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65) 의성 비나리농원

지구 상에 수많은 민족과 국가는 자신만의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건국신화는 민족이나 국가의 기원이다. 우리에게는 단군신화가 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백두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를 열고 인간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기도를 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곰은 사람이 되었고, 환웅과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았다. 우리 민족의 시조다.수많은 채소 중에서 마늘이 단군신화에 등장한 것은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늘을 일해백리(一害百利)의 채소라고 한다. 강한 마늘 향을 제외하면 무려 백가지의 이로움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단군신화에 마늘이 등장한 이유일 것이다.양념 채소로 분류되는 마늘은 항균·항암작용과 함께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식탁의 감초로 부를 만큼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이 마늘에 청춘을 걸고 농촌으로 들어온 청년 농부가 있다. 의성군에서 마늘을 재배하는 ‘비나리농원’의 안희동(40)·김현진(34)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마늘 1만㎡와 벼 4천㎡를 재배하면서 자신만의 꿈을 키우는 청춘이다.◆왕초보의 귀농을 환영한 농심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아내가 생면부지의 농촌으로 들어왔다. 귀농보다는 창농(創農)에 가깝다. 가진 것은 열정뿐이었다.안 대표는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도시농업 일손지원센터를 드나들다가 농촌을 접했다. 과수와 버섯농장을 견학하고 일손을 거들면서 재미를 느꼈다. 일은 힘들지만 스트레스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좋았다.가족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농사일이 재미있고 정년 없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다는 말로 아내를 설득했다. 그 길로 귀농투어를 시작했다. 2017년 의성 산수유축제장에서 은인을 만났다. 주택과 농지를 소개해 주겠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현재 살고 있는 주택도 그때 소개받은 집이다. 처음 논을 살 때도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흥정했다. 주민들은 젊은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데 조금 싸게 팔라고 논 주인을 설득했다. 덕분에 아주 싼 값에 2천㎡의 논을 살 수 있었다. 임차 농지도 구했다. 마늘 주산지라 모두가 마늘농사에는 박사다. 주민들은 수시로 마늘 논에 들러 재배기술도 알려준다. 2018년에는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돼 3년간 매달 100만 원씩 받은 지원금도 영농정착에 큰 힘이 됐다.◆최고 품질의 마늘 생산은 물관리마늘은 국민 양념인 만큼 소비자들은 품질에 민감하다. 따라서 안 대표의 관심도 품질관리에 있다. 고품질을 위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배수 관리다. 마늘은 습해에 약해 수분이 많으면 생장이 지연되고 품질도 떨어진다.원활한 물관리를 위해 관리기를 이용해 3회 정도 배토 작업을 해 고랑을 25㎝ 정도 높게 만든다. 생육과정에는 수시로 토양 속의 수분함유량을 점검해 관수 여부를 결정한다. 이랑관수를 통해 한 번에 충분한 물을 주고 빼는 방식으로 관수작업을 한다.안 대표는 한지형과 난지형을 함께 재배한다. 한지형은 11월 초에 파종해 다음해 6월에 수확하고, 난지형은 9월에 파종해 다음해 5월에 수확한다. 따라서 한지형은 수확 이후에 벼를 심는 이모작이 가능하지만 난지형은 이모작이 어렵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성 육쪽마늘은 한지형이다. 수확량은 난지형이 1.5~2배 정도로 많지만 가격은 한지형이 2~3배 정도 높다. 한지형은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으며 마늘 특유의 향과 매운맛이 강해 김장용 마늘로 많이 찾는다.◆전통시장 자리 잡기재배는 안 대표가 하지만 판매는 아내인 김 대표의 몫이다. 그런데 김 대표의 마케팅 솜씨가 탁월하다. 지난해 8월 경산지역 목요장터에 마늘을 싣고 나갔다. 하지만 정해진 자리가 없어 한쪽 모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마침 옆자리에 할머니가 이삭 주운 자잘한 마늘을 까서 팔고 있었다. 용돈 벌이라고 했다.김 대표가 자잘한 마늘 버리고, 직접 수확한 것을 판매하라며 좋은 마늘 한 접(100개)을 건넸다. 두 경쟁자(?)는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수다를 떨면서 마늘을 팔았다. 할머니는 깐 마늘을 팔고, 김 대표는 통마늘을 팔았다. 헤어질 때 할머니가 고맙다면서 칠성시장 지하철 출구 옆에 자기 자리가 있으니 내일부터 거기서 마늘을 팔라고 했다. 뜻밖의 선물이었다.전통시장에서 노점 자리는 모두 주인이 정해져 있고, 좋은 자리를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다음날 새벽 할머니는 김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지하철 운행시간이 되자 마늘은 불티나게 팔렸다. 3시간 만에 가지고 간 700㎏을 모두 팔았다. 품질과 가격, 좋은 자리가 맞아떨어졌다. 가격표시제를 한 것도 한몫을 했다. 아침부터 가격을 물어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주부들의 심리를 알고 접근한 마케팅기법이 적중했다.소상공인진흥회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가격표시제를 실시한 점포의 매출이 11.5% 증가했으며, 이것은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진 결과로 분석했다. 진심을 담은 마늘 한 접으로 대형 전통시장의 노른자 자리를 얻고, 가격표시제로 완판을 기록한 것은 김 대표의 타고난 마케팅 능력인지도 모른다.◆농튜버 시골소녀 하이디올해 들어 유튜브를 시작했다. 능숙한 인터넷 활용 능력을 농사에 접목한 것이다. 거창한 내용과 화려한 영상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마늘을 심고 가꾸는 모습과 같은 소소한 모습들을 올린다.마늘을 캐고 묶어서 덕장에 걸어 자연 건조를 시키는 작업도 보여준다. 트랙터 운전법을 배우면서 남편으로부터 핀잔을 받는 모습도 그대로 들어 있다. 구독자 수와 상관없이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 무엇보다 마늘의 모든 모습을 알려준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아직 구독자가 300명에도 못 미치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지난 5월에 올린 ‘마늘종 장아찌 담그는 법’이란 24초용 영상물은 조회 수가 1만7천 회를 넘어섰다. 앞으로는 농장의 일상뿐만 아니라 농촌마을 모습과 어르신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 줄 계획이다. 유튜버 ‘시골소녀 하이디’의 꿈은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해 실버버튼을 받는 것이다.◆초보농부 농촌 정착기초기 정착은 쉽지 않았다. 도시와 농촌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농촌은 오후 8시만 되면 암흑천지로 변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보안등만이 홀로 마을을 지킨다.안 대표는 그 어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나마 밝은 빛이 있는 읍내로 핑계를 만들어서 나갔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위안이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다독인 것은 이웃 주민들이었다. 마음을 붙이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새마을지도자를 맡겼다. 의용소방대에도 가입해 주민들과 어울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도 느꼈다.지금은 귀농귀촌모임 총무직도 맡아 활동한다. 마을 이장을 맡으라는 요청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고사하고 있다. “농촌과 농업을 모르던 우리가 이 정도라도 자리를 잡은 것은 이웃 주민들의 배려 덕분이었다”면서 “이제는 농촌에서의 삶의 재미가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한다.◆마늘 가공으로 부가가치 UP귀농 4년차 초보농부에게 농촌은 희망이지만 등락을 거듭하는 농산물 가격은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풍년에는 가격이 내려가고 흉년에는 팔 물건이 적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가공을 계획하고 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단순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계획이다.깐 마늘과 다진(분쇄) 마늘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모든 농산물이 그렇듯이 마늘도 1차 가공만을 거쳐도 부가가치는 크게 높아진다. 또 5만㎡ 정도로 면적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화로 소득의 안정화를 도모할 계획도 갖고 있다.가공을 통해 이웃농가와 윈윈 할 수 방안을 찾고 있는 청년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도시로 몰려갈 때 농부가 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했던 ‘짐 로저스’의 말이 떠올랐다.▲농장명: 비나리농원▲농장주: 안희동·김현진▲구입문의: 010-7204-2506▲소재지: 의성군 사곡면 신리길 72-16▲이메일: binarifarm@gmail.com▲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inarifarm▲유튜브: youtube.com/시골소녀하이디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64) 고령 사랑뜰농원

참외는 달고 아삭한 식감이 다른 과일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노란색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서일까 참외는 눈으로 먼저 먹고, 입으로 한 번 더 먹는다고 한다.그럼 이처럼 맛있는 참외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정인지와 김종서 등이 쓴 ‘고려사’에 참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을 볼 때 참외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외(瓜), 첨과(甛瓜), 참외(眞瓜), 왕과(王瓜), 띠외(土瓜), 쥐참외(野甛瓜) 등으로 불렸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국보 제94호 ‘청자참외모양병’이다. 고려 인종의 능인 장릉에서 발굴된 고려청자이다. 높이 22.8㎝로 참외 모양의 동체(중심부분)와 참외꽃 모양의 아가리, 치마 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있는 화병이다. 단정하고 세련된 형태로 예술성이 높다는 평을 받는다.1천여 년 전에 참외 모양의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참외가 널리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참외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토종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30년 동안 참외농사를 지어온 토종 농사꾼을 만났다. 고령에서 ‘사랑뜰농원’을 운영하는 나영완(53)·이수경(51)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참외 8천여㎡와 딸기 4천여㎡를 재배해 연간 2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30년 동안 참외를 재배했다. 5년 전부터 소득 안배를 위해 딸기도 재배한다.◆새농민상에 빛나는 전문농부나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3년간 섬유회사에 근무하다 농촌으로 들어왔다. 그때 23살이었다. 마을에 청년은 아무도 없었다. 농촌으로 들어오자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젊은 사람이 왜 농촌으로 들어오느냐, 장가도 가기 어렵다”는 게 주변의 인사였다.아버지의 건강이 이유라고 했지만 농촌이 좋고 농사일이 좋았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고 한다. 1990년 3월 주변 반대에도 고향으로 들어와 농사일을 시작했고, 9월 이 대표를 만나 결혼을 했다. 한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농사일은 오롯이 부부의 몫이 됐다.아버지 농사를 이어받아 30년이 됐다. 2천600여㎡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참외를 재배했다. 아침저녁으로 덮고 벗기는 볏짚 거적으로 보온해야 하기에 일손이 많이 들었다. 완전 수작업이어서 재배 면적 확대도 어려웠다.당시 부직포 덮개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모두가 머뭇거렸다. 처음 보는 부직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대표가 도전에 나섰다. 성공이었다. 일손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덕분에 재배 면적도 넓힐 수 있었다. 1만3천여㎡까지 늘렸으나 5년 전에 딸기재배를 시작하면서 현재 규모로 조정했다.작물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면서 아침마다 농장 구석구석을 살피는 나 대표는 전형적인 농부의 모습이었다. 지역사회 활동도 열성적이다. 4H 활동을 시작으로 농영경영인회 등 많은 농민단체 활동을 했었다. 다산면 이장협의회장과 새마을협의회장을 맡아 지역사회를 이끄는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부부는 2018년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하는 ‘새농민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달고 맛있는 참외 비결은 땅심올해로 참외재배 경력만 3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3번 바뀐 시간이었다. 참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은 짧았다. “땅이다.”모든 작물의 기본은 땅이라고 했다. 나 대표는 그 땅을 가꾸고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주기적으로 토양검사를 실시하고 완숙퇴비를 사용해 땅심을 돋운다. 한우 10마리를 키우는 것도 퇴비를 얻기 위한 것이다. 우분은 1년 이상 완숙해서 사용한다.토양 소독도 철저하다. 매년 6월 참외수확을 마치면 비닐하우스에 물을 가득 채우고 로터리 작업을 실시해 축적된 염류를 제거한다. 이때 한 달 이상 비닐하우스 문을 완전히 닫고 태양열로 내부 온도를 올려 소독한다. 내부 온도는 60~70℃, 지온은 40℃ 정도로 올라간다.높은 온도로 병해충의 없애는 것이다. 토양소독만 잘해도 다음해 병해충 발생은 많이 줄어든다. 그만큼 방제비용도 줄어든다. 전문 농사꾼의 재배기술은 단순해 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노하우였다. 딸기 하우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딸기에 대한 도전과 실패5년 전에 참외를 줄이고 딸기재배를 시작했다. 농사가 직업이니 어느 작목이라도 자신이 있었다. 연동하우스를 짓고 본격적인 재배에 나섰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눈길도 많았으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모든 작물 재배의 기본원리는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주변 걱정에 “양식 요리사가 라면을 끓일 줄 모르겠느냐”고 빗대어 답했다. 농사에 대한 자신감인지, 자기 과신인지 모른다.품질이 좋다는 종묘상의 말만 믿고 일본 품종 모종을 구입해 심었다. 딸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희망도 자랐다. 그러나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달리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렸으나 기다리는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비닐하우스에 쪼그리고 앉아 딸기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드문드문 달리기 시작했으나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자체 육묘기술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다음해도 같은 모종을 심었으나 결과는 같았다.2년 연속 참담한 실패였다. 일본산 모종 결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종묘는 관리 부실이라고 우겼다. 모종이 잘못됐다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연간 1억5천만 원의 조수익을 예상했으나 2천만 원 남짓 건졌다. 자재비에도 턱없이 모자랐다.2년간의 소득 공백을 메워 준 것은 참외였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세 번의 실패는 없다는 생각에서 모종 꺾꽂이(삽목) 기술을 익혔고, 이제는 직접 생산해 사용한다. 지금은 국산 딸기인 ‘설향’을 재배해 본 궤도에 올라섰다.◆딸기로 뭉친 다산딸기조합농민들이 뭉쳤다. 같은 마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7농가가 ‘다산딸기조합’을 만들었다. 2016년 조합을 구성하고 공동으로 홍보와 체험을 진행한다. 운영 형태가 색다르다. 조합 운영을 관리할 전문가를 채용해 운영한다. 일종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농민들은 생산에 주력하고 전문경영인이 딸기 단지를 홍보하고 체험객을 모집한다. 모집한 체험객은 농가별로 순환하면서 배정한다. 한 농가에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단체체험이 취소됐으나, 가족단위 체험객 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체험 환경도 좋다. 대구와 인접해 접근성이 좋다. 단지 중심부에 1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동 주차장과 300㎡ 규모의 공동체험장도 갖췄다.코로나19로 인한 판매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판매 방식을 도입, 지난 4개월 동안 8천여 명이 다녀갔다. 이 같은 성과는 딸기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스스로 힘을 모은 결과다.◆정년 없는 네가 부러워요즘 나 대표는 다른 일로 바쁘다. 퇴직을 앞둔 도시 친구들이 귀농상담을 해오기 때문이다. “정년 없는 나 대표가 부럽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상 정년이 60세이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정년을 앞둔 직장인들은 인생 2막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이런 친구에게 나 대표는 귀농상담사로 통한다.농업에는 정년이 없다. 건강하면 언제까지도 일 할 수 있다.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특별법’에 따라 오는 8월부터 농어업인의 취업 가능 연한이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연장된다. 즉 농어업인의 정년이 70세 이상으로 연장된 것이다.젊은 시절 도시에서 잘 나가던 친구들이 이제는 농부 친구를 부러워한다. 인생역전이라 할 만하다. 농업도 엄연한 경영체라는 인식과 정년 없이 일 할 수 있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 대표도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소득과 재산적 측면에서도 결코 도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나 대표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농업은 전망이 밝은 직업이라면서 인생 2막으로 귀농을 적극 권장한다. 최근에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을 불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 동생도 지금 옆 농장에서 딸기를 재배한다. 만족도도 높다. 30년 농사꾼은 이제 귀농 전도사의 역할도 함께 한다.▲농장명: 사랑뜰농원▲농장주: 나영완·이수경▲구입·체험문의: 010-9939-6371, 054-955-6371▲블로그: https://blog.naver.com/lovegarden6371▲소재지: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100-1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63) 군위 3대 꿀벌농원

예전에 어른들은 벌(토종벌)은 영물(靈物, 신령스러운 짐승)이라고 했다. 집에 초상이 나면 벌통을 먼저 가리고, 부고장(訃告狀, 죽음을 알리는 글)을 붙였다. 집안에 흉사가 있으면 영물인 벌들이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감미료가 부족하던 시절 꿀벌은 소중한 존재였다. 벌꿀은 귀한 식재료인 동시에 약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꿀벌은 가족처럼 대접을 받았다. 꿀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각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처럼 꿀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애덤 돌리잘’ 교수가 IAPV(이스라엘 급성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꿀벌을 가지고 한 실험의 결과다.이뿐만이 아니다. 지도자인 여왕벌을 스스로 선발하지만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지도자를 찾아 나서고 퇴출을 시키기도 한다. 일종의 레임덕이고 탄핵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세상의 축소판과 같은 꿀벌을 3대에 걸쳐 80여 년 동안 키우는 양봉명문가를 찾았다. 군위군에서 양봉을 하는 ‘3대 꿀벌농원’의 박용민(60) 대표가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800여 군(통)의 꿀벌을 사육해 연간 1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통상적으로 200여 통으로 채밀을 하고 나머지는 봄철 수정용 벌로 과채류 재배농가에 공급한다.◆3대를 이어가는 꿀벌 가족3대째 꿀벌을 키운다. 그 세월이 무려 80여 년이다. 백 년 가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동 하나로 3대, 4대를 이어가는 일본의 백 년 가업을 부러워하지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양봉으로 3대를 이어 간다는 것도 드문 일이다.박 대표 집에서 벌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할아버지 때부터다. 그때는 토종벌이었다. 1960년대에 아버지가 양봉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아버지는 87세의 고령임에도 아직까지 키운다. 얼마 전까지는 사과 과수원도 경영했다.박 대표는 2006년부터 양봉을 시작해 3대의 맥을 이었다. 도시에서 건축업과 부동산 중개업을 운영하다가 귀향해 양봉을 시작했다. 벌써 양봉 경력이 15년째다. 왜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했느냐는 물음에 “농사일이 즐겁고, 꿀벌을 돌보는 재미가 좋아서 양봉을 시작했다”면서 “꿀벌 3대의 맥을 잇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3대로 이어졌고, 매일 꿀벌을 돌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성공한 귀농이라고 말하기는 많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꿀맛 나는 귀농이라고 한다. 3대를 이어 간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보답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인간의 모습을 닮은 꿀벌의 세계꿀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말이다. 사회적 동물로 집단생활을 하는 모습이 인간세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여왕벌을 중심으로 일벌과 수벌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채밀과 육아, 경비, 청소 등 하는 일이 제각기 다르다. 협업체계가 잘 이루어지는 조직이다.병균에 감염된 일벌이 생기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한다. 여왕벌이 늙어 능력을 잃으면 새로운 여왕벌을 선발하고, 몰아내는 탄핵도 감행한다. 이런 꿀벌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생태적 습성도 알아야 한다. 벌통 주변의 모습만 보고도 벌통 안의 상황을 알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맞는 관리를 해야 한다. 무밀기에는 식량을 공급하고, 질병에 감염 여부도 파악해야 한다. 채밀 전에 정리채밀로 꿀의 순도를 유지해야 한다. 꿀벌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분봉도 한다. 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한 번에 몰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중노동은 아니지만 연속성을 가진 일이다. 벌통을 돌보는 날에는 하루 2만 보 이상을 걷는다. 섬세한 손길로 즐기는 자세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박 대표의 발길은 언제나 벌통 주변에 머물러 있다.◆양봉의 연중 스케줄양봉은 수레바퀴가 돌 듯 연중 스케줄에 따라 돈다. 1년 중에 첫 작업은 꿀벌을 깨우는 작업이다. 사람도 아닌 잠자는 꿀벌을 어떻게 깨울까. 1월 하순께 벌통에 화분 떡을 넣어주면 벌들이 스스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어린 아이들이 잠을 자다가도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고 잠을 깨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그때부터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한다. 2월 중순에는 과채류 재배농가에 수정 벌을 공급한다. 수정 벌들은 농가의 일손을 덜어주는 효자손이다. 꿀벌을 이용한 자연 수정이라 과채류의 품질도 좋아진다. 3월이 되면 가을에 공급한 식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식량을 공급해 체력을 유지시킨다. 다가올 일 철에 대비해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다.4월에는 아카시아 꿀 채밀을 위해 계상(2층으로 포개어 놓는 벌통)을 설치한다. 아카시아 꿀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날에 정리채밀(벌통 안에 남아 있던 꿀을 완전히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고품질의 꿀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고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아카시아 개화시기에는 이동 양봉도 실시한다. 꽃을 따라가는 유랑생활이다.6월에 접어들면 야생화 꿀과 밤꿀을 채취하고, 장마철 무밀기에 대비해 식량을 공급하고 증식작업에 들어간다. 무밀기에 식량을 공급하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초겨울 월동에 들어가면 양봉의 1년 스케줄은 끝나고 휴식기에 접어든다. 사람과 꿀벌과 하늘이 함께하는 3자 협업이다. 그중에서 하늘의 역할이 가장 크다.◆자신이 먹을 수 있는 벌꿀벌꿀에 대한 박 대표의 생각은 확실하다. 믿을 수 있는 꿀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양봉을 하면서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따라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벌꿀을 생산한다는 생각으로 꿀벌을 키우고 벌꿀을 생산한다.박 대표의 봉장(농장)은 도로에서 2㎞ 이상 떨어진 산골이라 오염요인이 없는 등 자연환경이 매우 좋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응애나 진드기, 바이러스 등 병해충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질병의 예방을 위한 병해충 방제는 필수적이다. 다만 가장 안전한 꿀 생산을 위해 방제시기를 조절한다. 가을철에 방제를 마무리해 봄철 꿀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다. 봄철 방제를 채밀 40일 전에 중단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생산된 벌꿀은 반드시 농약 잔류검사와 탄소동위원소 비율 측정을 실시한다. 벌꿀을 채밀하기 전에는 정리채밀을 실시해 벌꿀의 순도를 높인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대부분 벌꿀은 직거래를 통해 단골고객들에게 판매된다. 단골 고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도가 높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수정 벌과 밀원조성으로 양봉의 새로운 길 개척‘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한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유엔식량기구(FAO)는 인간이 먹는 작물의 64%가 꿀벌을 통해 가루받이한다고 추정한다.이것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식량도 없어진다는 말이다. 기후온난화에 따라 양봉의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아카시아가 전국 동시 개화가 일어나 이동 양봉도 어려워지고 있다. 수령이 50∼60년을 넘긴 아카시아 나무도 노쇠화되고, 군락지도 줄어들고 있다.이러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박 대표는 두 가지 전략을 추진한다. 참외와 멜론 등 과채류 재배농가에 수정용 벌을 공급해 작물의 수정 활동을 도우면서 소득도 올리는 방안이다. 또 봉장 주변에 밀원수를 식재해 밀원 감소에 대응한다. 산에는 헛개나무와 옻나무 등을 식재해 기능성 꿀을 생산하고 유휴 농경지에는 유채 등 초화류를 재배해 벌꿀도 채취하는 것은 물론 경관도 가꾸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6차 산업의 준비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농장명: 3대 꿀벌농원▲농장주: 박용민▲구입문의: 010-6780-7700▲소재지: 군위군 우보면 두북1길 206▲이메일: pymin827@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62) 봉화 산아농부

‘BYC와 무진장을 아십니까’BYC는 경북의 봉화(B)·영양(Y)·청송(C)을 지칭하고, 무진장은 전북의 무주, 진안, 장수를 말한다. 이를 우리는 ‘오지 트리오’라 부르고 오지의 대명사처럼 쓴다.사람들은 오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깊은 산 속과 청정함을 떠올린다. 봉화군 농산물의 공동브랜드가 ‘파인토피아’인 것도 청정함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청정함의 대표지역으로 알려진 봉화에서 도라지를 재배하는 청년강소농을 만났다. ‘산아농부’의 김태준(34) 대표는 봉화군 일원에서 도라지를 재배하고, 부인 박승희(32) 대표는 영주에서 도라지를 가공하는 ‘도라지미’를 운영한다. 부부는 3만3천여㎡의 도라지와 6천 600여㎡의 생강을 재배, 가공해 연간 5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농장 이름인 ‘산아농부’는 온전하고 바른 먹거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도라지미’는 산아농부가 키운 도라지로 만드는 맛있는 먹거리를 뜻한다.◆신혼부부의 귀향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왜 고향으로 들어왔을까’, ‘도시의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는 물음이 한동안 마을을 맴돌았다.신혼부부가 갑자기 도라지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왔으니 주변에서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의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결혼을 하고 돌아서기 무섭게 귀농을 하겠다는 데 어느 신부가 찬성하겠는가. 어쩌면 반대는 당연하고 예상된 일이었을 것이다.농업에 대해서는 김 대표보다는 아내인 박 대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농업의 현실과 전망, 노동의 강도 등에 대해 훤하게 꿰고 있었다. 청주에서 유기농 농업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김 대표는 농촌 출신이었지만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하고 섬유 관련 대기업에서 화공기술자로 일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폴리머 종합반응 공정’을 취급하는 전문기술업무였다.전문직을 버리고 귀농을 선택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직장 상사와 동료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다가 귀농을 결심했다.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에서다. 30년간 도라지를 재배한 아버지의 소득과 기술을 설명하며 아내를 설득했다.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그로 인한 호흡기 질환 증가에 대응 작물로서 도라지가 최고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침내 아내의 동의를 얻어 귀농을 감행했다.◆도라지 재배, 어렵지만 농업의 블루오션도라지는 결코 쉬운 농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도라지를 선택한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국내 도라지 재배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한번 파종하면 3년이 지나야 소득이 발생한다. 장기투자 작물이다. 현재의 농촌 현실에서 3년간의 소득 공백을 견디기는 어렵다.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이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소득 공백이 크기 때문에 선뜻 시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오히려 블루오션이기도 하다.두 번째는 미세먼지로 인해 도라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서 미세먼지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많은 사람이 호흡기질환을 생각하면 도라지를 떠올린다. 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과 직결된다. 도라지는 약용과 식용을 겸한 작물이다. 기관지가 나빠서 기침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도라지를 꾸준히 먹으라고 권한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으면 오랫동안 쉽게 먹을 수 있다.실제로 많은 사람이 효과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도라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생도라지나 분말, 도라지청, 도라지 정과 등 어느 것이나 상관없다.마지막 이유는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평생 도라지를 재배한 전문가다. 부모님이 가진 재배기술과 농기계, 유통망 등 모든 노하우를 물려받아 성공 귀농에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저는 귀농의 금수저라고 할 만합니다. 항상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쉽지 않은 도라지 농사김 대표의 도라지 농장은 봉화군과 영주시 일원에 흩어져 있다. 무려 100여 곳에 이른다. 스마트폰 지도에 수많은 점이 찍혀 있다. 모두가 농장 위치를 좌표로 찍어 둔 것이다. 언뜻 보면 대단히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농장 배치다.도라지는 연작이 되지 않고 3년 만에 수확하기 때문에 3년마다 재배지를 옮겨 다닌다. 그러니 매번 농지를 구입할 수는 없다. 당연히 임차해서 재배한다. 그래서 농장의 집단화는 불가능하다.가장 어려운 점은 세 가지다. 낮은 발아율(싹이 나는 비율)과 임차농지 확보, 낮은 기계화율이다. 도라지의 평균 발아율은 70~80%로 낮다. 어떤 해에는 50%를 밑 돌 때도 있다. 초봄의 일기불순과 저온이 원인이다. 봄 가뭄이 심할 때일수록 낮다.지역 특성상 넓은 밭을 구하기 어렵다. 산골짝에 있는 작은 밭이 대부분이다. 주로 인삼을 수확한 밭을 찾아서 빌린다. 인삼은 5~6년간 차광막을 설치하고 재배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잡초 종자가 차단돼 도라지 초기 재배에 유리하다.많은 농작물이 재배와 수확까지 기계화되고 있으나 도라지는 수작업에 의존한다. 김매기와 풀베기, 수확, 정선까지 대부분 수작업이다. 기계화작업이 도라지 재배의 큰 과제다. 특히 초기 김매기 작업은 많은 인력이 있어야 한다. 김매기 작업을 할 때는 밭에 할머니들로 가득하다. 제초제를 뿌리면 풀은 안 나지만 도라지도 나지 않는다. 2년차에 들어서면 밭고랑의 풀을 제초기로 베어 준다. 도라지는 풀과의 전쟁이다.◆1,000일의 정성, 도라지 가공품도라지 가공품은 농부의 땀과 정성의 결정체다. 무수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다. 흔히 ‘1,000일의 정성’이라고 한다.씨앗을 뿌리고 3년 동안 키워야 수확을 한다. 벼나 콩처럼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단년생작물과는 많이 다르다. 3년이란 시간을 오롯이 땅속에서 기다린다. 그동안 신선한 땅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그 기운을 다듬고 다듬어 켜켜이 약효를 쌓아 나간다.한방에서 길경(桔梗)으로 불리면서 귀한 약재로 대접을 받는 것은 3년 동안 땅속에서 쌓은 내공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도라지 가공품도 마찬가지다. ‘도라지미’에서 생산하는 가공품들은 모두가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도라지 청을 만드는 과정에는 7일이라는 시간이 들어간다. 어지간한 끈기가 없다면 만들기 어렵다.7일동안 도라지를 달이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열과 휴지(休止)’의 시간을 통해 도라지의 약효를 극대화 시킨다. 인삼보다 홍삼의 약효가 더 높다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도라지미에서는 추출액방식이 아니라 도라지를 통째로 넣는다. 체온을 1℃ 올리면 면역력이 5배 증가한다는 말이 있다. ‘홍도라지생강진액청’은 체온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홍도라지생강진액청을 만드는 방법도 만만찮다. 햇생강의 즙을 추출해 전분을 가라앉히고 생강즙을 12시간 고아준다. 여기에 홍도라지 진액과 시나몬(실론계피)를 섞어서 이틀 동안 달여서 만든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면역력 증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도라지 연작 재배기술 개발과 청년창농 가이드가 꿈김 대표의 꿈은 새로운 도라지 재배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첫 번째 과제는 연작재배기술이다. 도라지는 인삼처럼 연작이 되지 않는 작물이다. 따라서 재배지역을 매번 옮겨야 하는 결점을 갖고 있다.농장의 집단화도 어렵다. 이 같은 결점을 해결하는 연작재배 기술을 개발해 도라지 재배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 농촌에 도전하고 싶은 청년들에게 ‘창농가이드’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줄여 줌으로써 농업의 미래가 밝고 도전 가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농장명: 산아농부(도라지미)▲농장주: 김태준·박승희 (2017 강소농)▲구입문의: 010-9493-3017▲블로그: https://blog.naver.com/taejun3017▲소재지: 산아농부: 봉화군 법전면 일원, 도라지미: 영주시 원당로315번길 55▲이메일: taejun3017@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61) 경산 아시아농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몰려들었다.미국으로만 가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이 보장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아메리칸 드림에는 미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나 민주주의, 평등, 경제적 여유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도 그 꿈의 행렬은 중남미로 이어져 있다.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아시아권에서 코리안드림이 시작됐다. 아메리칸 드림과 마찬가지다. 2011년 베트남에서 들어온 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젊음을 불태운다. 그 코리안드림 행렬에 ‘도티토아’라는 여성도 있었다.농업에 도전해 자신의 코리안드림을 완성해가는 결혼이주여성도 있다. 경산에서 아시아농장을 운영하는 도정애(38) 대표다. ‘도티토아’가 바로 도정애 대표다. 한국생활 9년차로 2018년 농업에 도전해 3천300㎡의 시설하우스에서 10여 종의 베트남 채소를 재배해 연간 1천700만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아직 소득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영농경력 3년차의 결혼 이주 여성임을 감안하면 작은 성과라고는 하기 어렵다. 지난해에는 청년창업농에 선정되는 성과도 올렸다.◆농사도 척척, 자녀 교육도 척척도정애 대표의 시설하우스 속에는 사철 푸름이 가득하다. 농장에 들어서면 여기가 한국의 농장인지 의문이 생긴다. 하우스 한 편에서 ‘농(베트남 전통모자)’을 쓰고 일하는 도 대표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배추나 시금치 같은 우리 채소는 없고 모두가 동남아지역 채소들이다. 도 대표는 베트남에서 온 한국생활 9년차의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으로 귀화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남편(허승욱 46)은 건축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농사일을 돕는다.2019년 청년창업농에 선정된 억척 농부다. 지난해까지 전국에 3천200여 명의 청년창업농이 있지만 결혼이주여성이 선정된 사례는 도 대표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사일을 마치면 저녁 시간에 자녀들에게 베트남 어를 가르친다. 3개국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다.집에서 아이들은 한국어와 베트남 어를 함께 사용한다. 베트남 어를 몸에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어를 소홀히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베트남 어가 익숙해지면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한다.◆또순이 ‘베트남댁’의 한국 정착기도 대표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인근에 있는 ‘하이퐁’에서 꽃과 식료품 가게에서 일했다. 음식을 만들고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형제자매가 12명인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한국으로 먼저 시집온 학교 선배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복숭아와 자두 등의 재배방법을 배웠다.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배우게 된 것이다.농장 귀퉁이에 고향을 생각하며 베트남 채소를 심었다. 자가소비용으로 재배했지만 남는 물량이 생기자 동남아지역 근로자들에게 나눠줬다. 주변에서 판매하라는 말을 듣고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했다.현재 3천300㎡ 시설하우스에 베트남 고추와 가지, 배추 등 10여 가지의 작물을 재배한다. 주로 동남아 근로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똑똑하고 야무진 일 처리 덕분에 주변에서는 또순이로 불린다.다정다감한 성격이라 마을에서 인기가 높다. 하루 일과를 보면 쉴 틈이 없다. 억척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새벽 5시에 농장에 나와서 저녁 8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간다. 중간에 두 아들의 유치원과 학교 등하교와 식사, 간식까지 챙긴다. 주변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한다고 걱정을 하지만 일하는 것이 즐겁단다.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는 모습을 보면 너무 즐겁다는 것이다.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행복도 느낀다. 특히 인근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친구들이 농장 구경을 오는 것이 반갑다. 휴일이 되면 농장은 고향 친구들의 만남의 광장이 된다. 아직 농기계 운전이 서툴러 밭갈이나 로터리 작업 등 힘든 일은 남편이 도맡아서 한다. 올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농기계 교육을 받아서 모든 작업을 직접 하겠다는 의욕을 보인다.◆주말에는 장사꾼으로 변신4일과 9일에는 경산 하양 전통시장에 나가서 노점상을 펼친다. 농사꾼이 아니라 장사꾼으로 변신한다. 노점도 경쟁이 치열해 자리를 잡기도 어려웠다. 어렵게 장사할 자리를 구했다. 한국에서 빨리 정착하고 싶다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주변 상인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농장에서 키운 베트남 채소를 판매한다. 최근에는 품목을 확대해 쌀국수와 간장 등 간단한 식료품도 추가했다.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는 근로자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다. 처음에는 동남아 근로자들이 고객이었으나 이제는 한국인 고객도 많이 늘었다.장날이 되면 더 바빠진다. 농장 일은 새벽에 마무리하고, 저녁에 준비한 채소를 들고 장터로 나선다. 장사 노하우도 생겼다. 하루에 30만 원 정도를 판매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호객을 할 정도로 넉살도 생겼다.‘덤’과 ‘에누리’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결혼 이주 여성이 노점상을 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덤으로 물건을 얹어 주고 흥정을 하는 모습을 신기해한다. 이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단골이 된다.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는 물음에 도 대표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답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학교 온라인 개학과 어린이집 휴원으로 자녀를 돌보는 관계로 장날이 아닌 토, 일요일에 하양시장에서 판매하면서 페이스북을 통한 SNS 판매를 병행한다.◆초창기 언어 소통에 어려움 겪어모든 일을 열심히 하지만 어려움도 많다. 한국에 온 지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외로움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결혼 초기에는 한국말을 익히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사투리를 쓰는 관계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사투리는 또 다른 외국어처럼 들렸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언어의 장벽을 많이 넘어섰다.경상도 사투리도 구사할 정도로 능숙하다. 한국어를 배우는데 남편이 많이 도왔다. 베트남에서 12남매가 함께 생활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 조용한 상황이라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의 자리는 자상한 남편과 두 자녀가 메워주고 있다.주말에 농장을 찾아오는 베트남 친구들과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1년에 한 번씩 부부가 친정 나들이를 했으나 농사일을 시작하면서는 혼자서 아이들만 데리고 간다. 그동안은 남편이 농장을 관리한다. 농장을 비울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 마음 편하게 친정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남편이 있어 든든하다.◆아시아 마트를 열고 싶어도 대표의 꿈은 동남아 채소를 판매하는 ‘아시아 마트’를 여는 것이다. 동남아지역의 채소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전문점이다.경산이나 영천, 반야월지역의 시장 안에 좋은 장소가 있는지 물색 중이다. 낮에는 농장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저녁 시간과 주말에 가게를 열어 판매하는 것이다.일종의 야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히 판매만을 하는 가게가 아니라 동남아지역 근로자들이 만나서 소통하는 만남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곳에서 고향에 대한 소식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해 먼저 온 선배들이 후배들의 한국생활 정착을 이끌어주는 사랑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다문화 청년창업농 ‘도티토아’의 코리안드림을 응원한다.※본 기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농장명: 아시아농장▲농장주: 도정애 (2019 강소농)▲페이스북(검색): 애도정▲소재지: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 589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60) 작지만 강한 농업을 만드는 사람들

‘작은 고추가 맵다.’몸집은 작아도 힘이 세거나 야무지고 똑똑한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작지만 빛나는 존재는 많다. 농작물 중에서는 작지만 독특한 매운맛을 가진 청양고추를 꼽을 만하다. 매운 고추의 대표선수다.농업계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강소농(强小農)이다. ‘강농’과 ‘소농’을 합친 말로 ‘작지만 강한 농업’을 의미한다.경영규모는 작지만 차별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농업경영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는 핵심 사업이다.◆강소농이란강소농. 경영규모는 작으나 계속적인 역량개발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통해 자율적인 경영혁신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농업 경영체를 말한다.정부 보조금을 받는 많은 농림사업과 시범사업과는 달리 강소농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역량을 키워나간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통해 지속 발전 가능한 ‘한국형 중소가족농 육성 전략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2011년부터 강소농 육성사업을 실시한 농촌진흥청은 10만 명 육성이 목표다. 이를 두고 임진왜란 직전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과 비견할 정도의 의지를 담은 농업정책이라고도 평가한다. 이를 위해 도 단위로 강소농지원단을 구성하고 경영진단과 맞춤형 교육 등 경영컨설팅을 추진한다.또 소비자와 바이어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실전기회도 제공한다. 농식품산업 소비 트랜드를 파악하고 벤치마킹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가소득 10%, 경영능력 20%를 향상시켜 우리 농업의 주역으로 발돋움 시키는 것이다.◆왜 강소농인가?혹자들은 ‘소농도 어렵고, 대농도 어렵다’는 한마디로 우리 농업의 현실을 말한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각종 통계 수치만 보아도 그렇다. 전체 인구 중에서 농촌인구는 18%지만 농가 인구는 5.8%에 불과하다. 농촌에 농민보다 비농민이 더 많다.농가인구의 35.6%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농가소득은 4천만 원에 못 미치고, 농업소득은 1천만 원 미만이 67.8%를 차지한다. 절망적인 상황이다.그럼 타개책은 없을까.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 지가 문제다.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농의 길로 나갈 것인지, 작지만 알찬 농업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답은 강소농이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강소농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비·품·고·가·역’으로 무장했다. 농업경영에 따른 비용절감과 품질향상, 고객확대, 가치향상, 역량강화를 의미한다.농작물의 생산에서부터 품질, 판매, 고객관리까지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농촌과 농업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승부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강소농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래서 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에 희망을 걸고 있다.◆강소농이 되려면강소농이 되는 길은 어렵지 않다. 도전정신과 경쟁력을 갖추고 자립농이 되겠다는 각오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경북도내 23개 시·군 농업기술센터는 매년 강소농 교육생을 모집한다.교육은 기본과정과 전문과정, 최고과정을 거친다. 기본과정에서는 농가의 경영진단과 역량강화, 경영개선 목표 설정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중소가족농과 청년창업농이 주된 교육 대상이다.전문과정에서는 농장별 비즈니스 모델 창출과 실행과정에 대한 교육이 진행된다. 기본과정과 전문과정은 시·군에서 진행한다. 최고과정은 농촌진흥청과 시·도 농업기술원에서 진행한다. 지역 리더를 육성하는 과정이다.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하고 조직관리, 리더십, 멘토링에 대한 교육을 집중 실시해 리더의 역량을 갖추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역 리더로 성장하면 초기 강소농이나 청년창업농의 영농정착을 지원하게 된다.◆강소농을 육성하는 민간전문가민간전문가는 강소농과 강소농자율모임체, 청년창업농들에게 맞춤형 경영개선컨설팅을 지원하는 농장경영컨설턴트다. 경영기술과 생산기술, 홍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농촌진흥청에서 채용해 전국에서 65명이 활동하고 있다. 농장의 경영실태를 조사하고 진단과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경영개선 방안에 대한 농가별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한다. 분야별로 현장 애로기술을 지원하고 생산과 유통, 고객관리에 대한 컨설팅도 병행한다.강소농의 자립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과 함께 20멘티를 선정해 컨설팅도 시행한다. 농장 요청에 의한 수요 컨설팅과 기획컨설팅을 진행하면서 농장 간 상호 벤치마킹도 실시한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다.컨설팅을 통해 강소농은 강한 농업인으로 육성하고, 청년창업농은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한다. 자체적으로는 월 1회 세미나를 개최해 새로운 영농기술과 트랜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대응 방안도 강구한다. 연 2회 우수 농가를 찾아가는 합동 컨설팅을 실시해 분야별 사례를 발굴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전문가 상호 간에도 효율적인 컨설팅을 추진하기 위해 영농 신기술과 정보를 교환하는 등 경쟁력을 갖춘 경영기법을 개발, 공유한다.◆경북의 민간전문가경북지역에는 농산물 가공과 경영마케팅, 전략작목, 전자상거래, 지역개발 등 8개 분야에 9명이 활동한다. 다양한 경력과 자격을 갖추고 도내 전역에서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한다.이론과 현장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들이다.△권훈(60) 가공분야 전문가는 농학박사로 삼화식품에서 이사를 역임한 장류제조의 권위자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인증에 대한 컨설팅을 중점적으로 추진한다.△이준화(67) 경영마케팅분야 전문가는 칠곡군농업기술센터 재직 시 농업경영과 참외 재배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퇴직 후 농장을 운영해 이론과 현장기술을 갖췄다. 참외수출지원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참외재배의 1인자로 새로운 소득원 개발을 위해 기능성 멜론인 캔탈로프멜론을 보급하고 있다. △이흥우(64) 경영마케팅 전문가는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경영지도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GS칼텍스 근무경력과 중소기업청 경영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농가에 기업경영방식을 융합해 새로운 농장경영 모델을 만들고 있다.△윤광서(65) 과수경영분야 전문가는 농경제학 석사로 영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농민들을 지도한 농업전문가다. 경북포도협력단 겸임연구관으로 활동하는 등 포도전문가로 통한다. 최근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샤인마스캣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김영곤(63) 과수생산분야 전문가는 자타가 인정하는 과수전문가다. 김천시와 봉화, 군위군농업기술센터 등에 근무하면서 사과, 자두, 복숭아 등 과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특히 정지 전정과 병해충 방제, 토양관리에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종자 기사와 식물보호기사 자격을 취득한 농업분야의 인재다. 경북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김태운(62) 채소분야 전문가는 농학석사로 경북농업기술원과 성주군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한 채소전문가다. 시설채소기술사와 종자기사 자격을 취득하고 참외수출지원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경북도내 딸기, 토마토 등 시설채소 고품질 생산기술 보급과 청년창업농들에게 채소작물 재배기술과 안정적인 영농정착 지원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 △김영보(67) 축산분야 전문가는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하고 경북도청과 종축장, 축산기술연구소에서 가축육종과 사양 및 질병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한우를 비롯한 축종별 사양관리와 스마트축산, 축산물 브랜드화에 대한 집중 컨설팅을 추진한다.△송정아(43) 인터넷 전자상거래 분야 전문가는 정보처리기사와 사무자동화 산업기사 자격을 갖춘 전산전문가다. 대학에서 경영정보학을 공부하고, 경북인재개발원과 삼성생명, 영진전문대학에서 전산 강사로 활동했다. 인터넷을 통한 농산물 판매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홍상철(62) 농촌지역개발 분야 전문가는 수필가다. 스토리텔링과 브랜드 네이밍을 통해 농장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본지에 ‘강소농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9) 안동 농부애땀

트롯열품이 거세다. 전 국민이 열광하는 트롯 경연 프로그램은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K-팝과 아이돌에 빠졌던 청소년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아마도 우리의 정서와 시대적 상황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동안 수많은 가수가 트롯에 사랑과 우정, 이별 그리고 고향을 담아 노래했다. 농촌의 정서와 어려움, 강인함을 담은 노래도 많았다. 최정자가 부른 ‘처녀 뱃사공’과 황정자의 ‘처녀 농군’이 대표적이다.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대에 간 오빠를 대신해 나룻배를 젓는 처녀 뱃사공과 60년대 산업화로 도시로 떠나가는 이농(離農) 행렬과 떨어져 소를 몰고 논밭으로 나가는 처녀농군의 모습은 강인함 그 자체였다.그렇다면 요즘에도 그런 강인한 모습의 처녀농군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우리는 그들을 청년농부라고 부른다. 사철 푸른 물이 흐르는 낙동강변에서 토마토와 멜론, 애호박 농사를 짓는 청년농부를 소개한다.가냘픈 몸매가 농사꾼처럼 보이지 않지만 강인한 주인공은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농부애땀’ 의 김미영(37·여) 대표다. 각각 2천600㎡의 멜론과 방울토마토, 2천㎡의 인큐애호박(비닐 캡을 씌워 일정한 규격으로 재배하는 애호박)을 재배해 연간 1억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농부의 땀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은 ‘농부애땀’이란 농장이름이 정겹다.◆청년농부, 변신은 무죄김 대표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연히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수도권에서 ‘잡(job)매니저’로 일했다.그런데 농업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고향에 돌아와 회복기를 가졌다. 그때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농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회복되고 도시로 돌아가기 전 잠시 동안 농사일을 거들면서 농업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체험했다.스트레스의 연속이었던 도시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생각도 한 몫을 했다. 마음속에 있던 도시탈출의 욕구와 농촌의 비전이 합쳐지자 고향이 김 대표의 손을 잡았다.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도시생활을 청산했다. 처음하는 농사일이라 서툴렀다. 요령이 없으니 힘은 두 배로 들었다.처음 2년간 영농교육에 몰두했다. 농사기술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농업기술센터 등 농업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교육을 받았다. 재배기술에서부터 전자상거래, 마케팅, 리더십 교육까지 시간이 나면 찾아다녔다. 교육받은 내용들은 바로 현장에 적용했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리를 잡아갔다.그러나 이론과 현장은 차이가 많았다. 부모님과의 의견충돌도 만만찮았고, 주변의 시선도 따가웠다. ‘농사는 아무나 짓나’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는 ‘연약한 아가씨가 얼마나 견딜까’라는 이웃의 인식은 사라졌다. ‘젊음을 투자할 일자리는 농촌에도 많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김 대표는 농장으로 출근하는 아침마다 파이팅을 외친다.◆열정으로 이룬 전자상거래처음 접하는 농촌의 어려움을 김 대표는 열정으로 극복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반드시 실천했다.농작물 재배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만 판매는 오롯이 김 대표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공판장에 출하해 판매하는 쉬운 길을 걸었다. 다만 나의 농산물 가격을 공판장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다들 “예전부터 그랬다”고 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전자상거래를 공부했다. 몇 차례의 실습과정을 거친 후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첫 작품으로 멜론을 올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직접 값을 정하고 첫 판매가 이루어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상세한 제품 설명과 농장 소개, 삶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고객이 늘어났다.판매량도 쑥쑥 늘었다. 유명 쇼핑몰에서 ‘농부애땀’을 검색하면 언제나 상위권에 뜬다. 유명 쇼핑몰에서 ‘애호박’을 검색하자 전체 6천394건의 애호박 상품 중에서 김 대표의 애호박은 5위로 검색됐다.단순히 판매되기를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쇼핑몰 시스템과 정책이 변경되면 즉시 보수교육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적극성도 보인다. 오늘의 성과는 이런 열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책임감으로 얻은 농장이름아무리 좋은 농산물이라도 소비자와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품질과 판매 과정에서 책임감을 가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2017년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이 덮쳤다. 갑작스런 폭우로 멜론 하우스가 완전히 침수됐다.모든 농산물은 일단 침수가 되면 끝이다.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쇼핑몰에는 이미 상품이 등록되어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문은 계속 들어오는데 판매할 상품이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난감한 상황이었다.침수로 폐기된 멜론은 뒷전이었다.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던지 해결을 해야만 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침수 피해를 입지 않은 농가의 멜론을 구입해서 배송을 했다. 심지어는 새벽에 공판장에서 구입을 해 보내기도 했다.갑작스러운 농장 침수로 멜론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농장의 멜론을 구입해서 대신 배송하니 용서를 구한다는 편지를 동봉했다. 그해 멜론 농사는 망쳤지만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어느 전문 농업인이 그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면서 자신의 농장에 사용하려고 지은 농장 이름을 김 대표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이름이 바로 ‘농부애땀’이다. 전화위복이었다.◆깨끗한 땅, 건강한 농산물김 대표가 유독 신경을 쓰는 부분은 땅이다. 좋은 땅에서 좋은 농산물이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토양관리는 농사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항상 깨끗한 땅을 가꾸는데 정성을 들인다.멜론과 토마토, 애호박 등의 재배가 끝나면 반드시 토양 소독에 들어간다. 비닐하우스를 완전히 밀봉하고 내부 온도를 60∼70℃로 올려서 태양열 소독을 한다. 재배기간 중에 발생했던 선충이나 곰팡이 같은 병해충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2차 작업으로 하우스 내에 15일 이상 관수작업을 실시해 축적된 염류를 제거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토양이 건강한 상태를 회복하도록 한다. 병충해 발생은 그만큼 줄어든다. 농약 사용량이 줄어드는 것은 덤이다. 일거양득이다.앞으로는 2년 재배 후 1년간 휴경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건강한 토양을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포석이다.◆농산물 유통 플렛폼 구축과 고령 친화식품 개발농촌지역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고령화다. 고령화가 진행될 수록 은퇴농의 증가와 함께 판매도 어려움을 겪는다. 농촌 공동화는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영양의 불균형도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 문제다. 김 대표는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웃 농가의 농산물 판매를 도와주고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고령화에 따라 영농 규모 축소와 함께 생산량도 줄어들고, 은퇴농들은 자가 소비용으로 가꾸는 텃밭의 잉여 농산물의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이런 점에 착안해 농산물 유통 플렛폼을 구축해 본인의 농산물은 물론 주변의 고령농이나 은퇴농이 소량으로 생산한 농산물 판매도 도와주는 것이다. 또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해 노인들의 영양관리와 함께 농가 소득도 높여 나간다는 것이다.그 준비 작업으로 ‘스마일케어식’을 공부하고 있다. 이웃의 농산물 판매를 지원하고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하려는 김 대표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본 기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다.▲농장명: 농부애땀▲농장주: 김미영 (2019 강소농)▲구입문의: 010-9218-9004▲쇼핑몰: http://sweetfruit.co.kr/▲소재지: 안동시 풍천면 섬마을2길 39-28▲이메일: lookanme84@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8) 칠곡 해라농장

‘첫 번째, 1호, 1세대’의 연관어는 무엇일까. ‘도전’일 것이다.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들어갈 때는 누구나 주저한다. 두려움도 느낀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 동물의 세계에서는 ‘첫 번째 펭귄’이라고 한다. 펭귄이 먹이 활동을 하기 위해 천적인 바다표범이 있는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무리 전체가 머뭇거린다. 용기 있는 펭귄이 먼저 뛰어들면서 전체 무리를 이끄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새로운 도전에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70∼80년대 ‘이농행렬’이 도시로 이어질 때 반대로 농촌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귀농행렬이 늘어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광경이었다.도전정신과 용기를 가지고 역발상으로 귀농을 감행한 주인공은 칠곡군에서 ‘해라농장’을 운영하는 안병문(62)·문정내(62) 공동대표다. 참외와 포도를 각각 1만 2천㎡, 벼 4만㎡를 재배해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강소농이다. ‘해라농장’은 귀농하면서 함께 고생한 큰딸의 이름에서 따왔다.◆ 귀농 1세대의 안착“좋게 말해서 귀농이지, 실상은 억지 귀농이었습니다.”성공한 귀농인이라는 주변의 칭찬에 대한 안 대표의 답이다. 안 대표는 서울에서 가방 판매업을 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알짜배기 사업장이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신학기엔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때 당시 교실은 콩나물시루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2부제 수업도 진행했다. 그러니 학생용 가방의 수요는 넘쳐났다.730만여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를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계속될 것 같던 호황은 소리 없이 떠나갔다. 1983년 교복자율화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은 학생용 가방 대신 배낭을 메고, 경제성장으로 고급 메이커 제품을 찾았다. 많은 판매업자가 도산했다. 그 행렬에 안 대표도 서 있었다. 덩달아 건강도 나빠졌다.1985년에 빚 2천만 원을 안고 농촌으로 들어왔다.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살았다. 방이 좁아 등을 구부리고 새우잠을 잤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이 두려웠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편했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틈이 나면 품을 팔았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할부로 구입해 밤낮없이 일했다. 가을철에는 강원도 철원까지 가서 일했다. 봄에는 모내기, 가을에는 벼 베기, 겨울에는 논갈이를 했다. 주변에서 트랙터가 불쌍하다고 할 정도였다.몸을 아끼지 않고 일한 덕분에 자리를 잡아 나갔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귀농이었지만 이제는 농사의 고수로 통한다. 소득도 만만찮다. “이 정도로 자리 잡은 것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힘든 일을 함께해 준 아내 덕분이다”면서 아내의 헌신을 앞세웠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7년 ‘새농민상 본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시상금 200만 원은 ‘호이장학금’으로 기탁했다.◆부부가 함께 짜는 영농계획안 대표의 농사짓는 방식을 보면 남들과 작은 차이점이 하나 있다. 영농계획을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세운다. 통상적으로 남편이 계획을 세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매년 1월이 되면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한 해 계획을 수립한다. 사소한 농작업도 서로 의논해서 진행한다. 특히 품종을 선택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농촌에서 여성의 역할은 훨씬 크다. 꼼꼼한 눈썰미와 섬세한 손길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특히 농촌에서는 부부가 하루 종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소통이 필수 요소다. 사소한 의견 차이가 큰 충돌로 발전할 수도 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영농교육도 함께 받고, 병충해 방제 등 농사 전반에 대한 토론도 벌인다. 때로는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주변의 부러움에 안 대표는 “어렵던 시절 헌신해 준 아내에 대한 보답이다”면서 “농장의 진짜 주인은 아내다”고 강조했다.◆무인판매장 운영“농장 앞 도로변에 무인 판매대를 만들어서 포도와 참외를 팔아 봅시다.”무인판매장을 운영해 보자는 아내 문 대표의 제안에 따라 2008년부터 농장 앞에 무인판매장를 설치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색다른 시도였다.주변에서는 도난을 걱정했지만 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농장 인근에 있는 2개의 골프장에 하루 3~400명 이상이 드나든다. 큰 구매력을 가진 A급 고객이다. 이런 사람들은 농민이 내놓은 농산물을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무인판매장을 운영하면 고품질의 신선한 농산물을 인건비 부담없이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고객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편하다고 한다. 걱정했던 도난사고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이를 두고 부부는 신뢰사회의 승리라고 말한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80%를 무인판매장에서 판매한다. 거봉 등 5개 품종의 포도를 다양한 규격으로 포장해 소비자가 선택하기 좋게 구성했다.◆농업의 포트폴리오“칠곡은 참외 주산지이고 소득도 상당하지만 참외 떨어지면 돈도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면서 연중 소득이 발생하는 농업 구조가 필요하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많은 농가가 봄부터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를 외상으로 구입하고 수확 철에 갚는다.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이다.안 대표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농업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참외와 포도, 벼를 주작목으로 재배한다. 봄에는 참외, 여름에는 포도, 가을에는 쌀로 소득이 발생한다. 농작업도 마찬가지로 봄부터 가을까지 골고루 나누어진다. 소득과 노동력이 집중되지 않아 안정적인 농장 운영이 가능하다.최근 소비 트랜드에 맞춰 혈관에 좋다는 캔탈로프 멜론을 재배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7월이 넘어서면 가격이 하락하는 참외 대신 다른 소득원을 개발한 것이다. 참외를 조기 폐기하고 멜론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다.◆농사 고수의 비결은 흙과 관찰 그리고 품질안 대표는 농사를 잘 짓는 기본은 ‘땅과 관찰’이고 그 결과는 품질이라고 강조한다. 토양은 모든 작물의 생명의 근원이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땅이 좋지 않으면 품질 좋은 농산물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안 대표가 벼농사를 짓는 이유도 이것과 이어져 있다. 볏짚을 이용한 좋은 퇴비생산 목적이 크다. 가을에 볏짚 베일을 만들고 1년 동안 발효를 시켜 황토와 우분을 혼합해 뿌린다. 땅심을 살리는 것이다.세심한 관찰도 중요한 과제다. 온화한 성격의 부부지만 농장에 들어서면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시설하우스의 온·습도는 물론 작물의 생육 상황과 병충해, 토양 상태 등 모든 것을 세세하게 살핀다. 마치 손자 돌보듯 한다.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장·단기 대응방안을 세우고 농업전문기관의 도움도 받는다.관찰은 곧 작물과의 소통이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이 특별해 보였다. 고품질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한다. 스마트 팜 시설을 도입해 노동력을 절감하고 그 여력을 농작물 관리에 투자한다. 품질 향상을 위해 친환경적인 자재를 활용한 영양제나 액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참외 대목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신토좌’ 대신에 ‘단호박’을 사용하는 것도 특별한 방법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참외 당도가 16~17브릭스 정도로 높고 식감이 좋아 인기가 높다.◆농민이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 운영이 꿈안 대표는 요즘 큰 그림을 그린다. 농민이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이다. 일종의 로컬푸드매장이다. 이것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인력을 최소화한 무인판매방식을 계획하고 있다.단순한 농산물 판매에서 벗어나 카페와 갤러리 기능을 합친다는 복안이다. 농민은 농산물을 판매하고,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 쇼핑을 하면서 휴식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판매와 힐링을 겸하는 윈윈매장이다.미술을 전공한 둘째 딸이 관심을 가지고 준비를 위해 바리스타 교육과 요리교육을 받고 있다. 이미 농장 옆에 작은 부지도 마련했다. 농장 인근 골프장 이용객들이 구매력을 갖춘 소비층이기에 직판장의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농장명: 해라농장▲농장주: 안병문·문정내▲구입문의: 010-3502-9043, 010-3811-8245▲블로그: https://blog.naver.com/mjnft▲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삼청리13▲팩스: 054-971 -6858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7) 김천 빈스팜연근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열다섯의 어린 제자 ‘황상’을 만났다. 아전의 아들이었던 제자에게 3근계(三勤戒)를 가르쳤다. ‘근면, 근면 또 근면’. 부지런히 일하라는 가르침이었다.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다산은 제자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적은 ‘증언첩’을 내렸다. 실천해야 할 열한 가지의 가르침 중에는 ‘용지허실(用之虛實)’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쓸모없는 것의 쓸모’이다. ‘논을 넓혀 연(蓮)을 심는 못으로 만드는 사람은 번창하고, 연 심은 못을 메워 논으로 만드는 사람은 쇠미(衰微)해 진다’고 했다.언뜻 보면 두 번의 가르침은 서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학파의 실사구시(實事求是)와도 달라 보인다. 벼는 먹거리인 실용이고, 연은 볼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벼를 심어 얻는 이득 못지않게 연꽃을 감상하면서 얻는 정신적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큰 뜻이었다. 너무 실리만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이 황폐해 질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었다.이런 가르침을 오늘의 농업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연을 재배해 연근으로 실익을 얻고, 연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환경보전까지 겸하는 일석삼조의 농사를 짓는 청년강소농이 있다. 김천시 감천 변에 뿌리를 내린 귀농 6년차 ‘빈스팜연근’의 김미애(40)·박정호(41) 공동대표의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2만㎡의 연농장을 운영해 연간 6천만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빈스팜’은 3남매의 이름에 들어가는 ‘빈’을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쉬운 줄만 알고 덤벼든 연근농사‘연근은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자란다’면서 연근농사를 지으러 귀농을 하는 직장 동료의 말에 혹해 귀농을 단행했다. 박 대표는 선박용 내연기관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잦은 야근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수입이 줄어들더라도 단란한 가정생활을 꿈꿨다. “연근농사가 쉽고 돈이 된다”면서 박 대표가 귀농하겠다고 나서자 김 대표는 반대했다. 중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박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한 동료의 연근농장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쉬운 줄 알았던 연근농사는 중노동이었다. 진흙땅에서 캐는 연근은 고통의 결정체처럼 보였다. 며칠 만에 손목이 퉁퉁 붙고 전신이 쑤셨다. 한 달 만에 체중이 10㎏이나 빠졌다. 강제 다이어트였다. 중간에 멈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버텼다.이런 과정을 거쳐 2015년에 본격적으로 연근농사에 뛰어들었다. 2천㎡로 시작해 2만㎡로 늘어났다. 소득도 안정단계로 접어들었다. 부부에게 귀농 6년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편한 도시생활보다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농촌생활이 훨씬 더 밝다고 한다.◆연은 친환경농업연근 재배는 대표적인 친환경적 농업이다. 봄에 종근을 심고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스스로 자란다. 물관리만 한다. 연근농장은 연중 자연생태계가 살아 있다. 소금쟁이, 장구애비, 물방개 등 온갖 수서곤충의 놀이터다.농약도 살포하지 않는다.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농산물우수관리(GAP)인증을 받았고, 친환경농산물인증을 준비 중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형마트와 로컬푸드 매장에서 인기가 높다.품질이 좋은 연근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재구매가 이어진다. 블로그를 통해 재배 전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가장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10월부터 매일 판매할 양만 수확한다. 살아있는 땅속에 살아있는 연근을 보관하는 방식이라 창고가 없다. 가장 신선한 보관법이다. 매일 수확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신선한 연근을 위해서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다둥이 엄마의 열정대부분 농민들은 농사전문가이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판매는 취약하다. 특히 농사경력이 짧은 귀농인이나 청년 농부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만의 유통망이 없기 때문이다.도매시장에 출하하거나 포전매매를 한다. 자식 같은 농산물이 헐값에 팔려나갈 때는 자괴감도 느낀다. 빈스팜연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배 3년차에 유통망 다변화에 다둥이(3남매) 엄마인 김 대표가 팔을 걷고 나섰다.밤을 새우면서 프레젠테이션(PT) 자료를 만들었다. 농장현황과 재배과정, 품질, 출하현황, 농장 비전 등 모든 것을 담았다. 청년 농부의 꿈도 담았다. PT 자료를 들고 김천농협 하나로 마트를 찾아갔다. PT 자료를 설명하고 입점을 요청했다. 농협 측에서는 “1998년 개점 이후 농민이 PT 자료를 들고 마케팅 활동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면서 “김 대표의 열정에 놀랐다”고 했다.다음날 농장을 둘러보고 입점을 결정했다. 품질이 인정되고 소비자의 반응이 좋아지자 인근 농협마트에 입점을 주선해 김천은 물론 칠곡지역까지 공급지역도 넓혔다.◆최고의 무기는 품질농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수많은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기 때문에 품질 관리에 특히 정성을 기울인다”고 부부는 입을 모은다.토양관리를 위해 농약을 배제한 자연주의 농법을 추구한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확과정에도 공을 들인다. 땅속에서 자라는 연근은 수확이 어렵다. 굴착기로 흙을 걷어내고 삼발 쇠스랑으로 캔다.굴착기 삽날이 깊으면 연근이 파손되고 얕으면 수확이 힘 들다. 적당하게 흙을 걷어 내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쇠스랑으로 캐는 것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연근 촉을 보고 방향을 파악해 상처 없이 캐야 한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불량품이 된다. 심마니가 산삼을 캐듯이 한다.연근은 속에 구멍이 있어 마디 사이의 중간을 정확히 잘라야 한다. 구멍이 뚫리면 불량품이 된다.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절단작업은 김 대표가 맡고, 힘든 수확작업은 박 대표가 한다.수확한 연근은 고품질인 1, 2, 3번 마디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폐기한다. 5월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3월에 마치는 것도 고품질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귀농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도 이런 원칙을 지킨 결과로 보인다.◆경영비 절감은 소득과 직결비용절감은 바로 소득증가다. 비용절감을 위해 경영기록장을 분석하고 절감할 부분을 찾아 다음해 농사에 반영한다.임차 농지를 활용함으로써 농지구입에 따른 자본투자를 줄였다. 농지은행을 활용함으로 임차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2천㎡의 농지 임차료는 통상 90만 원 정도다. 농지은행을 이용하면 30만 원으로 낮아진다. 1년 후 실경작이 확인되면 80%를 감면받아 6만 원으로 낮아진다. 통상 임차료의 6% 수준이다.농지은행을 이용해 연간 840만 원을 절감했다. 대형마트에 납품계약으로 박스 인쇄비까지 절감한다. 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줄여나가는 것이 경영원칙이다.◆ 가공과 체험을 6차 산업화지금까지는 1차 농산물인 연근 판매에 주력했다. 앞으로는 가공과 체험을 통한 6차 산업화를 추진해 소득을 높인다는 계획이다.체험용 연밭을 만들고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비닐하우스를 건립해 연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준비 중이다. 연근 즙과 연근가루, 말린 연근 등으로 시작한 가공품도 종류를 다양화하기 위한 신제품도 개발하고 있다.가공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는 것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연의 이치를 알려주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연근을 이용해 쿠키를 만들고 비누와 연등을 만들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다.연꽃과 연잎을 그리면서 연근 캐는 체험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부의 환한 미소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처럼 보였다.▲농장명: 빈스팜연근▲농장주: 김미애·박정호(2019 강소농)▲구입문의: 010-5714-7647, 010-5718-7647▲블로그: https://blog.naver.com/miae0916▲소재지: 김천시 모암사랑2길 41▲이메일: miae0916@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6) 예천 회룡포장수진품

우리 조상은 장(醬)을 중하게 여겼다. 된장과 간장은 음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던 ‘허균’이 지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그 사례가 실려 있다.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몽진이 또다시 거론된다. 평안도 영변이 거론되자 ‘남이공(이조판서 역임)’이란 신하가 ‘그곳은 장맛이 시원찮으니 합장사(合醬使, 임금이 몽진을 하면 미리 가서 장을 담그는 책임자)를 미리 보내야 한다’면서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임진왜란 2등 공신)을 추천했다.다른 신하들이 성이 신씨(申氏)이라 장 담기를 피하는 날인 신일(辛日)과 음이 같아 신불합장(辛不合醬, 신일에 장 담그기를 피하는 일)이라 좋지 않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장 담그는 일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장은 십이간지 중에서 일곱 번째인 오(午)일에 담근다. 즉 말 날(馬)에 담근다. 말의 강한 기운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할 정도로 장을 담그는 일에 신경을 썼다.장은 음식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다.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칠 때는 물론 생선을 조릴 때도 들어간다. 예천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던 장류사업을 이어받아 전통식품을 만드는 청년 강소농이 있다. 된장과 간장 선식을 만들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서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린다. ‘회룡포 장수진품’의 고재훈(38)·박명희(38)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회룡포장수진품은 육지 속 섬마을 회룡포 옆에서 진짜배기 된장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농장이름이다.◆ 농산물 가공 가치를 알아본 청년부부의 귀농32살의 동갑내기 부부가 어느 날 된장을 만들겠다고 농촌에 들어왔다. 주위에서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왜?’ 하는 표정으로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부모님은 미소를 지었다. 농산물 가공의 부가가치를 일찌감치 알고 2005년부터 된장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힘들게 콩 농사를 지어서 헐값에 상인들에게 넘기는 것이 안타까워했었다. 그때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여성일감찾기사업으로 된장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아 시작했다. 된장을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었으나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아들 부부가 합류하자 반겼다.고 대표는 양잠협동조합에서 누에를 활용한 건강식품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농산물 가공이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유치원 교사로 된장을 만드는 일은 생소했지만 부모님과 남편을 믿고 흔쾌히 동참했다. 귀농 8년차에 접어들면서 고 대표는 제조에 집중하고 박 대표는 판매를 전담한다. 덕분에 소득도 안정적 단계에 접어들었다.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을 하던 주변의 반응은 이제 ‘대단하다’로 바뀌었다. 걱정이 응원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은 영원한 선생님부부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된장에서부터 삶의 방식까지 배운다. 귀농 1년 동안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스스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준비과정을 거치게 한 것이다. 그리고는 된장에 대한 모든 일을 넘겼다. 아들 내외가 독립하도록 뒤에서 지원만 했다.대신에 3년 동안 일정한 대가(代價)를 지급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것은 일을 거들어 주는 인건비와 메주를 만드는 황토방, 된장제조시설에 대한 이익배당인 셈이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물론 된장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면서도 간섭은 없었다. 철저하게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한 것이다.부모님이 생산한 콩이나 참깨는 반드시 적정 가격을 주고 구입한다. 가족 간이지만 경영을 완전히 분리한 것은 ‘모든 갈등의 원인은 돈에 출발한다’는 아버지의 철학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어머니의 열성도 만만찮다. 발아콩 특허를 받았다. 표고버섯과 오가피 우린 물로 콩을 불리고 싹을 틔워 발아 콩을 만드는 것이다. 발아 콩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 생리활성화 성분과 항산화 성분도 증가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천발아 청국장’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참기름과 선식 등으로 확장하면서 ‘회룡포장수진품’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저온 압착식으로 착유한 참기름에 도전블루오션으로 여겨지던 된장이 어느 순간에 레드오션으로 변했다.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된장 농가가 늘어나고 경쟁도 치열해졌다.예천의 특산물인 참기름을 특화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뛰어들었다. 아파트를 팔아서 참기름 착유시설에 투자했다. 참기름을 생산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지역농산물을 사용한다. 부모님이 생산한 참깨를 사용하고, 부족하면 이웃에서 구입한다.이런 원칙 때문에 ‘예천참깨’로 짠 진짜 ‘예천참기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원칙은 저온압착 착유와 주문식 소량 생산이다. 140℃의 저온에서 볶아서 기름을 짜는 방식이다. 저온이라 원재료의 영양소가 그대로 유지된다.한 번에 소량 기름을 짜는 것도 장기 보관에 따른 산패를 줄이고 고품질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일주일에 12㎏ 정도의 참깨로 35병 내외로 생산해 바로 판매한다. 착유 즉시 병에 넣고 밀봉해 공기 접촉을 차단해 산패를 방지한다. 갈색 병을 사용하는 것도 산패 방지가 목적이다.◆아기를 업고도 교육을 받는 열정 농부유치원교사에서 스스로 된장녀로 변신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열정적이다. 특히 교육에서는 그렇다. ‘유치원 교사라 된장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니 남들보다 2배는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남편과 함께 장류사업을 승계하면서 가장 취약한 분야였던 마케팅교육에 집중했다. 농업기술센터를 제집 드나들 듯이 했다. 농산물 판매와 마케팅 분야의 교육을 시작으로 블로그,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교육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아기를 업고도 교육을 받는 열정을 보였다.정보화농업인회에 가입하고 교육을 받으면서는 된장과 간장을 인터넷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동료 회원들의 농산물을 함께 홍보하고 판매하는 품앗이 활동에도 앞장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5년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농산물마케팅 활성화 사례 우수상을 받았다. 소비자의 구매 후기는 반드시 읽어보고 생산과 관리에 반영한다.◆역할 분담으로 합리적인 농장운영농장 운영방식은 역할분담이 이루어져 있다. 부모님은 생산 원료인 콩과 참깨, 들깨를 재배를 맡았다. 콩과 참깨 들깨를 각각 6천600㎡씩 재배하고 생산물은 아들 부부에게 판매한다. 가족 간이지만 경영을 분리했다.참기름과 들기름을 짜고 선식을 만드는 일은 고 대표의 몫이다. 귀농 전 양잠조합에서 식품가공을 했던 기술과 경력을 활용했다. 박 대표는 마케팅과 판매, 홍보활동, 소비자 관리를 맡았다. 주문과 발송을 하면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소비자의 의견을 제품생산에 반영한다. 물론 노동력이 많이 드는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그는 일은 공동작업으로 진행한다. 이 같은 역할 분담은 가족 간, 세대 간 갈등을 없애는 데에도 효과적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전통식품 명인이 꿈이들 부부는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원칙을 세우고 싶다”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정직한 농산물로 정직하게 된장을 만들고 참기름을 짜겠다”고 입을 모은다.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공의 전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의 한 부분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부모님의 전통기술을 전수해 전통식품 명인에 도전할 계획을 조심스럽게 내보이기도 했다. 체험농장을 운영해 학생들에게 전통음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통식품의 맥을 이어가는 백 년 가업의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가겠다는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농장명: 회룡포장수진품▲농장주: 박명희·고재훈 (2016 강소농)▲구입문의: 010-8711-4025, 054-652-4025▲블로그: https://blog.naver.com/heehun777▲소재지: 예천군 개포면 우감2길 47▲이메일: heehun777@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5) 칠곡 보람농장

“나는 언제쯤 억대 연봉을 받을까.”억대 연봉은 셀러리맨의 로망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억대 연봉자는 2017년 기준 72만 명이다. 셀러리맨들은 봉급명세서에 찍히는 9자리 숫자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농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기준 억대 농민은 3만6천여 명이다. 전체 농민의 3.6%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농가소득 목표가 5천만 원이다. 올해 추정 농가소득이 4천335만 원인 점과 비교하면 꿈의 소득이다.꿈의 소득인 억대 농민의 자리에 이미 30년 전에 올라앉은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에서 오이를 재배하는 보람농장 윤주섭(65)대표와 부인 배옥련(61)씨가 주인공이다. 윤 대표는 3천㎡의 연동하우스에서 오이를 재배해 연간 1억3천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크지 않은 면적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재배기술과 경영비 절감”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농업을 천직으로 삼은 오이 농사 달인윤 대표는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때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했고, 소 중개인으로도 활동했었다. 1986년부터는 오이 농사에 전념했다. 농사 이력이 30년을 훌쩍 넘겼다.지금 윤 대표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농사의 달인, 농사의 신, 억대농부, 맥가이버 등 수없이 많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얻는 농사 기술과 맞춤형 농기구 제작으로 노동력을 줄이고 농사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간 결과다. 그 덕분에 30년 전인 1990년에 모든 농민의 로망인 억대농민의 꿈을 이루었다.이후 한 번도 억대 밑으로 소득이 내려간 적이 없다. 농사 경력 10년 만에 농협중앙회에서 주는 ‘새농민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억대농민의 조기 등극과 오이작목반 자재 공동구매와 출하, 집하장 설치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이보다도 농사의 달인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오이에 대한 일편단심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오이만을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집중한다.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오이를 기른다고 할 정도였다.◆나만의 기술력으로 승부보람농장이 있는 칠곡 낙동강변은 오이 재배의 최적지다. 비옥한 사양토를 기반으로 풍부한 일조량과 지하수, 겨울철 따뜻한 기온 등 오이재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윤 대표가 오이재배 달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좋은 자연환경과 특별한 재배기술이 보태진 결과다. 오늘날 전국에서 알아주는 ‘금남 오이’의 명성을 굳힌 것도 이런 좋은 환경과 윤 대표를 비롯한 작목반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하우스 내 오이 이랑에는 진한 녹색의 오이 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 내림 재배라는 특별한 재배방식 때문이다. 넝쿨식물인 오이의 특성을 이용한 방식이다. 오이가 자라는 과정에 밑에서부터 오이를 수확하고 잎을 제거하면서 남은 줄기를 아래쪽으로 내리면서 옆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이때 위쪽의 줄기는 계속 자라지만 유인 끈과 집게를 이용해 끝 부분의 높이를 맞춘다. 일반적인 상부적심방식(순지르기)과는 다르다.내림 재배를 하면 수확기간이 4∼5개월 정도로 일반 재배방식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수확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수확량이 늘어나고 소득도 높아진다. 보온을 위해 천장에도 이중 수평 커튼을 설치해 온도조절을 쉽게 했다. 환기창도 상·하에 각각 설치해 환기과정에 온도변화에 따른 작물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병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이 밖에도 꽃 따기 재배를 통해 곰팡이 발생을 줄이고, 과육을 단단하게 해 상품성을 높이는 등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맞춤형 농기구 제작으로 편한 농사윤 대표는 맥가이버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이 재탄생한다. 수많은 농기구를 직접 만든다. 농장 일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일손이 줄어드는 만큼 경영비도 준다.전동 드릴을 이용한 식혈기((植穴機), 무인분무기 호스 도르래, 예취기 고정 고리, 운반기, 외발 관리기 롤러 등 수없이 많다. 정작 자신도 얼마나 많은 농기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각종 농기구의 기능을 보강하거나 재활용 자재를 이용한 맞춤형 농기구다.어느 농가에나 있는 전동 드릴을 활용해 만든 식혈기는 나무나 모종을 심을 때 구덩이를 뚫는 농기구다. 이걸 이용하면 하루에 7천 개를 뚫을 수 있다. 5~6명이 해야 할 작업량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다.예취기 고정 고리는 등받이와 작업 봉을 연결한 것이다. 하루 종일 풀베기 작업을 해도 피로함을 모를 정도로 작업이 편하다. 부부는 3천㎡의 하우스에서 2기작으로 오이를 재배하면서도 외부 인력을 전혀 쓰지 않는다. 이것은 맞춤형 농기구를 이용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인 결과다.이뿐만 아니다. 무슨 기계든지 윤 대표의 손에 들어오면 20년 이상 사용한다. 30년이 된 관리기와 온풍기는 아직도 힘차게 돌아간다. 언제나 점검과 정비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오이 재배 소득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높다. 2017년 기준 오이촉성재배 평균 소득률이 46.8%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경영비를 절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농기계회사 직원들도 수시로 농장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구할 정도다.◆토양관리는 농부의 절대 과제하우스 오이는 1년에 두 번 재배하는 2기작이다. 봄 재배는 1월에 모종을 심어 2월 말부터 6~7월까지 수확한다. 가을 재배는 9월에 심어 10월 말에서 다음해 1월 말까지 수확한다. 그렇다 보니 7~8월 2개월 동안은 쉬는 기간이다. 땅의 입장에서 보면 쉬는 기간이면서 땅심(지력)을 보충할 수 있는 기간이다. 땅이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생각이다.그래서일까 유독 토양관리에 신경을 쓴다. 휴식기인 7~8월에는 땅을 깊이 갈고 물을 가둬 그동안 땅에 쌓인 염류 성분을 제거한다. 쌓인 염류를 제거해 건강한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노지재배를 하면 빗물 등에 의해 염류성분이 씻겨나가지만 하우스 재배에서는 그대로 쌓이기 때문에 연작장애를 많이 일으킨다. 그래서 인위적인 관수 작업으로 염류를 제거하는 것이다.땅심을 돋우는 작업도 특별하다. 오이 수확이 끝나면 싹을 틔운 볍씨를 뿌려서 벼를 키운다. 키운 벼는 가을 재배 직전인 9월께 예취기를 활용해 3단으로 절단한 후 다시 갈아엎는다. 물을 가둔 상태에서 벼를 재배함으로써 토양에 쌓인 염류도 제거하고 퇴비로 활용해 땅심도 높이는 것이다.봄 재배가 일찍 마치면 쌀을 수확할 정도로 자라지만 과감하게 포기하고 퇴비로 사용한다. 땅에서 나온 것을 땅으로 돌려준다는 생각에서다. 오이를 심은 후에는 고랑에 볏짚을 깔아 잡초발생을 막으면서 습도조절이 되도록 한다. 물론 썩으면 퇴비가 되기때문에 3중의 효과를 거둔다.◆즐기면서 농사짓는 욜로족‘농사꾼이라고 해서 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 윤 대표의 주장이다. 일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여유롭게 쉰다. 계절적으로 노동력이 집중되는 농촌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을 실천한다.규모를 확대해 소득을 높이라는 주변 권유도 사양하고 현재의 규모에 만족한다. 1t 트럭에 탑재하는 캠핑카를 제작해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다. 1천300㏄ 대형 바이크를 구입해 부인과 함께 거리를 질주하고, 한적한 시골길에서 드라이브도 즐긴다.집 앞에는 소나무를 심고 잔디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간혹 주변에서 농사지을 땅에 정원을 만든다고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농민도 즐길 권리가 있다. 30년 전에 이미 억대 농민의 반열에 오른 농사의 고수이자 달인이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현재의 생활을 즐기는 욜로족(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이라고 할 수 있다.▲농장명: 보람농장▲농장주: 윤주섭·배옥련 (2012 강소농)▲농장 견학문의: 017-505-3359▲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금남1길68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4) 울진 매매떡

떡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쌀가루를 찐 것은 증병(蒸餠)이라 하고, 곡물을 찐 다음에 절구나 안반에서 떡메로 친 것은 도병(搗餠)이라고 한다. 기름에 지지는 떡은 유전병(油煎餠), 삶은 떡은 경단(瓊團)이다. 이 밖에도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다르다. 만드는 방법이 많고,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도 길다는 의미일 것이다.최근 경산지역에서 투각인면문옹형토기(사람 얼굴모양 토기)라는 특이한 토기가 발굴돼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계에서는 1천600년 만의 외출이라고 하면서 들떠 있다. 이때 바닥을 일부러 떼어낸 소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시루도 함께 출토됐다.삼한시대에도 떡이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시에는 쌀보다 보리나 수수 등 거친 잡곡을 많이 먹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거친 알곡을 잘게 부수어 찌거나, 지져서 먹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것이 떡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후 쌀에 견과류와 과일 등의 재료를 혼합하면서 맛과 영양이 풍부한 별식으로 자리 잡았다.어떤 의미에서나 떡은 우리와 가장 친근한 식품이었다. 생활 속에서 떡은 귀한 먹거리였고, 횡재였다. ‘자다가 떡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와 같은 수많은 속담이 그걸 의미한다.울진에는 제대로 된 떡을 만들어 새로운 아침식사의 시대를 열어 가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는 강소농이 있다. ‘매매떡’이란 브랜드로 떡을 만드는 최태숙(62)·장영철(68)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부부는 떡으로 연간 6천만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매매’는 ‘단단히’의 경상도 방언이다. 매매떡이라는 이름처럼 떡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온갖 정성을 쏟는 강소농이다.◆ 떡과의 운명적 만남, 떡은 나의 인생최 대표에게 떡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떡을 즐겨 먹지도 않았고 만들어 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고향인 울진에서 10년 동안 지업사를 운영하다가 의류점으로 전환했었다. 사업은 순조로웠으나 IMF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의류회사마저 문을 닫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자녀의 교육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했다. 서울생활이라고 해서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장 대표는 낯선 서울 땅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최 대표는 떡 전문점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유명 백화점 떡 전문점에서 다과전문가인 윤연자 선생을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행운이었다.처음에는 이바지 음식을 배우려고 했으나 떡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얀 쌀가루에 반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황홀한 촉감이었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 3년 동안 떡을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2010년 부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조그마한 떡집을 열었다. 전문가에게 배운 솜씨와 제대로 된 떡을 만들어 보겠다는 최 대표의 열정이 합쳐지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본격적으로 만들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 2017년 매매떡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떡 전문점으로 태어났다. 지금은 쑥 찰떡과 콩 가래떡, 영양찰떡을 비롯해 자색 고구마와 단호박 등 천연재료로 색을 내는 단호박 설기와 자색 고구마 설기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을 만든다. 부부는 언제나 제대로 된 재료를 사용해 제대로 된 떡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떡을 대한다. 최 대표는 떡을 만들면 언제나 행복감을 느끼는 만큼 떡과는 천생연분이라는 말한다.◆ 특허기술로 만든 굳지 않는 떡굳지 않는 떡이 있을까? 수많은 떡이 굳지 않는 떡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굳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유화제’다. 유화제를 쓰지 않으면 하루 이틀 만에 굳는다. 떡은 당일 생산·배송·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빨리 굳는 특성 때문이다.그런데 최 대표가 만드는 매매떡은 유화제 없이도 굳지 않는다. 비결은 특허기술에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해 특허를 받은 제조기술을 이전받았다. 떡메로 치는 과정인 ‘펀칭기법’과 ‘보습성 유지 기법’이 비밀병기다. 여기에 시간과 강도, 섞어주는 각도, 온도 등 네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 제대로 된 떡을 만들겠다는 최 대표의 열정은 대단하다. 만드는 과정에 하나의 공정을 더 거친다. 분쇄한 쌀가루는 물 반죽을 하고 이것을 냉동실에서 하루 동안 숙성을 시킨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쌀가루를 부드럽게 하려는 것이다.모든 떡은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해 주문식으로 생산한다. 소비자들이 직접 쌀을 가지고 와서 주문하는 공임떡(삯만 받고 만드는 떡)은 만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쌀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묵은 쌀로 만들 경우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매매떡의 품질 관리방식이다. 좋은 재료로 자신만의 떡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또 다른 이유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달에 서울의 상생상회에 입점했고,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대백프라자에서 열린 경북 우수농산물가공품 판매행사에도 참석했다.◆ 지역 주민과 윈윈하는 떡집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만드는 떡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떡을 만들 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인구 2천 명의 시골 면에 이미 두 개의 떡집이 있어 승산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남들은 레드오션이라고 했지만 최 대표는 블루오션으로 바꿀 자신이 있었다.비결은 품질이었다. 현재 가장 많이 판매되는 쑥 찰떡과 쑥 찹쌀떡은 차별화되어 있다. 지역의 우수 농산물만을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쑥의 함량이 월등히 높다. 쑥 함량이 무려 30%나 된다. 쑥의 함량이 높으니 향이 진하고 쑥의 질감이 살아 있다. 쑥의 함량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쑥을 재배하고 채취하는 방식이 특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쑥은 남편인 장 대표가 2천600여 ㎡의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봄에 완숙된 퇴비를 뿌리고 풀을 뽑아 가면서 재배한다. 채취는 마을 할머니들이 한다. 자신의 땅에서 자신이 재배한 쑥을 자신이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채취하는 방식이다. 마을 할머니들이 채취해오면 이걸 주인인 최 대표가 구입한다. 결국 자기 쑥을 자기가 구입한다. 어쩌면 바보스러운 방식처럼 보이지만 서로 윈윈하는 경영방식이다.주인은 채취에 따른 인건비를 절약하고 할머니들은 소일거리도 되고 용돈도 생긴다. 할머니들은 깨끗이 다듬어서 가져오기 때문에 다시 다듬을 일이 없어서 좋다. 이런 방식으로 1년에 3~5회 채취한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쑥의 함량을 30%까지 높일 수 있고, 향과 질감이 살아 있는 떡을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된 떡으로 소비자 입맛 되돌리고 싶어“전국에 떡집은 1만8천 곳, 빵집은 1만1천 곳 정도다. 떡집이 훨씬 많지만 판매금액은 빵이 3배나 많다. 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떡의 위상을 되찾고 싶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그러기 위해 소비자의 입맛을 다시 돌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떡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한다. 지역의 우수 농산물만으로 떡을 만드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실제로 떡을 만들면서 재료상에서 구입하는 재료는 하나도 없다. 쌀에서부터 쑥, 콩, 견과류, 단호박 등 모든 재료를 지역에서 구입하기 때문이다.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먹는 빵과 시리얼이 떡으로 바뀔 때까지 앞만 보고 천천히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굳지 않는 떡’의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을 들여 최고보다는 제대로 된 떡을 만들겠다는 것이 최 대표의 각오다. 우리 농업이 6차 산업으로 나가고 있지만 제대로 된 떡만을 만들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직할 정도로 떡만 보고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농장명: 매매떡▲농장주: 최태숙·장영철 (2015 강소농)▲구입문의: 010-9517-7125, 054-783-8182▲블로그: https://kytts.blog.me/▲소재지: 울진군 매화면 매화매실길 261▲이메일: kytts0904@hanmail.net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3) 성주 수미담

역사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크고 거창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듯 모를 듯 우리 곁을 스쳐간 작은 것들도 층층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먹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나 쌀가루에 설탕과 우유 등을 섞어 굽거나 튀긴 과자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출출하거나 심심할 때 주로 먹던 과자는 언제부터 먹었을까?4천여 년 전에 빵이 등장한 때와 같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 과자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 김유신 전’에 처음으로 나온다. 고구려 첩자 ‘백석’의 꾐에 빠져 납치될 위기에 빠진 김유신을 ‘내림’과 ‘혈례’, ‘골화’를 지키던 호국신들이 여인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과자를 주면서 밖으로 불러 내 백석의 정체를 알려주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내용이다.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과자다. 밀의 재배가 적었던 우리나라에서는 과자보다는 쌀로 만든 떡이 발전했지만 오래전부터 과자도 있었다. 성주에서 우리의 전통과자인 한과(유과)로 부농을 꿈꾸는 강소농이 있다. 수미담(手味啖)의 도용구(63) 대표와 남편인 배복환(68)씨가 주인공이다. 도 대표는 참외 조청을 활용한 한과를 만들어 연간 4억5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교육 마니아 농산물 가공에 도전도 대표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평범한 농부였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사슴을 사육했다. 지금도 사슴 5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농산물 가공에 발을 들인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의 결과다. 농사일로 바빴지만 교육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었다. 농업기술센터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작목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우리음식연구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떡과 한과류와 같은 향토요리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다. 참외요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열정과 솜씨를 눈여겨본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산물 가공품 생산을 권했다.처음에는 참외 조청에 도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좋았으나 다른 조청과의 차별화가 어려웠다. 다시 한과에 도전했다. 유과와 정과, 강정, 다식 등 많은 한과 중에서도 유과에 집중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기법과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운 향토요리 교육, 자신만의 손맛을 보탰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설날과 추석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한번 맛을 본 소비자들의 재구매가 이어지고 소문이 나자 점차 생산량을 늘려나갔다.2012년 농촌여성창업자금을 지원받아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는 아들 부부도 합류해 연중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손맛을 먹는다는 수미담 유과농장이름이 독특하다. 한자어로 手(손 수) 味(맛 미) 啖(먹을 담)을 조합해 만들었다. 손맛을 먹는다는 의미다. 손맛을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았고, 중요한 공정은 수제 공정을 고집하기 때문이다.한과 제조공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까다롭다. 먼저 깨끗이 씻은 찹쌀을 20일 정도 물에 담근 상태에서 발효과정을 거친다. 한과(유과)의 기본이 되는 떡(바탕)을 만들고 건조해 기름에 튀기고 조청을 발라서 튀밥가루를 묻히면 완성된다. 이때 떡을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할머니들이 칼국수 반죽을 밀듯이 안반(반죽을 하거나 떡을 칠 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에서 일일이 손으로 밀어서 만든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께다. 두께가 균일해야 튀겼을 때 똑같은 모양의 유과가 나온다. 기계로 만들면 쉽지만 손으로 직접 만들 때의 그 맛을 내기 어렵다.◆ 가족 간의 역할 분담유과 제조에는 전 가족이 참여한다. 각자의 역할도 구분되어 있다. 떡을 만들고 튀기는 제조과정은 도 대표와 남편의 몫이다. 건조한 떡의 수분 함량과 기름의 온도, 튀기는 시간은 오랜 경험과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손으로 만드는 떡의 두께는 고도의 감각이 필요해 초보자는 만들기 어렵다.2014년 합류한 아들(배기철·38)은 주로 판매에 주력하면서 제조과정에도 참여한다. 2018년 미국 LA와 필리핀의 식품박람회에 참여해 직판행사를 열고 소량이지만 캐나다에 수출의 길을 연 것도 아들의 젊은 마인드와 노력 덕분이다.며느리는 축제장이나 식품박람회, 프리마켓 등에 참가해 시식행사를 통한 홍보와 직판을 담당한다. 포장작업은 인근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빌린다. 도 대표의 손을 보면 검지의 첫째 마디가 볼록하게 솟아있고 안쪽으로 살짝 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유과를 만들면서 생긴 노동의 결과인 동시에 영광의 상처다.◆ 한과로 신지식농업인에 등극도 대표는 2018년 식품가공분야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됐다. 농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신지식농업인은 농업·농촌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창의성, 실천성, 가치 창출성, 자질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454명의 신지식농업인을 선발했다. 2018년에는 66명의 후보자가 치열한 경쟁을 거쳐 16명이 최종 선발됐다.식품가공 공장을 설립하고, 지역 농산물인 쌀과 참외를 활용해 전통식품인 한과를 생산, 판매해 전통의 맥을 잇고, 지역농산물 판매에도 기여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015년에는 6차 산업 인증업체로 선정되면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에도 입점했다. 햇섶(HACCP)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식품산업의 위생관리 국제표준화 규격인 ISO 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도 받았다.◆ 손주에게 먹이는 마음으로 만드는 한과도 대표가 추구하는 경영원칙은 하나다. 손주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한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에서 좋은 먹거리가 나온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한과의 원료가 되는 쌀과 조청을 만드는 참외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을 사용한다. 청결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이런 노력 덕분에 재구매 고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떤 고객은 신혼 초에 시댁에 수미담 한과를 들고 갔다가 시아버지로부터 ‘이런 한과는 처음 본다’는 칭찬을 듣고는 매번 한과를 사들고 간다고 한다. 2018년 LA식품 박람회에서 한과를 구입한 고객이 국제전화로 주문했으나 택배요금이 너무 많아 보내지 못했다. 그 고객은 얼마 뒤 한국 방문기회가 생기자 성주까지 직접 찾아와서 한과를 구입해 가기도 했다.그러나 그동안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가정용으로 소비하는 소량 생산과 대량 생산해 상품화하는 과정은 많이 달랐다.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전통의 손맛을 살리는 제품을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버린 찹쌀만 해도 4~50여 가마에 이른다. 덕분에 농장에 있던 사슴들이 호강했다면서 부부는 웃는다.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수많은 밤을 새우면서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사슴과 연계한 한과 체험농장수미담 식구들의 꿈은 한결같다. 전통식품인 한과를 널리 보급해 그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한과시장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과를 주제로 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교육농장을 만들려고 한다.또 자신의 한과 제조기술을 주변 농가에도 공개해 참여 농가들과 함께 가고 싶어 한다. 농장에서 사육 중인 사슴과 한과를 연계시키는 특별한 체험농장의 그림도 그린다.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이용한 참외식혜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통식품인 식혜에 달콤한 참외를 가미시킴으로써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손에 커피 대신 참외식혜가 들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농장명: 수미담▲농장주: 도용구·배복환 (2012 강소농)▲구입문의: 054-931-6464, 010-2808-6464▲블로그: https://ehdydrn2000.blog.me/▲소재지: 성주군 성주읍 성산2길 95-33▲이메일: sumidam@naver.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강소농 현장을 가다 (52) 문경 산모롱이

“신선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까? 구름을 타고 산 위를 나르고 물가를 거닐며 솔잎을 먹고살까?”라는 물음에 “신선이 따로 있나요?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면 바로 신선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문경의 황장산(해발 1,078m)과 대미산(해발 1,115m) 사이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강소농 부부는 소박하고 해맑은 모습이었다. 신선은 아니지만 신선이 된 기분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언제나 ‘그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고객을 맞는다.부부는 문경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이라는 동로면에서 발효 곶감을 만들고 황토 팬션을 운영한다. 산모롱이의 이창순(64) 대표와 남편 이경구(66)씨가 주인공이다. 발효 곶감과 황토 팬션, 자연밥상을 차려 내면서 연간 8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농장이름인 산모롱이는 산모퉁이의 휘어 들어간 곳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담아지었다.◆ 부부의 역할을 바꾸고 싶어이 대표의 직업은 전업 주부였다. 결혼 이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만 하며 살았다. 남편은 토목업에 종사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북도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일했던 상주에 정착하려고 준비했으나 지인의 소개로 문경 황장산 자락으로 옮겼다.이 대표가 서로 나중에 혼자 될 때와 노후를 위해 역할을 바꾸어보자고 제안했다. 경제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도 가정살림을 맡아서 해보겠다고 동의했다. 노후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았다. 딱히 떠오르는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상주에 있을 때 이웃의 곶감 만드는 것을 도와준 것이 떠올랐다.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곶감에 도전했다. 첫해에 4만 개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리가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경제활동의 첫 발걸음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토목기술을 응용해 황토집도 증축했다. 이제는 10년 숙성된 특별한 발효 곶감과 진정한 휴식이 있는 황토 팬션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소로 변모시켰다.◆ 10년 숙성된 발효 곶감은 어떤 맛일까발효 곶감의 탄생은 우연이었다. 2008년에 시작한 곶감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축적되면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러나 판매가 문제였다. 냉동창고에는 쌓이는 재고만큼 걱정도 쌓여갔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곶감은 애물단지였다. 어느 날 유명 농산물 쇼핑몰 대표와의 만남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요즘도 이런 무유황 곶감을 만드는 농가가 있나요. 하얀 가루는 ‘만니트’라고 하는 것으로 당분 결정체로 천식 등 성인병에 효과가 있습니다”라면서 상품을 세상에 내어 놓자고 했다.곶감은 본래 발효 식품인데 많은 사람이 단순히 감을 건조한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서 아주 귀한 것을 만났다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재고로 남아 있던 곶감은 발효 곶감 ‘대화’라는 브랜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는 곶감의 진수(眞髓)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날개를 달았다. 발효 곶감은 제조과정에 유황훈증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살균을 위해 야생오미자 청과 감식초를 바르고 장기간 냉동고에서 발효(숙성)과정을 거친다. 현재까지는 10년간 발효(숙성)시킨 것이 가장 긴 기간이다.발효(숙성)기간이 길수록 색깔이 검어지고 굳어지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다. 처음 출발은 우연이었으나 지금은 한 해에 5만 개를 만들어 3만 개를 햇곶감으로 판매하고 2만 개는 발효(숙성) 곶감으로 만든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고객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10년 숙성된 발효 곶감은 1상자(24개)에 25만 원으로 부가가치도 높다.◆ 숨 쉬는 황토방의 휴식황토로 지은 팬션은 참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도시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백두대간 종주 등산객들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으로 추천하는 곳이다. 황토 팬션은 애초에 구입한 황토집에 토목기술자인 남편이 1년간에 걸쳐 증축했다. 황토와 나무만을 사용했다. 벽체는 귀틀집과 목천목 공법으로 쌓고 지붕은 통나무를 반쪽으로 켠 나무 너와를 사용했다. 벽체는 두께가 50㎝나 되어 보온효과가 크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자연형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통기성이 좋아 숨 쉬는 집이라고 부른다. 습도가 높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항상 쾌적한 상태가 유지된다.순수한 황토는 사용하면 강도는 높으나 건조과정에 균열이 발생하고 마사토가 혼합된 황토는 통기성은 좋으나 점도가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사토가 섞인 황토를 사용하면서도 볏짚을 썰어 넣지 않고 황토를 숙성시키는 공법을 사용했다. 황토를 물로 반죽하고 비닐로 완전히 밀봉해 15일 이상 숙성을 시켜서 사용했다. 숙성된 황토는 점도가 2배로 높아진다. 숙성을 통해 마사토가 섞인 황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집을 지으면서도 이런 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황토방은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 아토피가 심한 자녀와 함께 하룻밤을 묵었던 어느 고객은 아이가 긁지 않고 밤에 잠을 잤다면서 일정을 바꾸고 일주일간 머물렀다. 황토 팬션을 이용한 대부분 고객의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용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약이 되는 자연 밥상숙박객들이 주문하면 자연밥상을 차려 준다. 산나물 위주로 차려주는 약밥상이다. 고기나 생선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월악산국립공원인 대미산과 황장산 일대에서 채취한 산나물이 주재료다. 곰취를 비롯해 오가피, 머위, 다래순, 당귀, 왕고들빼기, 차조기, 참나물, 엄나무순, 우산나물 등 없는 나물이 없다. 이런 야생 산나물로 산나물밥과 산채정식, 산채 쌈밥을 만든다.자연밥상의 특징은 묵 나물(삶아서 말린 나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산나물이라도 삶아서 말리면 색깔이 검어지고 고유의 향이 줄어든다. 그래서 산에서 채취한 나물을 바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에 급속냉동시킨다. 사용할 때 필요한 만큼 꺼내어 해동을 시키면 방금 산에서 채취한 것처럼 파란색과 향이 살아있다. 물론 산나물의 특성에 따라 묵 나물로 만드는 것도 있다.조리과정에도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산나물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웰빙 산채식이다. 이런 자연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부부는 봄철이 되면 매일같이 배낭을 메고 해발 1천m가 넘는 산을 오르내린다. 이 자연밥상은 산나물의 진한 향에 몸이 정화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용자들의 평이다.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어 숙박객들이 직접 밥을 지어서 먹을 수도 있다.◆ 거꾸로 가는 체험장을 만들고 싶어이 대표가 던지는 화두는 한결같다. ‘그대 제대로 쉬어 본적이 있는가’ 스스로 ‘휴드림 연구가’를 자처한다. 인공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보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한다. 그 고민의 결과물로 세상을 거꾸로 느껴보는 야생체험을 계획하고 있다.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원시적인 삶을 잠시라도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일회용품과 비누도 없는 체험장, TV와 에어컨, 전자레인지와 같은 전자제품 없이 지내는 체험이다. 휴대전화와 게임, 책과 잠시 이별을 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도시문물과의 교류를 잠시 멈추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31년 만에 개방하는 황장산의 원시림을 걷고, 대미산 약수계곡에서 물놀이도 즐긴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웰빙 산채식과 무유황 발효 곶감을 맛보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 된다. 물론 없는 것이 더 많은 체험이라 힘은 들겠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원시와 야생으로 돌아가는 거꾸로 가는 체험이 기대된다.▲농장명: 산모롱이▲농장주: 이창순·이경구 (2012 강소농)▲구입문의: 054-553-9267, 010-3533-9268▲홈페이지: https://www.leechangsoon.kr/▲소재지: 문경시 동로면 안생달길 153-26▲이메일: sanmorongi@gmail.com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봉화 에버로즈…“시들지 않는 ‘프리저브드’…꽃의 아름다움 오랜 시간 만끽하세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다.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드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그런데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궁중채화와 ‘프리저브드 플라워(이하 프리저브드)’다. 조선 왕실에서 장식용으로 사용하던 궁중채화는 비단이나 모시를 자르고 묶고 홍두깨로 두드려서 만들었다.보존화로 부르는 프리저브드는 생화에 특수용액을 주입해 원하는 색깔을 내고 건조시켜 만든다. 이들 두 꽃의 공통점은 시들지 않는다고 할 만큼 보존기간이 길다. 생화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봉화에서 꽃을 재배하면서 프리즈브드를 만드는 강소농을 만났다. ‘봉화 에버로즈 영농조합법인’의 박지훈(48) 대표와 부인 신동숙(45)씨가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2천300㎡의 비닐하우스에서 거베라를 재배하면서 프리저브드를 만들어 2억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영원한 토박이 농사꾼박 대표는 토박이 농사꾼이다. 봉화에서 나고 자랐다. 한 번도 봉화를 떠나지 않았다. 오로지 농사라는 한길만 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일은 양계였다. 다른 농사보다 소득은 높았으나 시설이 열악하고 악취가 심해 10년 만에 접고 복합 영농으로 전환했다.벼농사와 수박, 콩, 고추 같은 여러 가지 작목을 재배했다. 일은 많았지만 소득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특히 가격 변동이 심해 농장운영이 어려울 때가 잦았다. 풍년이 들면 가격이 폭락하고, 가격이 오를 때는 병충해나 재해로 수확량이 적었다. 풍년이나 흉년이나 쪼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을철에 농산물을 수확해도 농자재 외상값을 갚고 나면 빈손이 되었다. 봄이면 또다시 빛을 내어 농사를 짓는 악순환을 거듭했다.좀 더 안정적인 농사를 짓고 싶어 2007년부터 꽃 농사를 시작했다. 봉화지역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일교차가 커 ‘거베라’ 재배의 적지다. 2009년부터는 프리저브드를 만들어 꽃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현재 거베라 재배는 대를 이어 농사에 뛰어든 아들(박현민·23)이 주도하고, 박 대표는 프리저브드에 전념하고 있다.◆ ‘프리저브드’란프리저브드는 생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조화(造花)의 보존력을 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신개념의 꽃이다. 보존화로 불린다. 생화에 특수용액을 주입시켜 원하는 색을 만들고 꽃잎과 줄기의 원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건조해도 부서지지 않는다. 단순히 꽃을 건조한 ‘드라이플라워’와는 완전히 다르다.프리저브드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안개꽃이나 야생화에 사용하는 물올림방식과 장미꽃에 사용하는 침전방식이다. 물올림방식은 식물성의 특수용액을 사흘 동안 꽃에 흡수시켜 착색과 보존, 건조과정을 거친다. 침전방식은 알콜 계열의 용액에 넣어 탈수와 탈색과정을 거치고 다시 원하는 색깔로 착색을 시킨 후 보존과 건조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50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렇게 만든 장미꽃 한 송이 가격은 5천 원 정도다. 생화보다는 부가가치가 크게 올라간다.처음에는 장미를 활용해 프리저브드를 만들다가 안개꽃으로 발전시켰다. 현재는 보리와 수수 같은 곡식과 강아지풀, 냉이 등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특수용액은 박 대표가 직접 개발해 특허를 받은 제품이다.◆ 좋은 원료로 만드는 최상품의 프리저브드박 대표가 추구하는 목표는 최상의 프리저브드를 만드는 것이다. 색상이 선명하고 보존기간이 길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제품이다. 좋은 원료에서 좋은 상품을 나온다는 것이 박 대표의 신념이다. 따라서 제조공정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것이 원료의 선택이다.처음에는 양재동 꽃시장에서 구입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고 가공과정에 손실률이 높아 포기하고 인근 농가에서 재배한 꽃을 구입한다. 이때도 사전에 충분한 시험과정을 거친 후에 사용한다. 같은 농장에서 생산된 꽃이라도 계절과 재배상황에 따라 품질이 다르기 때문이다.봄에 구입한 꽃은 착색이 잘 됐으나 가을에 산 원료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번 시험과정을 거친 농장의 꽃만을 사용한다. 이때는 꽃의 크기와 개화 정도, 줄기의 상태까지 꼼꼼한 살피는 선별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때는 자체 농장에서 원료를 생산하기도 했으나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 포기했다. 이웃 농가의 꽃을 구입함으로써 농가와의 상생협력관계도 형성되는 이중의 효과도 얻는다.◆단순 가공을 넘어 예술품으로 승화프리저브드 경력이 10년을 넘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단순한 1차 가공품 생산에서 벗어나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프리저브드를 활용해 장식품을 만들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꽃 쟁반을 만들고 꽃시계도 만든다. 꽃잎을 이용하면 인물화도 되고 생일케이크도 된다. 이런 작업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아내 신동숙씨의 몫이다. ‘이은희 보존화명인’으로부터 특별교육도 받았고 체험강사 자격도 땄다. 이제는 프리저브드의 보급을 위해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어린이와 주부가 주된 체험객이다. 앞으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농장에는 200㎡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서 프리저브드 전시관을 갖춘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전시관에는 스승인 이은희 명인이 만든 화병과 찻상, 요술램프, 여인상 등 3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물론 신씨가 만든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역시 프리저브드의 확대 보급을 위한 것이다.◆망친 수박농사 덕분에 진로변경지금은 꽃으로 성공한 농사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처음 양계에서 복합 영농으로 전환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겪었다. 다시 꽃 재배로 전환한 계기가 된 것은 수박이었다.봉화지역은 수박 특산지라 면적도 컸고 소득도 높았다. 2005년에 6천600여㎡의 밭에 수박을 심었으나 여름철 잦은 강우로 한해 농사를 망쳤다. 날씨 탓에 병충해가 많이 발생해 제대로 된 수박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나중에는 잎은 물론 줄기까지 짓무르고 녹아버렸다. 통상 이 정도 면적이면 2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으나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후유증은 길었다. 완전히 회복하는 데 3년이 걸렸다. 보다 안정적이고 연중 고른 소득이 발생하는 작목을 찾다가 꽃 재배로 전환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거베라는 한 번 심으면 5년간 계절에 상관없이 수확할 수 있다. 프리저브드 역시 계절에 상관없이 생산해 팔 수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열정과 자신만의 노하우로 농사에 전념한 것도 성공 요인 중의 하나였다.◆프리저브드 메카 육성과 해외진출부부는 꿈이 크다. 봉화를 거베라 특화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36농가에서 재배되는 10ha의 거베라 면적을 계속 확대하고 재배기술을 고도화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생화 생산에서부터 가공까지 아우르는 대량생산 기지화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자신이 보유한 프리저브드에 대한 기술과 용액 제조기술을 지역 농민들에게 보급함으로써 프리저브드의 메카를 만드는 것이다.이것은 고령화에 따른 은퇴농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프리저브드를 활용한 예술품과 실내 장식품을 만들어 해외로 진출하는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프리저브드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솜씨가 합쳐지면 꽃을 활용한 새로운 한류문화로 각광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장명: 에버로즈▲농장주: 박지훈·신동숙 (2015 강소농)▲구입문의: 054-673-7715, 010-4015-1188▲홈페이지 : www.everose.kr▲소재지: 봉화군 봉화읍 화천로 255▲이메일: jihun1972@hanmail.net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