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 칸

발행일 2019-11-07 14:52:2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지상의 방 한 칸 /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 시집『밤에 쓰는 편지』(청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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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가 깊은 숲속을 자유로이 휘젓고 다녀도 쉴 곳은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도 그 배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장자는 말했다. 안분과 자족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말처럼 간단치 않은 일이다. 내 몸 하나 맘 편히 누일 ‘지상의 방 한 칸’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시름에 찬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상천지 솟은 게 아파트고 늘린 게 집이라지만, 주택난은 투기가 기승을 부렸던 80년대만의 사정은 아니다. 이 시가 발표된 게 80년대이고 그보다 먼저 박영한의 소설 ‘지상의 방 한 칸’이 나온 것도 80년대이다.

아이가 여럿인 경우 셋방 하나 얻는 것도 여간 까다롭고 힘든 게 아니었다. 생애최대의 과제이자 꿈이 내 집 마련이고 내 집 대문 앞에다 자기 이름을 새긴 문패를 대못으로 쾅쾅 박는 거였다. 남자가 가장 비참한 생각이 들 때가 아이들 먹고 싶은 것을 주머니 사정으로 사주지 못할 때와 주인집 눈치 보느라 제 자식 맘껏 뛰어놀게 하지 못하고 동선을 단속할 때다. 행여 주인집 아이가 심술을 부려 애들끼리 쌈질이라도 하면 눈물을 삼키며 제 자식을 야단 치고 돌아서서 울었다. 지금이야 이런 식의 설움을 겪는 이가 얼마나 될까만 예전엔 그랬다.

이 시는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밖에 없는 시인으로서의 자조적 연민이 가득하다.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을 겪지 않은 사람은 그 설움을 모른다.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근으로 아프고’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쓰라림 뒤에 집장만의 감격을 알지 못한다. 살면서 누구든 환희의 날이 없진 않겠으나, 전월세로 떠돌다가 집칸을 장만하여 첫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만한 환한 기쁨이 어디 있으랴. 운 좋게도 나는 1987년 목동에 조그만 아파트 하나를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오른 전세금을 감당 못해 자꾸만 외곽으로 빠지거나 월세로 내몰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나지금이나 내 집 소유의 의미는 크다. 전전긍긍한 삶을 살았던 경험을 가진 사람일수록 내 몫의 방 한 칸은 곤한 육신을 눕힐 공간인 동시에 자본주의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자구책이며 대항수단이기 때문이다. 소유가 아닌 주거개념으로서의 주택이란 점잖은 말도 있으나 호시탐탐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에선 무안하기 그지없는 언사다. 80년대처럼 부동산 불패 신화를 굳세게 믿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집값 안정을 말하면서도 내 이익과 관련해서는 다른 생각의 주머니를 찬다. 수도권, 특히 강남 집값은 언제나 심상찮았다. 나는 목동아파트를 1억 몇 천에 처분하고 서울을 떠나는 그 순간 루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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