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발행일 2019-11-27 15:10:4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환승/ 전선용

암울한 시간이 동굴처럼 막막해서/ 시계부속이 오류를 일으키며 째깍거립니다// 나는 가고 너는 오는 다리 위에서/ 고독이야말로 죽기 좋은 명분/ 가장 어둡고 밝은 교차로 0시/ 도시가 벚꽃처럼 집니다// 밝아올 아침은 흐드러진 꽃 따위와 상관없이/ 어제까지 막장 드라마를 보았고/ 클라이맥스가 뻔해서 슬프게 웃었습니다// 소주 둬 병을 들이켠 민낯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기척 없이 다가온 호명에 고개를 숙입니다/ 안온한 죽음을 부르는 꽃비가 계절을 덮을 때// 짐승이던 내가/ 비로소 사람 말을 합니다// 나는 이제,/ 순탄할 뿐입니다

- 시집 『지금, 환승중입니다』 (도서출판 움, 2019)

“이제야 사람 말을 한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그것들을 옮겨 적는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사실과 또 사람만큼 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집 맨 앞 ‘시인의 말’ 일부다. 이 진술만으로 ‘환승’의 의미를 희미하게 짐작한다. 환승은 갈아탄다는 뜻이다. 예전엔 일본어 ‘きりかえ’란 말을 곧잘 쓰곤 했다. 방향을 전환하거나 갱신할 때엔 반드시 어떤 동기나 계기가 있으리라. 지하철의 경우 환승역이겠는데, 인생으로 치자면 선택의 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처음 탄 열차에 그냥 앉아있으면 누군가 정해 놓은 종착지에 도달하겠으나 내가 원하는 곳은 아니다. 내가 바라고 목적하는 곳으로 가자면 가던 길을 바꾸어 갈아타야 한다.

‘환승’은 또 다른 선택지이자 가능성이다. ‘나는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시간은 가고 숱한 질문이 웅성거린다. 그러나 한 순간에 번민과 갈등을 덮어버리고 ‘그래, 지금이 내릴 때야’ ‘내려서 다른 열차를 기다려야해’라고 결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내린 곳이 바로 ‘환승역’이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사람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거나 꿈과 현실이 동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인은 ‘짐승이던 내가 비로소 사람 말을 합니다’ 다르게 살아보고자 하는 각성이었는지, 문학적 환경 변화가 터닝 포인트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거나 심오한 이유일지도.

‘어제까지 막장 드라마를 보았고 클라이맥스가 뻔해서 슬프게 웃었’다고 한다. ‘고독이야말로 죽기 좋은 명분’이라고 한다. 삶이란 아득한 침몰을 향해 운행하는 열차 위의 생이란 걸 알아챈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거스르거나 목적지를 변경할 수 없다는 사실도 눈치 챘으리라. 죽음이란 숙명의 강물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 이것만 생각하면 삶이란 참으로 절망스럽다. 사람의 정신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만 절망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키르케고르도 절대고독은 절망이고, 그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절대고독이 짙고도 깊어진 상황에 처했을 경우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한다.

그만큼 위험이 커졌을 때라야 절대고독에 빠져든다. 한 여성 연예인의 안타까운 죽음도 그러했으리라. 절망하는 자는 어떤 대상에 대해 절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인 것이며, 그래서 자신을 삭제해 버리려는 충동에 휩싸인다. 이것은 모든 절망의 공식이다. 죽음의 구원은 죽음을 번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다. 시인은 긴 방황 끝 ‘환승’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고 희망을 건져낸다. 그 변곡점에서 문학적 열망도 탑재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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