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갈등과 성장률

발행일 2019-05-08 16:16:0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사회적 갈등과 성장률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6만8,315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집회 및 시위 건수다. 하루 평균 187건에 달하는 집회와 시위가 전국에서 발생한 셈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58%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야간 집회가 허용된 지난 2010년 5만4,212건을 넘어서는 역대 최고치다.

지금 국내에서는 노동문제부터 주요 기업 및 인프라 입지, 환경, 위안부 및 전후 배상 문제 등 외교, 국방, 국내 정치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친 이슈에 관한 정책 의사결정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폭발 중이다.

통상 사회적 갈등은 이의 해소를 위한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인 정책 의사결정으로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상호 갈등 관계에 있는 이해집단들뿐 아니라 로비스트, 정부, 정치인 등이 경쟁을 제한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른바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 behavior)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나 사적 이익 편취는 사회 전반의 후생수준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이 역기능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표출되지 않은 갈등은 해결할 수 없다. 문제는 표면화되지 않은 사회적 갈등이 마치 휴화산처럼 응집된 폭발력을 한 번에 발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해결하기도 힘들뿐더러 가늠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표출된 사회적 갈등은 잘 관리만 할 수 있다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그 해소 과정에서 쌓은 경험은 자라나고 있는 갈등의 싹을 사전에 발견해 더는 자라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OECD에서도 사회적 갈등 수준이 높은 나라에 속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또한 막대하다.

실제로 한국의 사회적 갈등 수준을 추정해보면 OECD 회원국들이나 G7 국가들의 평균보다 약 20% 정도 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며 이는 현재 2% 후반대에 있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3% 수준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평가된다. 즉, 사회적 갈등을 잘 관리만 한다면 우리 경제가 지금보다는 훨씬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대통령령으로 ‘공공기관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여 시행함으로써 공공사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예방 또는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전에도 중앙정부와 국회 등에서 일상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관리해 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또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노동문제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 문제나 사회 양극화 등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 관리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실효를 거두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최근 들불처럼 번지는 사회적 갈등의 여파는 식을 줄 모르고 오히려 더 거세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탓인지 요즘은 누구 할 것 없이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 같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사회를 구성하기 전의 인간의 자연상태가 전쟁이었다는 사실, 더군다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전쟁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자기보존 즉 지금의 지대추구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극한의 갈등상태를 경계한 바 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면 홉스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외롭고, 빈곤하며, 더럽고, 야만적일 뿐 아니라 짧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고, 우리 경제와 사회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은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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