보살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아미타여래의 배경으로 법신에서 퍼져 나오는 오색파장의 광채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칠성도에 대하여 문화재청은 화기를 통해 1892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 제작자, 시주자 등 제작체계와 후원자를 알 수 있어 이 시기 불화 연구에 있어 기준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 칠성도는 인물의 얼굴과 옷주름 등에 명암법을 도입하여 입체적인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고 했다. 병풍을 배경으로 마치 단체 사진 찍듯 존상들을 배치한 형식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마스크를 단단하게 착용하고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색채의 연등들이 절 집 마당에 가득 걸려있는 고령 관음사를 찾았다. 현재 당우로는 정면의 관음전을 중심으로 칠성각과 산신각, 천불전, 범종각 그리고 요사채가 있다. 1911년 합천 해인사의 포교당으로 창건되었고 1956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관음사에서도 대한불교 조계종의 방침에 따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및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이 진행되고 있다. 한달 동안 전국 1만5000여 사찰에서 진행되는데 회향식은 5월30일(음력 윤달 4월8일) 열린다.

인적 없는 관음전에 올라 삼배를 올리고 신중도 앞에 섰다. 불단 우측 벽면 유리 액자 속에 장엄되어 있다. 합장하고 고요히 바라보니 그 속의 신중들이 일제히 깨어나 웅~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극적인 순간을 보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1백 년 전, 한 화승의 지극 정성이 있었다. 작가들은 매일 목욕재계하고 항상 깨끗한 옷을 입으며 말도 하지 않는 등 철저한 계율을 지켰고 법식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수행의 연장으로 색채 작업을 했으며 이를 바라보는 신도들에게 환희심을 느낄 수 있는 불화로 완성시켰다. 경전에 나오는 여러 보살과 수호 신장들을 그린다고 해서 형상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 그려내야 한다.

관음사 신중도에는 황금투구를 쓰고 금강저를 든 ‘위태천(韋太天)’이 화면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뒤편으로는 역삼각형 구도로 좌측에 범천, 우측에 제석이 배치돼 있다. 주변으로 천녀와 천동, 일천·월천대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 하단에 무장한 천룡팔부 신중 4위가 일렬로 배치돼 있다. 그런데 이 신중도의 중심인물인 위태천은 질병 퇴치를 담당하기도 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코로나가 불러온 거리두기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리스 신화처럼 재미있는 스토리가 연결된다.

◆하루빨리 괴절이 사라지길 기원하며

위태천은 인도 서사시의 시기인 기원전 600년경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브라만 즉 바라문의 신이었다가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이 되었다. 열반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비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왕 첩질귀(捷疾鬼)가 갑자기 나타나 불사리를 빼앗아 달아났다. 이때 위태천은 즉각 뒤쫓아 수미산 정상까지 달려가 상대를 제압하고 무사히 찾아왔다고 한다, 높이 132만km로 알려진 눈 덮힌 수미산을 한순간에 뛰어올랐다는데 흔히 달리기를 잘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경 약찬계에 나오는 첩질귀도 빛처럼 발이 빠르고, 순식간에 사리를 낚아챈 것으로 보면 날렵한 귀신으로 여겨진다. 원래는 괴질과 병을 옮기는 야차이며 사천왕의 부하였다. 중생에게 고통을 주는 코로나19는 현대판 서질귀라 할 수 있겠다. 위태천은 그를 누르고 이겼으니 신중도의 중앙에 그려 넣어질 자격이 있는 것 같다. ‘위장군’, ‘위태보살’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일본 프로야구계에서는 도루 잘하는 발빠른 야구선수를 ‘이다텐’이라 부르기도 한다. 위태천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지금은 스포츠의 신으로서, 또 아이들의 병을 재빠르게 제거하는 신으로서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존재가 되어 있다. 신중도의 위태천 앞에서 다리와 허리 건강을 빌고 도난 방지 대한 기원도 한다. 인도의 힌두 신화에서는 창이나 그 밖의 무기를 쥐고 공작새를 타고 다닌다. 위태천은 불탑의 도굴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형상은 금박 찬란한 새깃털장식이 있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합장한 팔 위에 칼 혹은 금강저를 가로질러 놓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의 목판화인 ‘소자본묘법연화경’등에서 사경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으로 등장했다. 조선시대 신중탱화에서는 무장들을 이끄는 대장격으로 나타난다. 불경을 간행할 때 권두 또는 권말에 동진보살 즉 위태천을 판각해서 경전의 수호를 상징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관음사 신중도 하단의 무장한 호법 신중들은 위엄 있는 기세로 눈을 부라려 위협하거나 단호함을 드러낸 표정이다. 대조적으로 위태천의 얼굴은 둥글 넙적하며 단정한 이목구비에 무표정하게 묘사하였다. 그래서인지 중앙에 위치하며 정면을 직시하는 시선에서 더욱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신중들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험과 불가사의한 힘을 기대한다. 한 달 간 전국 사찰에서 펼쳐지는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이 잘 회향되어 신중도 위태천의 위신력이 발휘되기를 기원해 본다. 글·사진=박순국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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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신중도의 위태천은 금박 새깃털장식이 있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다. 중앙에 위치하면서도 무표정한 시선에서 오히려 강한 에너지를 느낀다.


고령 관음사 신중도는 불단 우측 벽면의 유리 액자 속에 장엄되어 있다. 모든 제신들이 불화에 묘사되어 있어 다른 종교와 교류한 역사를 알 수 있는 그림이다.
고령 관음사 주불전인 관음전이 아름다운 색채의 연등들 사이로 보인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신중도와 아미타여래도가 걸려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고령 관음사의 사천왕문.
국가등록문화재 제684호로 지정된 관음사 칠성도가 걸려있는 칠성각.
중앙에 아미타여래가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아미타여래도. 법신에서 퍼져 나오는 오색파장의 광채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84호로 지정된 고령 관음사 칠성도. 마치 단체 사진 찍듯 배치한 형식이 특이하다.


필자 박순국 인물사진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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