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날갯짓으로 얻은 가장 ‘순수한 꿀’ 그대로 채밀…고객 신뢰도 ‘으뜸’

발행일 2019-04-25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7> 칠곡 한오백벌꿀 농장

스포츠맨에서 양봉가로 변신한 강소농

깨끗하고 고품질을 고집하는 양봉 농가

150m 청정지하수 공급해 깨끗한 꿀 생산

조선의 영조임금은 ‘연월일시(年月日時)’가 ‘갑을병정…’으로 시작하는 천간 중에서 모두가 갑(甲)인 특별한 사주(四柱)다. 흔히들 사갑(四甲)이라고도 하고, ‘봉황지격’이라고 하여 귀한 사주로 여겼다.

영조가 관상감(觀象監)의 관리를 불러 사주를 보게 하자, “제왕의 사주입니다”라고 답했다. 자신과 같은 사주를 가진 백성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명을 내렸다.

조선 팔도를 샅샅이 뒤져 강원도 산속에서 벌을 키우는 노인을 찾아 궁으로 데려왔다. 노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너는 나와 같은 사주로 태어났는데 어찌 이렇게 궁색한 모습으로 사는가?”하고 묻자, 노인은 “전하께서는 조선팔도, 360 고을에 있는 수많은 백성을 다스리시지만, 소인은 아들 8형제가 360통의 벌통에서 수많은 꿀벌을 키우고 있으니, 전하와 소인의 사주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영조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큰상을 내리고 돌려보냈다. 영조 임금은 자신과 같은 ‘제왕의 사주’를 가졌다면, 혹시 역모를 꾀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으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비록 ‘제왕의 사주’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300여 통의 벌을 키우면서 자신의 작은 왕국을 가꾸어 나가는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에서 ‘한오백벌꿀농장’을 운영하는 한오현(60)·박인숙(53) 부부다. 한 대표는 벌꿀과 화분, 프로폴리스, 로열젤리를 생산해 연간 6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스포츠맨의 변신

한 대표는 귀농 8년 차의 양봉인이다. 귀농하기 전 30년간은 스포츠맨으로 살았다. 선수와 지도자를 겸하면서 헬스장도 운영했다. 한 대표의 운동 실력은 대단하다. 국궁을 비롯해 검도, 합기도, 헬스트레이너 자격까지 갖췄다.

그러나 2011년부터 불기 시작한 자치단체와 기업들의 실업팀 해체 바람은 대구·경북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업팀 해체는 비인기 종목에 집중됐다. 국궁 선수 겸 지도자로 활동하던 한 대표도 갈 곳을 잃었다.

평생 운동 외 다른 일은 해보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전직을 한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때 같이 운동을 하던 선배가 양봉을 권했다. 하지만 꿀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많은 망설임 끝에 꿀벌 10군(통)을 구입해 양봉을 시작했다.

이후 농민사관학교 양봉학과정을 수료하고, 많은 교육과 실습을 해 이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가로 변했다. 현재 300여 군을 키우고 있지만, 많을 때는 500군이 넘을 때도 있다. 이제는 각지에서 초청을 받는 양봉 전문 강사로도 활동한다.

◆자연을 닮은 순수한 꿀

한 대표가 양봉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가장 순수한 꿀, 자연을 닮은 꿀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꿀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은 유별나다. 아카시아 꿀이 멈추지 않고 들어오는 5월에도 자주 채밀을 하지 않는다. 봉방(벌집의 6각형 방)에 꿀이 가득 차더라도 벌들이 날개짓으로 수분을 증발시키고 완전히 밀봉한 후에야 채밀한다.

밀봉하기 전에 채밀하고, 수분을 증발시키는 농축작업을 하면 훨씬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욕심을 내지 않는다. 벌들이 스스로 만드는 자연스러운 천연의 꿀을 얻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어떤 꿀이 좋은 꿀인지 알 수가 없다. 한오백벌꿀은 판매하기 전에 양봉협회 양봉부산물연구소의 품질검사를 거친다. 한 드럼당 30만 원의 검사비용이 들어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소비자들이 믿고 좋은 꿀을 구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스마트스토어에서도 MD들이 직접 검증을 거친 후에 등록시킨다는 ‘푸드 윈도’에 등록되어 있다. 한번 구입한 고객은 바로 단골이 되는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매실 먹여 질병 예방

다른 가축이나 농작물처럼 꿀벌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병충해다. 믿기지 않지만, 벌들도 설사한다. 꿀벌들이 이동할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 꿀벌들이 설사하고 꿀벌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설사하는 꿀벌들에게는 매실 진액을 공급한다. 항생제 대신에 매실 진액을 공급해 설사를 막는다. 사람들이 배탈이 났을 때 민간요법으로 매실 진액을 마시는 것과 같은 원리다. 홍삼 원액을 공급할 때도 있지만, 값이 너무 비싸서 지금은 중단했다.

‘낭충봉아병’도 큰 피해를 준다. 한번 발병하면 애벌레들이 썩어버려 벌통 전체가 큰 피해를 입는다. 방제법은 항생제를 뿌리는 방법뿐이다. 어쩔 수 없이 최소량만 사용한다. 방제보다는 예방 위주로 적기에 사용해 사용량을 줄인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아직 각종 검사에서 항생제가 검출된 사례는 없다. 한오백벌꿀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이러한 한 대표의 노력 덕분이다. 친환경적인 사양관리와 철저한 품질관리가 고품질의 꿀로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 양봉 성지 칠곡

칠곡은 양봉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양봉업을 하는 농가에서는 칠곡 신동재에서 아카시아꿀 채취에 실패하면, 그해 양봉은 실패했다고 한다. 신동재 일원에 100만 평 규모의 아카시아 군락지가 있기 때문이다.

5월이 되면 신동재 일원에는 전국의 양봉 농가들이 몰려든다. 꽃보다 꿀벌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양봉하는 농가에서는 제주도에서 유채꿀을 채취하면서 벌을 증식하고, 신동재에서 아카시아 꿀을 채취한 후, 파주나 철원 등지로 이동해 2차로 아카시아 꿀을 채취하는 과정을 거친다.

칠곡의 신동재는 ‘양봉의 성지’라고 할 만큼 양봉 농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아카시아 벌꿀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5월4일과 5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2008년에는 칠곡군 일원이 ‘양봉 특구’로 지정됐다.

◆ 양봉 종합체험농장으로 전환

한 대표의 꿈은 양봉 종합체험장을 만들고 6차산업화로 나가는 것이다. 지난 8년간의 노력으로 양봉기술을 충분히 다졌다고 자부하지만, 자연 의존도가 너무 높은 1차산업형 양봉으로는 안정적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언제 어떤 예상치 못한 자연환경의 변화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꽃들이 위도와 고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동시에 개화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환경변화에 대응해 6차산업으로 나가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꿀과 밀랍을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체험농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후에는 앞쪽에 있는 저수지와 논을 활용해 캠핑장을 만들고, 눈썰매장과 물놀이장도 구상 중이다.

이런 계획들이 마무리되면, 휴식과 체험을 겸한 종합체험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자연 의존형 양봉에서 6차산업형 농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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