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슬기로운 ‘내 방 여행하는 법’

발행일 2020-03-31 14:55:1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슬기로운 ‘내 방 여행하는 법’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예상 외로 길어지고 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할 일없이 보내는 일상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힘들다. 이 무료한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들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공유되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달고나 커피’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달고나 커피는 커피가루와 설탕을 넣은 데다 뜨거운 물을 부은 후 400번 정도를 휘저어 만든 커피다.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집콕’ 생활이 이어지며 시간 때우기용 놀이로 발전했다. SNS에서는 서로 레시피를 공유하거나 인증샷을 올리는 등 인기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이런 활동들이 평소 같으면 귀찮아서 어디 거들떠보기나 할 법한 일인가. 그래도 약 1천 번 정도 휘저어야 만들 수 있는 수플레 계란말이라든지, 수시로 물을 줘야 하는 콩나물 키우기 등이 인기있는 걸 보면 시간 보내기용으로는 안성맞춤인 듯하다.

라디오 듣기도 한 방법이다. 어저께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어느 FM라디오를 듣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와 메모를 해두었다. ‘내 방 여행하는 법’(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장석훈 옮김, 유유, 2016)이란 책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1790년 어떤 장교와 당시 불법이었던 결투를 벌인 후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그때 그가 집 안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쓴 글이 바로 ‘내 방 여행하는 법’이다.

“나는 내 방 여행을 하면서 곧바로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탁자에서 시작해 방 한구석에 걸린 그림 쪽으로 갔다가 에둘러 문 쪽으로 간다. 거기서 다시 탁자로 돌아올 요량으로 움직이다가 중간에 의자가 있으면 그냥 주저앉는다.”

책은 자신의 방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매일 사용하면서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 안의 물건들을 보고 느낀 독특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크지 않은 방 안에서도 느낄 수 있는 42일간의 상념의 여행인 셈이다.

대구에서 31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딱 42일이 지났다. 200년 전 그의 방 안 여행은 42일로 끝났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대구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사회적 불안·우울 현상(코로나 블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책임져야하는 엄마들의 아우성이 인스타그램에도 터져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말고 주방과 거리 두고 싶다’ ‘평생 한 요리보다 최근 한달간 더 많이 한 듯’ ‘유치원 조리사님 보고파요 흑흑’ ‘세끼 준비+설거지=백시간’…

이젠 엄마들의 코로나블루를 떨쳐버릴 ‘내 주방 여행하는 법’을 온가족이 고민해야 할 듯하다. 주방 여행하기에 온가족이 함께 하는 거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에서 만든 ‘코로나19 심리 방역을 위한 마음건강 지침’을 참고할 만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 외에 가족, 친구, 동료와 소통을 지속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소통은 물론 온라인 소통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심리적 거리는 가까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지만 늘어난 개인시간을 잘 활용만 한다면 소소한 성장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을 고민해볼 법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1790년대보다 현재의 내 방은 흥미로운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은가. 정해진 기일은 없지만 어차피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켜야 하는 법, 내 방을 유람하며 이왕 할 거 제대로 해 보는 거다. 방 안의 사물들과의 대화도 좋지만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나의 내면과의 대화도 필요하지 않겠나.

그의 말마따나 ‘자신의 방을 여행하면 거기서 얻는 기쁨이 사람들의 성가신 질시에 잡칠 일도 없으며 무슨 대단한 경비가 들지도 않는다’

그래도 강제로 떠난 ‘내 방 여행하기’가 일상이 될 수는 없다. 이 여행이 오래가지 않아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땐 늦은 봄꽃나들이라도 떠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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