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가장 닮은 색 ‘쪽빛’ 아름다운 우리 비단 명주에 물들다

발행일 2019-03-27 11:44:3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5> 상주 명주이야기

색깔의 마술사 명주이야기

가장 자연스러운 색을 담아내는 천연염색 ‘쪽’

금의환향처럼 비단옷은 명예와 부의 상징하는 품격 있는 옷

남편은 천연염색을 하고 부인은 명주한복을 만든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색깔이 있다. 천연의 색도 있고 인공의 색도 있다. 광전식 분광 광도계라는 기계를 사용해 구분할 수 있는 색의 종류는 약 400만 가지 정도라고 한다. 색깔의 세상이라고 할 만하다.

이 많은 색 중에서 가장 자연과 닮은 색으로 ‘쪽빛’을 꼽는다. 하늘빛을 닮은 푸른색깔이다.

‘쪽빛’은 ‘쪽’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염료로 염색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색이다. 산업화에 밀리고, 염색과정이 어려워 이제는 흔히 보기 힘든 색이다.

상주에서 ‘쪽’을 재배하고, ‘쪽염색’을 하는 강소농 부부가 있다. 전광채(57) 대표는 ‘명주이야기’를 운영하고, 부인인 김영미(53) 대표는 ‘함창명주’를 운영하는 비단전문 부부다.

‘명주이야기’ 농장에는 1천㎡의 밭에 ‘쪽’을 재배한다. 그 쪽물로 명주를 염색해 한복을 만들고, 규방공예와 한복자수, 스카프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연간 1억5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알짜배기 강소농이다.

◆36세에 ‘명주’를 만나다.

전 대표는 고령이 고향이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줄곧 대구에서 살았다. 36살이던 1996년에 상주 함창에 들렀다가 운명처럼 명주(비단)로 만든 ‘수의’를 만났다.

‘명주 수의’는 옷감 중에서는 최고인 명주로 만든 마지막 옷이다. 이승에서 못다한 부귀영화를 저승에서나마 누리게 하는 후손의 마지막 예우로 명주 수의를 선호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수의는 맨몸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비단옷을 입고 저세상으로 돌아가는 ‘금의환향’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복자수를 전공한 부인과 뜻이 맞아 상주 함창에 눌러 앉았다. 그길로 함창에서 전통수의업을 하는 ‘영광의류제복사’라는 업체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월급도 거의 없는 견습생이었다.

IMF시절이라 수의업도 불황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불황을 타개할 방안을 찾던 중 ‘지금은 라디오시대’라는 방송에 사연을 보냈다. ‘윤달에 수의를 마련하면 좋다’는 사연과 함창명주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내용이 전파를 타면서 대박이 났다.

방송이 나간 후 전국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주문이 쏟아졌다. 한동안 호황세가 계속됐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사장이 전 대표에게 “사업을 물려받으라”고 권했다.

2000년에 ‘영광의류제복사’를 물려받았다. 20년 째 ‘함창명주와 명주이야기’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쪽염색을 하면서 한복과 생활한복, 규방공예품 등을 만들고 있다.

◆6남매 다둥이가족

전 대표는 딸 다섯에 아들 하나를 둔 다둥이 아빠다. 여섯자녀를 키우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자녀가 많은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많은 식구가 살다보니, 항상 부족한 것이 많았다. 옷은 한번 사면 아래로 물려가면서 입었다. 예쁜 옷은 임자가 없다. 먼저 입는 사람이 임자다. 사정이 이러니 아침마다 옷 쟁탈전이 벌어진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언니는 동생의 과외교사다. 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힘은 들지만, 그만큼 가족의 정이 깊어지고 자녀들의 사회성도 늘어난다.

올해 29살의 큰딸은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다. 20살의 넷째는 올해 부산에 있는 유명대학에 진학했다. 딸 넷은 서울 대전 구미 부산 등 전국에 흩어져 산다. 집에는 부부와 아직 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이 함께 생활한다.

예전에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이웃에서 저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느냐고 걱정을 했지만, 모두 건강하게 자랐고, 제 몫의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주말에 6남매가 한자리에 모이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를 하고 가족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조금 더 큰집을 지어야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요즘 전 대표는 “제가 이래뵈도 애국자 아닙니까?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으니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최고의 명품 함창명주

전국에서 유명한 명주 주산지는 진주와 공주, 상주 함창 등 3곳이다.

‘진주명주’는 현대식 직조기를 이용해 생산하는 22인치 중폭명주다. ‘유구명주’로 알려진 공주명주도 44인치의 광폭명주로 주로 옷을 만들 때 안감으로 사용한다.

반면에 함창명주는 15인치의 소폭명주를 전통방식으로 생산한다. 고급 한복을 만들 때는 주로 함창명주를 이용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돋보인다는 것이 함창명주에 대한 세간의 평이다. 그래서 함창명주는 자수는 물론 금박이나 은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명주는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차광이 되는 장롱 속에다 보관한다.

명주는 세상에서 가장 긴 실이다.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명주실은 한 가닥에 대략 1천300m에 이른다. 1m 남짓한 삼베와 비교하면, 그 길이가 가늠이 된다. 목화로 만든 면은 7cm 정도다.

이렇다보니 명주실은 직조과정에 삼베나 목화처럼 실을 이어붙일 필요가 없다. 긴 섬유를 여러 가닥의 실로 꼬아서 만들기 때문에 이불이나 옷에서 먼지가 발생하지 않고, 민감한 피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토피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명주옷을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주시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생애 최초의 선물로 ‘명주 배냇저고리’를 선물한다. 출산장려시책의 일환이면서 보드라운 아기피부를 생각하는 상주시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 쉽고도 힘든 쪽 염색

천연염색인 ‘쪽’염색은 쉽고도 어려운 이중성이 있다. 염색의 원료인 쪽은 재배가 쉽다. 3월에 파종을 하고, 4월에 밭에다 옮겨 심는다. 가장 더운 7월에 첫 수확을 하여 3번까지 수확한다.

수확한 쪽을 3일 동안 물에 넣고 불리면 염료성분이 녹아난다. 여기에 공기와 석회를 넣어서 흡착을 시키면 진흙처럼 된다. 이걸 ‘니람(앙금)’이라고 하는데 쪽면염의 원료다.

문제는 염색과정이다. 니람을 물로 희석하고 7일 정도의 환원과정을 거친다. 쪽물 속에 남아 있는 용존산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완전한 환원이 일어나면, 명주 천을 넣고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3~4회 정도 염색을 반복하고 다시 산화발색을 시킨다.

마지막으로 물로 세척해 알카리성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견뢰도(염색물의 빛깔이 외부의 여러 조건에 대해 견디는 저항성)가 높아져 탈색이 되지 않는다. 쪽염색이 어렵다는 것은 니람의 환원과 산화발색 과정이 까다로워 원하는 색깔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말이다.

◆ 2월은 전화위복의 달

요즘은 명주한복이 인기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5~60대가 주요 고객이다. 주로 자녀의 결혼과 관련한 상견례와 결혼예복으로 많이 입는다. 상견례에는 생활한복을, 결혼식에는 전통한복을 입는다.

결혼식이 많은 봄과 가을이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윤달이 되면 수의를 장만해 두려는 가정이 늘어나 호황을 이룬다. 그러나 음력2월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2월은 바람달이라고 한다. 2월에 결혼을 하면 그 바람 때문에 결혼생활에 파탄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2월 결혼은 가급적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5년 전쯤 어느 해 2월에는 보름 동안 손님이 단 한명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전 대표는 그때 “이렇게 해서 먹고 살기나 하겠는가?” 하는 고민을 하다가 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쪽 농사를 시작했다. 농촌기술센터와 기술원에서 많은 교육도 받았다. 그 교육이 사업에도 도움이 돼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처음에는 원단과 수의 판매로 시작해 이제는 천염염색과 원단가공, 생활한복까지 사업을 확대하게 된 것이다.

◆두 가지의 꿈

전 대표의 꿈은 두 가지다. 쪽 염색에 전념해 천연염색의 명인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염색기술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을 6남매 중에서 어느 하나에게 전수시켜 쪽 염색의 명문가로 대를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큰딸이 뒤를 잇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다른 꿈은 조금 유별스럽다. 지역풍물단에서 상쇠를 하는 전 대표는 동부민요를 배워 상주지역의 문화유산과 연계시켜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동부민요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동쪽인 경상도와 강원도, 함경도 지방에서 부르는 민요를 말한다. 동부민요 명창 박수관 선생으로부터 동부민요를 전수받은 김범영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전 대표를 비롯한 20명의 회원들이 매주 1회씩 소리공부를 하고 있다.

김 범영 전수자는 2015년 대한민국 동부민요전국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실력파 소리꾼이다. 전 대표도 지금은 각종 지역문화행사에 초청받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소리꾼이됐다. 고객들 앞에서도 민요를 자주 부른다.

염색이든 민요든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노력하는 전대표의 열정을 볼 때 그 꿈은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