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빵 부스러기에 거는 기대

발행일 2020-01-15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살다 보면 참 많은 경험을 하게 되지만, 기억에 남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설혹, 기억에 남아 있더라도 아주 또렷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라는 6하 원칙에 맞춰 재구성할 수 있는 기억은 손에 꼽을 만 할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경험 대부분은 아마도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 속의 저장장치나 어디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데이터센터, 혹은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경험이 언제든 타인의 손에 의해 6하 원칙을 충족시키는 데이터로 가공되어 어떤 이에게는 엄청난 기회를 창출하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처럼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구매 패턴, 결제 방법, 구매 이력 등과 같은 전자상거래 기록은 물론 SNS, 이메일, 홈페이지 방문 및 검색 이력 등과 같은 개인 생활 전반에 걸친 흔적들 즉,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디지털 데이터로 남아 축적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부를 창출할 기회를 모색하는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빵 부스러기처럼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 이른바 디지털 빵 부스러기(Digital Breadcrumbs)를 얼마나 잘 수집, 가공,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 나아가서는 산업 및 국가 경쟁력의 우열이 갈리는 시대가 되었다. 철강이나 반도체와 같이 오래 전부터 빅데이터가 미래산업의 원유 혹은 쌀로 불려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 등과 같은 선진기업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쟁원천은 다름아닌 열심히 모은 디지털 빵 부스러기와 이를 가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AI(인공지능)와 같은 첨단기술은 그 자체로 훌륭한 상품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부의 원천을 가져다 줄 디지털 빵 부스러기를 활용한 비즈니스모델 개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전통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잘 만들고 잘 팔아 수익만 남기면 끝인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무한책임을 지고 서비스 가능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이고, 그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빅데이터다. 엘리베이터 제조업체인 티센크루프, 일본의 대형 종합건설장비 업체 코마츠와 히타치, 타이어 업체 미쉐린 등 수많은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화를 통해 큰 성과를 얻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난주 우리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빅데이터) 3법 개정안이 우리 기업이나 산업 및 경제에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빅데이터의 활용에 관한 불필요한 중복규제가 없어지게 됨에 따라 정보 활용 폭을 넓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3개 법률과 감독기구가 일원화되어 이전까지 있어 왔던 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불필요한 중복규제는 앞으로 사라질 것이다. 특히, 기업들은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에 명시되어 있는 ‘가명 정보’를 이용하면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향후 우리 기업들은 개인정보 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기존 비즈니스모델을 변화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함으로써 경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이런 기회를 살려 적극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려간다면 우리 경제도 그 동안 약화되었던 성장 잠재력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데이터 3법 개정안 통과로 그 동안 이루지 못했던 우리 기업들의 큰 숙원 하나가 이뤄진 셈이 되었다. ‘가명 정보’라는 새로운 쌀을 가지고 밥을 지을지, 아니면 떡이나 과자 혹은 빵을 만들지 선택은 이제 오롯이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몫이 되었다. ‘가명 정보’가 디지털 빵 부스러기에 그칠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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