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52) 문경 산모롱이

발행일 2019-12-18 09:35: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제대로 된 쉼(休)이 있는 곳, 산모롱이 농장

맛이나 봤나? 10년 숙성 발효곶감의 참맛

귀틀집과 목천목 공법으로 지은 황토펜션에서의 휴식

이창순 대표와 남편 이경구씨가 황토방에서 발효곶감 상자를 들고 있는 모습. 24개를 6면체 모양의 상자에 포장해서 판매한다. ‘대화’라는 브랜드는 자연의 속도대로 자연과 교감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신선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까? 구름을 타고 산 위를 나르고 물가를 거닐며 솔잎을 먹고살까?”라는 물음에 “신선이 따로 있나요?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면 바로 신선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문경의 황장산(해발 1,078m)과 대미산(해발 1,115m) 사이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강소농 부부는 소박하고 해맑은 모습이었다. 신선은 아니지만 신선이 된 기분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언제나 ‘그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고객을 맞는다.

부부는 문경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이라는 동로면에서 발효 곶감을 만들고 황토 팬션을 운영한다. 산모롱이의 이창순(64) 대표와 남편 이경구(66)씨가 주인공이다. 발효 곶감과 황토 팬션, 자연밥상을 차려 내면서 연간 8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농장이름인 산모롱이는 산모퉁이의 휘어 들어간 곳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담아지었다.

이창순 대표와 남편 이경구씨가 올해 깎아서 건조 중인 곶감을 살펴보고 있다.
◆ 부부의 역할을 바꾸고 싶어

이 대표의 직업은 전업 주부였다. 결혼 이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만 하며 살았다. 남편은 토목업에 종사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북도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일했던 상주에 정착하려고 준비했으나 지인의 소개로 문경 황장산 자락으로 옮겼다.

이창순 대표와 남편 이경구(왼편)씨가 이흥우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과 함께 곶감의 건조 방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대표가 서로 나중에 혼자 될 때와 노후를 위해 역할을 바꾸어보자고 제안했다. 경제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도 가정살림을 맡아서 해보겠다고 동의했다. 노후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았다. 딱히 떠오르는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상주에 있을 때 이웃의 곶감 만드는 것을 도와준 것이 떠올랐다.

남편인 이경구씨가 곶감을 깎고 있는 모습.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곶감에 도전했다. 첫해에 4만 개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리가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경제활동의 첫 발걸음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토목기술을 응용해 황토집도 증축했다. 이제는 10년 숙성된 특별한 발효 곶감과 진정한 휴식이 있는 황토 팬션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소로 변모시켰다.

◆ 10년 숙성된 발효 곶감은 어떤 맛일까

발효 곶감의 탄생은 우연이었다. 2008년에 시작한 곶감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축적되면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러나 판매가 문제였다. 냉동창고에는 쌓이는 재고만큼 걱정도 쌓여갔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곶감은 애물단지였다. 어느 날 유명 농산물 쇼핑몰 대표와의 만남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요즘도 이런 무유황 곶감을 만드는 농가가 있나요. 하얀 가루는 ‘만니트’라고 하는 것으로 당분 결정체로 천식 등 성인병에 효과가 있습니다”라면서 상품을 세상에 내어 놓자고 했다.

4년 숙성곶감(위쪽)과 햇곶감, 색깔과 모양이 많이 다르다.
곶감은 본래 발효 식품인데 많은 사람이 단순히 감을 건조한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서 아주 귀한 것을 만났다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재고로 남아 있던 곶감은 발효 곶감 ‘대화’라는 브랜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는 곶감의 진수(眞髓)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날개를 달았다. 발효 곶감은 제조과정에 유황훈증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살균을 위해 야생오미자 청과 감식초를 바르고 장기간 냉동고에서 발효(숙성)과정을 거친다. 현재까지는 10년간 발효(숙성)시킨 것이 가장 긴 기간이다.

건조 중인 곶감 모습.
발효(숙성)기간이 길수록 색깔이 검어지고 굳어지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다. 처음 출발은 우연이었으나 지금은 한 해에 5만 개를 만들어 3만 개를 햇곶감으로 판매하고 2만 개는 발효(숙성) 곶감으로 만든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고객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10년 숙성된 발효 곶감은 1상자(24개)에 25만 원으로 부가가치도 높다.

◆ 숨 쉬는 황토방의 휴식

황토로 지은 팬션은 참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도시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백두대간 종주 등산객들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으로 추천하는 곳이다. 황토 팬션은 애초에 구입한 황토집에 토목기술자인 남편이 1년간에 걸쳐 증축했다. 황토와 나무만을 사용했다. 벽체는 귀틀집과 목천목 공법으로 쌓고 지붕은 통나무를 반쪽으로 켠 나무 너와를 사용했다. 벽체는 두께가 50㎝나 되어 보온효과가 크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자연형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통기성이 좋아 숨 쉬는 집이라고 부른다. 습도가 높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항상 쾌적한 상태가 유지된다.

9년간 숙성되고 있는 발효곶감, 끈기가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기다림의 미학이다.
순수한 황토는 사용하면 강도는 높으나 건조과정에 균열이 발생하고 마사토가 혼합된 황토는 통기성은 좋으나 점도가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사토가 섞인 황토를 사용하면서도 볏짚을 썰어 넣지 않고 황토를 숙성시키는 공법을 사용했다. 황토를 물로 반죽하고 비닐로 완전히 밀봉해 15일 이상 숙성을 시켜서 사용했다. 숙성된 황토는 점도가 2배로 높아진다. 숙성을 통해 마사토가 섞인 황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집을 지으면서도 이런 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황토방은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 아토피가 심한 자녀와 함께 하룻밤을 묵었던 어느 고객은 아이가 긁지 않고 밤에 잠을 잤다면서 일정을 바꾸고 일주일간 머물렀다. 황토 팬션을 이용한 대부분 고객의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용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 약이 되는 자연 밥상

숙박객들이 주문하면 자연밥상을 차려 준다. 산나물 위주로 차려주는 약밥상이다. 고기나 생선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월악산국립공원인 대미산과 황장산 일대에서 채취한 산나물이 주재료다. 곰취를 비롯해 오가피, 머위, 다래순, 당귀, 왕고들빼기, 차조기, 참나물, 엄나무순, 우산나물 등 없는 나물이 없다. 이런 야생 산나물로 산나물밥과 산채정식, 산채 쌈밥을 만든다.

9년간 숙성시킨 발효곶감.
자연밥상의 특징은 묵 나물(삶아서 말린 나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산나물이라도 삶아서 말리면 색깔이 검어지고 고유의 향이 줄어든다. 그래서 산에서 채취한 나물을 바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에 급속냉동시킨다. 사용할 때 필요한 만큼 꺼내어 해동을 시키면 방금 산에서 채취한 것처럼 파란색과 향이 살아있다. 물론 산나물의 특성에 따라 묵 나물로 만드는 것도 있다.

조리과정에도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산나물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웰빙 산채식이다. 이런 자연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부부는 봄철이 되면 매일같이 배낭을 메고 해발 1천m가 넘는 산을 오르내린다. 이 자연밥상은 산나물의 진한 향에 몸이 정화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용자들의 평이다.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어 숙박객들이 직접 밥을 지어서 먹을 수도 있다.

◆ 거꾸로 가는 체험장을 만들고 싶어

이 대표가 던지는 화두는 한결같다. ‘그대 제대로 쉬어 본적이 있는가’ 스스로 ‘휴드림 연구가’를 자처한다. 인공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보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한다. 그 고민의 결과물로 세상을 거꾸로 느껴보는 야생체험을 계획하고 있다.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원시적인 삶을 잠시라도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일회용품과 비누도 없는 체험장, TV와 에어컨, 전자레인지와 같은 전자제품 없이 지내는 체험이다. 휴대전화와 게임, 책과 잠시 이별을 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도시문물과의 교류를 잠시 멈추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31년 만에 개방하는 황장산의 원시림을 걷고, 대미산 약수계곡에서 물놀이도 즐긴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웰빙 산채식과 무유황 발효 곶감을 맛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 된다. 물론 없는 것이 더 많은 체험이라 힘은 들겠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원시와 야생으로 돌아가는 거꾸로 가는 체험이 기대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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