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36) 고령고

대가야 문화의 기운과 주산의 정기를 받아 미래에 대한 꿈과 끼를 키워가는 기능인의 산실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고령고등학교는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위치한 명문 특성화고등학교다.고령고는 1954년 6월 고령농업고등학교로 개교했다. 1988년 전국 농고 자립체제 실적우수로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6년 고령실업고로 개명했다.당시 농업고에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이 농업과 관련 없는 기업체로 취업하거나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어 농업 후계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시기였다.실업고로 전환한 후 2003년에는 강당과 도서관을 개관했다. 2005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학교평가 우수교로 선정되기도 했다.이후 2010년 고령실업고와 고령여자종합고등학교를 통합하면서 또 한 차례 교명을 ‘고령고등학교’로 개명했다.고령고는 1954년 개교한 이래 숱한 지역의 인재를 배출해 왔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끊임없는 발전으로 대가야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은 명문 특성화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현재는 전문계 특성화고로 조리와 실내장식디자인 분야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뛰어난 소질과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맞춤식 특별 교육을 통해 감성과 창의력이 조화된 훌륭한 기능인으로 성장하고 있다.교훈은 ‘큰 꿈, 높은 이상, 정진하는 고령인’이다.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 장미다.지역을 대표하는 전문계 특성화고로 조리과 60명, 실내장식디자인과 59명, 특수학급 14명 등 총 학생 수 133명에 교직원 36명이 근무하고 있다. 2018년 9월 제26대 진영대 교장이 취임했다.고령고 학생들이 경북도교육청의 글로벌 현장학습을 통해 해외 취업에 잇따라 성공하며 후배들의 길 또한 활짝 열어주고 있다.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4명의 조리과 학생이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2019년 10월 글로벌 현장학습을 위해 호주 시드니로 출국한 학생들은 6주간의 호주 현지 적응과 호주 요식산업 전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에게 직무교육 과정을 이수한 4명 전원 호주 현지에서 취업을 확정 짓는 성과를 냈다.고령고는 글로벌 현장학습 교육 확대를 통해 선진기술 습득과 다양한 문화 체험 기회 제공 등으로 학생들이 글로벌 기능·기술 인재로 해외에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총동창회고령고 총동창회는 1976년 당시 고령 농산물검사소에 근무하던 1회 졸업생인 이재철(회장 작고)동문, 고령군청 공무원인 최건(부회장)과 김종규(총무) 동문 주축으로 동창회를 설립했다.1978년 농협중앙회 고령군지부 신용과장이던 김정민씨가 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장학사업과 동문회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1994년까지 회장을 맡았다.1994년 4월 박영화 초대 고령군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3대 회장에 취임, 4대까지 연임했다.박 회장이 1998년 경북도의원에 당선돼 건설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모교 증축 등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또 제 5대 회장으로 취임한 운수농협 조합장 출신인 최종흥 회장은 1999년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활약하고 있는 3천여 명(1~43회) 동문들의 추억과 연락처가 담긴 총동창회 명부를 발간했다.총동창회 회원 명부에는 회원 연락처와 학교 이모저모, 동창회 정관, 역대회장 등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재경고령고 동문회 창립재경고령고 동문회 창립은 1999년 가을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재경 고령중 동창회 행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동문들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인근 찻집으로 자리를 옮긴 7명의 선후배들이 담소를 나누던 중 김수호(5회) 동문이 동문회 창립을 제안하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급물살을 타게 됐다.그 자리에 있던 김수호, 윤웅(6회), 김용득·최종동·황길수(7회), 조명숙(15회), 서상식(17회) 동문이 창립추진위원회 구성에 동의했다. 당시 고령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최종동 동문이 실무를 맡으면서 재경동문회 창립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당시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하던 동문들이 재경동문회 창립에 너나없이 적극 동참했다.2000년 5월7일 서울 서초동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재경 동문회 창립총회에 1회 졸업생 이장환(영진석유 회장) 회장, 피홍배 삼정기업 회장, 김말암 전 부평경찰서 정보과장을 비롯한 서울·경기지역 동문들과 고향 고령에서 최종흥 총동창회장, 전상호 달성군문화원장, 임병철 고령군의회 의장, 박영화(4회) 경북도의원 등 100여 명의 동문들이 대거 참석했다.이날 이장환 동문이 재경동문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사무국장에 최종동(7회), 총무에 황영만 동문 등으로 출범했다. 초대 이장환 회장은 분기별 모임을 가지고 봄가을엔 등반대회 행사 등으로 동문 간 친목 도모를 다졌다.이 회장이 6년간 재경동문회를 이끌며 다져놓은 기반이 원동력이 되어 2대 김수호, 3대 최종동, 4대 황길수, 5대 현 조규돈 회장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특히 매년 서울지역에서 열리는 정기총회 때는 고향 고령에서 이태근 전 고령군수, 곽용환(20회) 고령군수를 비롯해 역대 동창회장들이 참석해 위상을 높이고 있다.◆동문들 근황고령고 총동창회는 매년 봄 동창회를 열고 동문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이날 동문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모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총동창회와 재경동창회에서도 고령군교육발전 기금 조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특히 재경동창회 이장환 회장이 2015년 제25회 자랑스런 군민상 수상자로(지역사회발전부문) 선정되기도 했다.이 회장은 고령고 재경동창회장, 경북 시·도민회 상임부회장, 24~26대 재경 고령군향우회 회장으로 재임하며 교육발전기금 3천5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해 왔다.또 전 고령군 명예군수로서 군민과 공무원의 가교 역할은 물론 기업투자유치 설명회, 중앙부처 공직자 간담회 등에 참석하는 등 기업유치와 정부예산 확보에도 노력한 점 등으로 군민상을 수상했다.◆고령고가 낳은 인물고령고 1회 졸업생 이장환 동문은 영진석유 회장, 재경대구·경북 시·도민회 자문위원회 회장으로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재향고령군향우회 회장, 성산이씨 대종회 회장, 명예고령군수 등을 역임했다.청와대 총무비서실 출신인 1회 졸업생 피홍배 삼정기업 회장은 최경주 골프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또 경찰고위직에는 김말암(1회) 전 부평경찰서 정보과장, 도상길(2회) 전 제천경찰서장, 여경동(21회) 전 성남시 중원경찰서장, 홍재희(23회) 현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정보보안과장, 정경원(23회) 현 인천 남동경찰서 112종합상황실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임병철(1회) 고령군의회 초대 의장을 비롯해 박영화94회), 김희수(14회), 곽광섭(14회) 동문이 있다. 고령군 기획감사실장 출신에 박지수(7회)·신태운(16회), 주민복지실장에 이호(19회) 동문 등이 있다.특히 3선의 곽용환 고령군수는 20회 졸업생이며, 권오광 전 쌍림면장, 전은근 전 고령군농업기술센터 소장, 박윤수 과장이 동기다. 지난해 말 퇴임한 이남철(23회) 행정복지국장, 김길수(24회) 건설도시국장 등 고령군 전·현 공무원 중 동문이 많다.◆이문석 총동창회장 인터뷰“침체 위기를 걷고 있는 총동창회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여러 가지 행사를 나름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모든 게 무산될 것 같습니다."고령고 총동창회 이문석 회장은 “올해 봄 매년 열리는 총동창회 개최 등을 계기로 동창회 활성화에 불을 지필려고 했으나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며 아쉬워 했다.그는 “고령고 총동창회는 농고에서 실업고 그리고 특성화고 인문계로 전환하면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 등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 정·관계 유명 인사는 배출하지 못했지만 나름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묵묵히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지난해부터 재경동문회를 주축으로 모교 장학회 설립에 나선 가운데 총동창회 일부 동문들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추진이 되면 힘을 보탤 생각이다”며 “이와 함께 후배 양성과 학교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문석 회장은 “앞으로 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며 “읍내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선후배들이 고향 방문 시 언제나 들릴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뚜벅뚜벅 대구·경북 한 바퀴(4)-한반도의 아침이 시작되는 곳, 철의 도시 포항

포항은 1970년대부터 대한민국 산업의 쌀이라고 하는 제철의 허브였으며 이젠 바이오·정보기술(IT)·신소재 분야의 기업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오늘날 ‘철의 도시’로 불리는 포항은 산업도시로의 이미지가 좀 더 강한 면이 있지만 문화관광에서도 여느 도시보다 콘텐츠가 풍부한 곳이다. 영일만으로 상징되는 푸른 바다를 끼고 있으며, 매년 해맞이 축제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구룡포와 호미곶 일대에 몰려든다. 영일대해수욕장을 비롯한 8개의 해수욕장과 동해안 전체에서도 유일하게 부딪치는 파도를 직접 느끼며 걷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 있는 포항은 동해안 제일의 해양관광 도시다. 내륙에는 내연산과 운제산이 있어 사계절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죽장 하옥 계곡은 일 년 내내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특히 밤이 되면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포스코 야경도 누구나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할 절경이다. 역사와 전통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지만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연오랑·세오녀에 얽힌 아름다운 설화도 있다. 이러한 풍부한 문화관광 콘텐츠들이 한데 모여 포항 12경으로 꾸려졌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주저하고 있다면, 드넓은 바다와 더불어 시원한 계곡에서 한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포항으로 떠나 보자. ◆한반도 호랑이의 기운,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한반도 최동단지역으로 영일만을 끼고 동쪽으로 쭉 뻗은 트레킹로드다. 서쪽의 동해면과 동쪽의 호미곶면, 구룡포읍, 장기면에 걸쳐 있다. 연오랑세오녀의 터전인 청림 일월(도기야)을 시점으로 호미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동해면 도구해변과 선바우길, 구룡소를 거쳐 호미곶 해맞이 광장, 경주와의 경계인 장기면 두원리까지 전체 길이는 58㎞에 달한다. 조선 명종 때의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를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봤다. 더불어 백두산은 호랑이 머리 중의 코이며, 호미반도는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천하 명당이라 했다. 바로 옆에 바다가 있고 파도가 치는 호미반도 길 해안둘레길은 왼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동해바다를 보면서 오른쪽으로는 수놓은 듯 보랏빛 해국이 펼쳐져 있다. 여왕바위, 힌디기 등 아름답고 기묘한 바위를 감상하면서 파도소리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걸으면 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발 아래로 보이는 파도를 보고 들으면서 한 나절 걸을 수 있으며, 일출이나 일몰 시간에 떠오르고 지는 해를 보면서 걸으면 그 황홀한 광경과 벅찬 감동은 경험해 본 자만의 특권이다. ◆내연산 12폭포 비경과 청정의 보경사 백두대간 중 낙동정맥은 청송에서 포항으로 내려온다. 그 낙동정맥 아랫자락에 있는 내연산은 포항시와 영덕군에 걸쳐 있다. 해발 710m로서 크지 않은 산세를 이루고 있으나 심산유곡의 절경만큼은 어느 명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2폭포골·청하골·보경사계곡·연산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내연골은 기암절벽 아래로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크고 작은 열 두 폭포가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비경을 바라보면 산에 들기도 전에 스트레스는 어느새 사라진다. 내연산 계곡은 천년고찰 보경사에서 시작된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때에 지명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스님이 중국에서 가지고 온 불경과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연못에 묻고 지은 절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대웅전, 적광전, 천황문, 요사채 등의 당우(堂宇)가 여러 채 있지만, 연륜에 비해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절집의 분위기가 번잡하거나 호사스럽지 않아서 좋다. ◆땀이 빛이 돼 찬란하게 비추는 곳, 포스코 야경 1973년 6월9일 오전, 강한 모래바람 속에서 5년간 피땀 흘려 지어진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어 갈 첫 쇳물이 쏟아졌다. 이 첫 쇳물이 쏟아지는 모습에 감격한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현장의 임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부둥켜안고 환희의 눈물 속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한 감동적인 역사가 담겨있는 포스코는 이제 제철소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야간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밤이면 화려한 불빛을 뽐내고 있다. 1천 500여개의 친환경 고효율 LED 조명이 장착되어 있고 제철소의 용광로를 상징하는 색채를 구현하기 위해 금빛을 테마로 구조미와 색채미, 입체미를 부각한 것이 특징이다. 포스코 야경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영일대해수욕장이다. 국내 최대 해상누각인 영일대의 야간 조명과 어우러져 더욱 장관을 이룬다. 그 외에도 형산강체육공원, 해도근린공원, 송도해변, 환호공원도 야경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그리고 포스코 30여 년의 역사와 정신, 기업문화, 비전을 담은 포스코역사관도 꼭 한번 가볼만하다. 1968년 창사한 이후부터 역사와 기록, 과거와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구상이 잘 전시돼 있다. 2층의 전시홀에서는 창업과 건설과정, 청암 박태준 회장, 세계 속의 위상 등을 담아 9개의 주제별로 구분돼 전시 중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핫 플레이스, 구룡포 호미곶에서 남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구룡포에 가면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적산 가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거류지였던 구룡포 읍내 장안동 골목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직도 일본풍이 물씬 풍겨난다. 가옥 뒷산에는 일본인들이 만든 공원이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공원이 나오고 그 안에 선원들의 무사고를 빌던 용왕당도 보인다. 돌계단에 걸터앉아 일본인 골목을 바라보면 1920~1930년대 한국 속의 일본을 엿볼 수 있다. 사라진 흔적들이지만 오래도록 역사에 남겨야 할 현장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구룡포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배경지다. 드라마가 인기를 모으면서 단숨에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맛있는 포항여행, 포항물회와 구룡포과메기 화끈 시원함으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포항물회’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청정바다와 함께 해양도시 포항의 최고 먹거리는 단연 ‘물회’다. 물회는 포항 앞바다에 풍어를 이룰 때 어부들이 밥먹을 시간도 없을만큼 바빠서 큰 그릇에 펄떡거리는 생선과 야채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듬뿍 푼 후 시원한 물을 부어 한 사발씩 후루룩 마시고 다시 힘을 얻어 고기잡이를 했다. 여기서 유래된 음식이 ‘포항물회’다. 처음에는 어부들 사이에서만 유행하였으나 그 맛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있어 차차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지방특유의 음식으로 정착하게 되었고, 음식의 명칭도 자연스럽게 ‘포항물회’로 불리게 됐다. ‘포항물회’는 포항의 독특한 음식으로 흰 생선살을 사용해 단백질이 풍부하고 각종 양념으로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음식이다. 물회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며 도다리를 사용해 만든 도다리 물회, 뼈째 얇게 썰어 야채와 버무린 새꼬시 물회, 씹히는 맛이 일품인 해삼과 전복을 함께 버무린 특미 물회, 꽁치 물회 등이 있다. 물회의 양념으로는 배, 상치, 잔파 등을 넣고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비벼먹는 것이지만 고추장을 볶아서 만드는 물회와 고추장에 비벼먹는 물회가 있으며, 물 대신 살짝 얼린 육수를 쓰면 부서지는 포말처럼 시원한 포항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포항의 대표 먹거리로 구룡포 과메기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과메기는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나온 말이다.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영일만에서는 ‘목’이란 말을 흔히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다. 이 때문에 ‘관목’은 ‘관메기’로 불리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관’의 ‘ㄴ’받침이 탈락하고 오늘날의 ‘과메기'가 됐다. 동해에는 예로부터 청어잡이가 활발해 겨우내 잡힌 청어를 냉훈법이란 독특한 방법으로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건조 시켰다. 청어과메기의 건조장은 농가부엌의 살창이라는 것이었다. 이 살창에 청어를 걸어두면 적당한 외풍으로 자연스럽게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살창으로 들어오는 송엽 향까지 첨향된다. 이렇게 완성된 청어과메기는 궁중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환절기에 취약한 망막질환 망막혈관폐쇄증

평소 혈압이 높아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던 60대 남성은 최근 시력이 저하되고 눈앞에 날 파리가 날라 다니는 듯한 비문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별다른 통증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한 병원에서 망막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망막혈관폐쇄증을 진단 받았다. 뇌에 있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중풍이나 뇌출혈이 일어나듯 눈에도 중풍이 생길 수 있다. 눈 속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질환을 눈 중풍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의학적 명칭은 ‘망막혈관폐쇄증‘이다. 망막혈관폐쇄는 주로 고혈압이나 동맥 경화, 당뇨병, 혈액질환 등 전신질환에 의해 혈관 내에 침착해 있던 찌꺼기가 떨어져 혈관을 막아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망막혈관폐쇄 입원외래 별 환자 수는 2015년 125만968명에서 2019년 182만2천763명으로 최근 5년 간 약 45.7% 증가했다. 망막혈관폐쇄증은 혈관이 막힌 부위에 따라 망막동맥폐쇄와 망막정맥폐쇄로 구분한다. 망막정맥폐쇄는 보통 한쪽 눈에서만 발병한다. 따라서 환자들이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겼는지 모르고 방치하다가 시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치료시기를 놓치면 합병증으로 신생혈관 녹내장이 발병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망막동맥폐쇄는 동맥의 혈관이 막혀 발생하는 응급질환이다. 별다른 통증 없이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발병 후 24시간 이내 응급치료를 받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서구화된 식습관,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혈액순환 장애가 젊은 층에서도 증가한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지만 망막혈관폐쇄는 병의 경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망막정맥폐쇄증은 비응급 질환으로 치료 예후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하지만 망막동맥폐쇄증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처럼 촌각을 다투는 응급질환으로 분류돼 발병 후 2시간 이내에 병원으로 가서 안압을 낮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 시력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눈에 조금이라도 이상 증상이 느껴지면 지체 없이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다. 갑자기 시야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 보이거나 암점이 시야를 가리는 증상, 욕실 타일처럼 곧은 선이 휘어져 보이는 증상 등이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병원을 찾아 치료 받을 것을 권한다. 망막은 눈 속 깊숙이 위치해 일반적인 검사만으로는 이상 여부를 알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망막특수장비와 망막전문의가 갖춰진 병원에서 진료 받는 것이 중요하다. 망막정맥폐쇄는 망막 내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레이저치료와 항체주사치료, 또는 스테로이드 주입술을 시행한다. 그리고 신생혈관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범안저 광응고술이 사용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망막동맥폐쇄에 대한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뇌나 심장 등의 혈관이상을 확인하고자 신경과나 내과에서 전신 검사를 받도록 한다. 대구 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문다루치 원장은 “평소 전신질환이 있다면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평소 올바른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외선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금연하는 것도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또 “40대 이상이시라면 1년에 한 번 안저촬영을 통해 눈 상태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특히 당뇨와 고혈압, 동맥경화증, 고지혈증 환자가 망막혈관폐쇄증의 고위험군인 만큼 정기적인 검진과 상담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움말=대구 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문다루치 원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트윈데믹. 독감예방접종 중요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 다가오자 전문가들은 코로나에 독감 유행까지 겹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코로나와 독감은 증상이 유사해서 자칫 혼동될 수 있다. 코로나를 독감으로 또는 독감을 코로나로 오해할 경우 치료에 혼선이 올 수 있고, 의료기관에 유증상자가 급증하는 등 더 큰 혼란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이종주 원장(순환기내과 전문의)은 “코로나19는 아직 예방백신이 없지만 독감은 백신접종으로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코로나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Twindemic)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독감백신을 미리 접종하는 것이 좋다”며 “특히 고위험군인 65세 이상 고령자, 임신부, 만성질환자 등은 필수적으로 접종해야하며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동시 접종할 경우 호흡기질환 예방효과가 증가 한다”고 강조했다. 또 “평소 철저한 개인위생 관리와 함께 금연, 금주,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 적절한 운동 등 건강생활실천을 통한 면역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질환이 발견되면 적극 치료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독감백신은 통상 접종 2주 후부터 예방효과를 보며 6개월간 면역이 유지된다. 따라서 9~10월중 예방접종하는 것이 좋다. 생후 6개월~만 18세 어린이, 임신부, 만62세 이상 고령자는 올해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대상으로 보건소 및 지정 의료기관에서 독감백신을 맞을 수 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은 2020년도 독감접종(4가 백신)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반드시 예약을 해야 접종할 수 있다. 도움말=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이종주 원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문화재 -영양 하담고택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얼굴을 감싸고 있는 마스크 탓인지 이웃 간 대화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인사 한 마디도 건네기도 쉽지 않다.행여나 엘리베이터 등에서 자칫 헛기침이라도 내밷게 되면 괜스레 동승자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쩌면 우린 먼 훗날 후손들에게 코로나19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주인공 선조들로 기억될 것이다.답답한 가슴을 안고 경북 영양 ‘하담고택’을 찾아 나섰다.영양은 태백과 소백을 따라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와 낙동강 물줄기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고장이다.경북에서도 최오지에 속한 까닭에 청정한 산과 계곡에다 옛 정취를 머금은 정자와 고택이 즐비하다. 조선시대의 문학과 풍류를 즐기며 격조 높은 문화를 누렸던 선비 정신이 깃든 고장이다.영양에는 웅장한 아흔아홉칸 집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저 살림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소박한 건물로 보통 열 칸 미만이다.그래서 영양 지방에 사는 선비의 삶을 ‘초가삼간’ 문화라고도 한다. 초가삼간에도 만족을 느끼면서 생활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담 고택(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41호)‘하담고택’은 영양군 영양읍 삼지리 315-1번지에 있다. 영양읍에서 서쪽으로 난 마을길인 삼지길을 따라가면 가옥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남서향로 자리잡은 고택은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낮고 두터운 토석담장을 둘렀다. 대문 앞쪽과 좌측에는 마을길이 지나고 있으며 우측에는 이웃집이 자리하고 있다. 낮은 담장은 이웃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담장을 높이쌓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다.뒤뜰에 깔린 녹색 잔디와 푸른 하는 사이에 높인 고택은 고풍스런 멋을 풍긴다.하담고택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언관의 호(하담)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2003년 4월17일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41호로 지정됐다.조언관(1805~1870)은 벼슬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 큰아버지인 조홍복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당대 글이 밝기로 소문났다.병자호란 당시에는 먹고 살기 어려워 마을 주민들이 죽어나가자 직접 다니면서 시체를 치우는 등 봉사를 많이 해서 칭송이 자자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조언관은 봉사활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하담고택에서 북쪽 1시 방향에 있는 하담정에서 선비를 양성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다.이 같은 조언관의 선행은 어쩌면 선조들로부터 대물림해 온 것일법 하다.하담고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공을 세워 지헌대부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사월 조임(1573~1644)의 손자인 조시벽(1670~1753)이 1710년 경에 건립했다.조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2번에 걸쳐 군자금으로 써달라고 전재산을 내놓고 ‘홍의장군’ 곽재우의 지휘 하에 의병에 참여하는 등 누구보다 애국심이 컸다.하담고택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언뜻 사월 조임, 하담 조언관 등이 오늘날 살아있었다면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으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박함이 담겨있는 구조하담고택은 ‘ㅡ’자형 안채와 ‘ㄷ’자형 사랑채가 맞물려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조선중기 전형적인 사대부의 살림집 형태이지만 소박함이 담겨있다.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동측에 툇마루가 있는 1간 규모의 온돌방과 1.5간 규모의 온돌방과 정지간이 있다.대청의 서측에도 전면 툇마루가 있는 1간 규모의 온돌방이 있다. 대청은 우물마루 구조이고 전면으로 열려 있으며 배면에는 두 짝 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대청쪽으로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았고 동측 방 쪽에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통하도록 했다.대청 서측의 1.5칸 방은 전면과 배면에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고 정지와 고방 쪽으로 각각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다.최근 집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거주할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살짝 보완했다. 배면 기단 위에 샌드위치 패널로 보일러실을 꾸미고 외부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꾸몄다.사랑채의 기단은 자연석 주초를 놓고 누하주를 세워 상부 툇마루와 기둥을 받도록 했다.하담고택의 기둥은 모두 사각기둥으로 돼 있다. 기둥상부는 납도리 형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으로 끝을 와구토로 마감했다. 대문간채는 맞배지붕이다. 사랑채 마루에는 ‘荷潭古宅(하담고택)’ 편액이 멋진 글씨체를 뽐낸다. 안채 마루간에도 ‘三巖軒(삼암헌)’ 편액을 걸어 두었다.사랑채는 전퇴 형식으로 대문간을 중심으로 동측에 1간 규모의 온돌방과 2간 규모의 광이 있다. 광 배면에 2간 규모의 곡간이 있다.대문간 서측에는 1간 규모의 사랑방 두 개와 1간 규모의 사랑마루간이 있다. 사랑마루에 면한 사랑방은 배면에 반침을 달아 벽장을 꾸며 놓았다.사랑채의 두 방은 전면 각 칸에 두 짝 여닫이 띠살문을 달았고 마루간으로 두 짝 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마루간의 삼면은 두 짝 여닫이 띠살청판문을 달고 판벽으로 마감했다.사랑마루에 면한 사랑방은 배면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윗간과 통하도록 했다. 윗간 방은 좌우측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다.대문간의 동측 온돌방은 전면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측면으로 외여닫이문을 내어 광으로 통하도록 했다. 광의 북측에 있는 2간 규모의 곳간채는 안마당 쪽에 두 짝 널판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 ◆고인돌 이야기하담고택에는 고인돌이 있다. 남방식 형태로 구석기 또는 신석기 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것은 고인돌이 3개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담고택은 ‘삼암헌’으로 불리기도 한다.고인돌에 얽힌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고인돌에는 구멍들이 뚫려져 있다. 이것은 별자리를 의미하고 기록하기 위해 표시해 놨다는 것.실제로 영양지역은 밤하늘 투명도가 뛰어나 은하수, 유성 등 하늘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육안관측이 가능한 지역이어서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또 다른 이야기는 ‘다산’과 관계가 있다. 고인돌에는 달걀 반 개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성혈이 있다.선사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신앙의식은 생존을 위한 기원(祈願)으로 신변 안전이나 식량 확보를 위한 개체보존과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종족보존이 주된 형태다.하담고택의 성혈은 대(代)를 이어나갈 수 있게 자식들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로 전해지고 있다. ◆대를 이어온 고택 가꾸기마당에는 수백 년을 살아온 회화나무(홰나무)와 향나무가 있다. 홰나무는 학자수, 출세수, 행복수, 양반수로도 불린다.고택이나 관청 앞에서 서 있는 고목을 보면 어쩐지 선비정신이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홰나무는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도 알려졌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고, 서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홰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전해진다.향나무는 ‘믿음’을 상징한다. 믿음을 갖고 우애하며 살아가자는 뜻이 담겼다.하담고택에 버티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는 조시벽의 아들인 농수 조백규(1697~1762)가 심었다고 전해진다.잡귀를 물리치는 홰나무 덕분이었을까. 하담고택에 살았던 조시벽부터 조백규, 조호신, 조언관 등 모두 장수했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았다. 돌담에 대문이 없었던 것도 언제든지 이웃과 소통하고 도우기 위한 의미가 아니었을까.마당에는 연못도 있다. 하담 조언관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조그마한 연못에는 아직도 연꽃이 피고 물고기도 살고 있다.현재는 후손인 조국영(79)·심용진(72)씨 부부가 정성스럽게 고택을 가꾸고 있다. 비록 타 지역에 살고 있지만 1~2개월에 한 번씩 고택을 방문해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이들 부부는 이곳에 선비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매난국죽(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을 비롯해 라일락, 배롱나무 등 50여 종류의 식물을 심었다.하담고택은 영양의 숨은 명소다. 영양 고추연 테마공원에 인접해 있어 전국에서 하담고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자 찾는 방문객이 늘고 있다.하담고택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선조들의 따뜻한 이야기는 어쩌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고 실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어려울 때 일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 아는 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면 코로나19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80) 금관성의 파사석탑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관성의 파사석탑과 김수로왕, 허황후의 이야기는 설화에 가까운 사실적인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김수로왕이 6가야국 왕들과 함께 황금알에서 태어났다는 것, 미리 왕비가 될 여인이 나타날 것을 알고 신하들이 왕비를 추대하려는 것을 거절했다는 것, 왕과 왕비가 158세, 157세까지 살았다는 것 등이 비현실적이다.그러나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과 파사석탑이 엄연히 지금까지 가야의 땅에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 모두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이 삼국유사의 기록을 흥미롭게 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게 한다.설화 속의 파사석탑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줄 문화콘텐츠의 씨앗이 될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본다.◆삼국유사: 금관성의 파사석탑금관성 호계사 파사석탑은 이 마을이 금관국이었을 때 세조 수로왕의 비 허황옥이 서역의 아유타국으로부터 싣고 온 것이다. 동한시대 건무 24년 갑신년(48)의 일이다.처음 공주가 부모의 명을 받고 바다에 나가 동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파도신의 노여움에 막혀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와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 탑을 싣고 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제대로 건너와 남쪽 언덕에 와서 정박했는데 비단 돛에 붉은 깃발 그리고 붉은 구슬 같은 아름다운 물건이 함께 있었다. 지금은 그곳을 주포라 한다.처음으로 언덕 위에서 비단 바지를 벗은 곳은 능현, 처음으로 붉은 깃발이 바닷가에 들어온 곳은 기출변이라 부른다. 수로왕은 허황옥을 정중히 모셔 들여 함께 150여 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그러나 이때까지도 우리나라(고려)에는 절을 짓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다. 대개 불교가 이르지 않았고, 사람들이 기꺼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락국 본기에도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없다.가야국 제8대 질지왕 2년 임진년(452)에 이르러 그 땅에 절을 지었고 또 왕후사를 창건해 지금까지 복을 빌고 있다. 아울러 남쪽 왜구를 진압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가락국 본기에 자세히 실려 있다.탑은 네모나게 4면이요, 5층인데 조각한 모양새가 매우 기이하다. 돌에는 엷게 붉은색 무늬가 있고, 바탕이 아주 부드럽다. 이 지역에서 나는 종류가 아니다. 신농본초에 ‘닭 벼슬의 피를 찍어 시험한다’ 함이 이 것이다.금관국은 가락국이라고도 하고, 가락국 본기에 모두 실려 있다.석탑 실은 비단 돛배 붉은 깃발도 가벼이/ 신령께 빌어 험한 파도 헤치고 왔네/ 여기까지 이르려 한 허황옥만 도왔으랴/ 오래도록 남쪽 왜구의 침략을 막아주었네.◆금관성 파사석탑파사석탑은 경남 문화재 자료 제227호로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가야시대에 조성된 이형 석탑이다. 김수로왕의 비 허황후가 인도에서 올 때 배에 실어왔다는 돌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석질로 조성된 5층 석탑이다.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배필을 찾아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항해를 시작했다. 풍랑을 만나 항해에 실패를 거듭하자 파도를 잠재우는 신령스런 힘을 가진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가락국에 도착해 김수로왕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허황후가 타고 온 배는 발굴 결과 배의 나뭇조각을 통해 최소 15m 크기로 30여 명이 탈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당시 아유타국, 인도와 가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학자들에 의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가야지방의 고분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인도인의 DNA와 비슷한 DNA가 나왔다는 것과 인도 미쉬라의 궁에 허황후의 초상이 걸려 있고, 출생지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 언어학계에서도 한국어와 인도의 타밀어에 발음이 같거나 의미가 같은 단어들이 400~500개나 있어 가야와 인도는 어떠한 형태로든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학계에서는 또 설화와 다른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2천 년 전에 수개월이 걸리는 대양을 건너온다는 것에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전문가들은 파사석이 신비한 힘을 가졌다는 것보다 배의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는 평형석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분석한다.파사석탑의 석질은 우리나라에서 잘 나지 않는 돌인 파사석으로 구성됐다. 인도 남부지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돌이다. 파사석은 본초강목에 일종의 약재로 해독작용을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태우면 유황냄새가 나고 닭 벼슬의 피를 묻히면 응고되지 않고 피가 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또 파사석탑의 조각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풍랑을 만나도 안전하다는 설이 전해지면서 어부들이 바다로 나갈 때 파사석탑의 돌을 깨어가면서 석탑이 본래의 모습에서 많이 훼손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파사석탑의 은혜인도에 천 년을 함께 살아온 거북이 칠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바다의 용왕도, 지상의 황제도 부러워하지 않으며 우의가 좋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칠형제 중 막내가 용왕이 아끼는 닭을 모르고 잡아먹었다.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린 용왕이 거북이 칠형제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돌로 만들어버렸다.돌이 되어버린 거북이 칠형제는 비 오는 날에야 깨어나 하늘에 하소연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천 년이나 먹고 살던 대로 했을 뿐인데 용왕님의 미움으로 꼼짝도 할 수 없는 돌이 되어버렸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라고 빌었다.상제도 용왕의 뜻에 반한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너희들이 내가 시키는 일을 해준다면 마음대로 나다닐 수는 없어도 뜻대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거북이 형제들은 상제의 뜻에 따라 인도 아유타국 공주를 안전하게 대양을 건널 수 있도록 용왕 몰래 배에 올라 100일이나 거친 항해를 하면서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일을 했다.김수로왕은 왕비를 맞아 나라 전체에 잔치를 베풀었다. 또 상제의 말을 들어 허황후를 안전하게 데려온 거북이 형제를 왕궁의 뜰에 모시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닭을 잡아 제를 올리는 의례를 갖추었다.용왕은 거북이 칠형제가 가야국으로 몰래 들어간 것을 알고 닭 잡는 인부들을 못살게 굴었다. 허기진 거북이들은 다시 용왕에게 하소연했다.용왕은 거북이 형제들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주기로 했다. 대신 닭을 잡아먹었던 막내가 용궁에서 매일 아침 시간을 알리는 문지기가 되기로 하고, 거북이들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모든 감정을 풀기로 했다.이후 가야국에서 겨울이 지나고 본격적인 어업을 시작하는 이월 초하루에 파사석탑 앞에서 거창한 제를 올렸다. 풍랑이 일지 않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많은 고기를 잡아 잘 살 수 있게 해주길 기원하는 제를 올렸던 것이다.파사석탑으로 이름 지어진 거북이 칠형제는 허황후의 후손인 가야국 왕들의 소원은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면 그대로 들어주었다.특히 바다의 일을 부탁하는 일이라면 어김없이 소원을 들어주는 파사석탑의 영험함은 가야국 전체로 퍼져나가 백성들 모두가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었다. 이로 인해 바다로 나가는 백성들은 닭을 잡아 파사석탑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세월이 지나면서 파사석탑에 대한 전설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석탑의 조각을 품에 안고 바다로 나가면 아무리 거친 풍랑이 일어도 안전하다는 소문이 번졌다. 이 때문에 바다로 나가는 사람은 남몰래 파사석탑의 조각을 조금씩 떼어내기 시작했다.급기야 석탑이 원형을 잃고 크게 훼손되면서 안전하던 가야국의 뱃길에도 다시 재난이 닥쳐왔다. 이러한 소문이 왕실에 전해지면서 파사석탑에 누구도 근접하지 못하도록 누각을 지어 보호하기 시작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여성 인재의 산실, 남다른 애교심과 끈끈한 결속력, 경북여고 총동창회

우리나라 학원 역사에서 반드시 거론돼야 하는 학교가 몇 있다. 한국 여성교육의 역사로까지 점철되는 경북여자고등학교가 그 중 한 곳이다.1926년 개교한 경북여고는 해방과 분단, 전쟁의 아픔을 거쳤다. 근현대사에 있어서는 2·28민주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다는 의미까지 더하면서 여성 인재의 산실로 자리잡았다.◆학교 역사일제강점기와 유교적 봉건주의 영향으로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1926년 4월15일, 경북여자고등학교는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대구시 장관동에서 개교했다.공립여고로는 서울의 경기여고보, 평양여고보에 이어 국내 세번째 설립이다.1927년 11월 남산동 신교사로 이전했다. 당시 입학생은 2학년 38명, 1학년 100명이다.학교는 해방후 나타난 사회 전반의 혼란 탓에 학제와 학칙이 변경되면서 교명도 몇차례 바뀌었다.1938년 경북공립고등여학교, 1946년 경북여자중학교(6년제), 1951년 경북여자고등학교, 1952년 대구여자고등학교, 1953년 경북여자고등학교로 다시 환원돼 오늘에 이른다.이 시기에 교훈과 교가가 제정되고(1952~1953) 백합 교표(1958)가 새로 마련되는 등 현재 경북여고를 상징하는 표상들이 정착됐다.백합 교표의 흰색은 깨끗하고 소박하며 밝은 희망, 백합의 그윽한 향기는 고귀한 인품, 남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 백합이 깊은 산골에서 피어남은 세상 부패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사람을 뜻한다.개교이후 동문들은 청(淸), 명(明), 직(直), 현(賢), 강(强)의 학교 가르침에 힘입어 민족 독립과 여성 지위향상에 영향을 끼쳐왔다.경북여고하면 떠오르는 세로 흰 줄이 부착된 교복치마는 한복을 교복으로(10년 동안) 착용했던 개교때부터 입었던 것으로, 학교 자긍심의 표상이 됐다.당시 교복치마에 그어진 흰 줄을 보고 사람들은 ‘흰 칼을 찼다’고 부러워하면서도 교복만으로도 경북여고 학생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1980년대 교복자율화 시기에 동문들이 많이 아쉬워 한 것도 이 ‘세로 흰 줄’이었다.경북여고는 또 항일운동과 1960년 2·28 민주운동에 적극 참여해 대구 8개 고교와 함께 의거를 도모하기도 했다. 이때 지역학생 대표로 나섰던 한 명인 32회 장영향 시인이 쓴 시비(푸르른 2·28)가 2·28운동 60주년을 맞아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교정에 세워지기도 했다.◆총동창회 역사학교의 찬란한 역사는 구성원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1930년 8월22일 창립된 경북여고동창회는 초대 김두월 회장을 시작으로 37회 동문인 한재숙(현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장) 회장이 이끌고 있다.동창회 총회는 해마다 4월15일 개교기념일 모교에서 진행된다. 또 연중 운영위원회, 이사회, 임원회, 백합회, 기별 동기회를 통해 동창회 운영과 동문간 결속을 다지고 있다.총동창회는 개교 10주년마다 기념동창회지와 동창회원 명부를 발간하고, 기념음악회와 작품전 개최 등 성대한 축제를 열어 동문간 유대감과 애교심을 고취하고 있다.지난 2016년 개교 90주년 행사때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모인 동문 2천300여 명이 모교 교정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져 지역 사회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총동창회 내에는 지역별로 재경동창회(1948년 5월 창립, 초대회장 1회 최귀란), 재부산동창회(경남지부 1975년 7월 창립, 초대회장 3회 서봉희), 재미동창회(미국 남가주지부, 초대회장 3회 이순자)가 설립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경북여고총동창회의 또다른 자랑은 후배사랑을 실천하는 장학회다.동문장학회는 학생, 졸업생의 장학금 및 재임교사 연구비 지급 등 학교 발전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개교 40주년(1966년)을 기념해 십시일반 성의를 모아 발족됐다.장학회 명칭은 당시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으로 모금 과정이 힘들었다는 점과 선배들의 고결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설매(雪梅)라는 이름이 사용됐다. 1999년 1월 총동창회 설매장학회를 재단법인 설매장학회로 확대됐고, 2009년 6월10일 정관 개정으로 재단법인 경북여고동문장학회로 변경됐다.제1회 장학금은 1969년 4월 1만 원씩 10명에게 지급됐고, 이후 50년 이상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교육활동 지원에 쓰이고 있다.총동창회 백합회는 1987년 5월1일 결성돼 지금까지 총동창회 발전에 기여하는 소모임이다. 회원은 전·현 회장단, 자문위원, 부회장을 비롯해 운영위원회 추천을 받은 동문으로구성돼 있다. 회원 간 끈끈한 결속력은 이미 지역사회에 정평이 나있다. ◆끈끈한 결속력의 총동창회동문들의 애교심은 다양한 활동으로 엿볼 수 있다.총동창회 송년회는 해마다 12월 두번째 목요일에 개최되고 있다. 이날은 개교기념일과 더불어 동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연중행사로 친목 도모와 함께 각종 유익한 특강으로 또다른 배움을 얻고 이를 다시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2015년 4월 창단된 합창단 릴리하모니는 장경옥 명예회장을 고문으로 추대한 후 1대 단장으로 39회 이숙이 동문을 뒀다. 지휘는 계명대 음대 신미경 교수(43회), 반주는 최영미(47회) 동문이 맡아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현재는 2대 41기 이영숙 단장과 43기 신미경 지휘자가 릴리하모니를 이끌고 있다. 릴리하모니는 2016년 4월21일 개교 90주년 기념음악회, 2017년 4월15일 경북여고 개교 91주년 정기총회 축하 공연을 열었고 2017년 8월6일에는 ‘대구시민을 위한 대합창제’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에도 녹여들고 있다. 특히 그해 10월에는 미국 카네기홀 소아암환자 돕기 세계합창페스티벌에도 참여하면서 세계로 나눔과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2016년 개교 90주년 기념 총동창회 행사의 하나로 백합 가드닝전이 열린 후 매해 개교기념일을 전후로 동문들의 화훼작품들이 학교 역사관 등에 전시되고 있다. ◆여성 인재 산실경북여고는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를 대거 배출한 명문고다.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에 고른 인재를 배출하면서 우리나라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노태우 대통령 영부인 김옥숙 여사(25회)를 비롯해 주양자 복지부 장관(21회), 권양자 정무장관(26회), 추미애 법무부 장관(48회)이 있다. 또 장관급 장군으로 윤종필 준장(42회·19대 국회의원), 박순화 준장(46회), 한국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군인 송명순 준장(47회)도 경북여고 출신이다.정계에서는 21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서정숙(41회)·한무경(48회) 의원과 송영선 의원(42회, 17·18대) 등이 있다.무문자 종족인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과 콩고의 피그미족에게 훈민정음을 보급하고 있는 이기남 회장(25회·원암문화재단이사장)과 한복의 현대화, 세계화를 꿈꾸며 ‘바람의 옷’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디자이너 이영희씨도 26회 졸업생이다.이인선 전 경북도 부지사(48회)도 학교 졸업생이며 이밖에도 학계·의학계·재계 등 사회 전반에 이름난 졸업생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게 사실이다. ◆한재숙 총동창회장“모교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데 동창회의 존재 이유가 있죠. 동문들은 모두 같아요. 정중동으로 명문여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학교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2017년부터 총동창회를 이끌고 있는 한재숙 회장은 학교나 동문을 소개함에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어려운 시대적 배경에서 모교와 후배를 위한 헌신적 사랑을 보내준 선배나 후배, 모교에 행여 누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다.‘동문들의 모교 사랑이 유독 남다르다’는 말에 한 회장은 개교 90주년 일화를 소개했다.“동문들은 해마다 4월이면 으레 학교(경북여고) 가는 날로 여기죠. 4월15일 개교기념일 모교서 열리는 동창회 총회에 참석하고, 학교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인데, 2016년 개교 90주년 행사때는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가 학교로 속속 몰려들었죠. 2천 명이 넘는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습니다.”지난 9일에는 학교 음악실의 피아노가 낡아 ‘음이 맞지 않다’는 불편을 듣고 장학회에서 그랜드피아노를 마련해 기증했다. 후배들이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아낌이 없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특히 힘들었던 대구를 위해 동창회가 마음을 보였다. 재경동창회가 코로나 극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7천만 원의 성금을 보냈고 총동창회가 3천만 원을 추가로 보태 1억 원의 성금을 기탁했다.경북여고가 대구시민들에게 받아온 사랑과 지지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다.“모교발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데 동창회 존재이유가 있다”고 밝힌 한 회장은 곧 다가올 개교 100주년을 준비하며 동문들의 소식을 모으고 있다. 하루하루의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마지막으로 한 회장은 새로운 100년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존경하는 선배님, 사랑하는 후배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모교와 동창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백합인의 자존심입니다. 경북여고가 지나온 백년의 전통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백년을 준비하고 힘차게 열어갈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열과 성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가을철 목 질환 및 관리법

완연한 환절기가 다가왔다. 환절기는 기온차가 크고 건조하기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감염환자가 부쩍 늘어난다. 우리의 목안은 점막으로 구성돼 원래 건조한 환경에 매우 약하다. 특히 여름에는 아무런 증상을 못 느끼는 환자들이 유독 가을만 되면 목안이 칼칼하고 따가운 증상을 호소하는데 이 경우 대부분 환자는 감염의 소견 없이 정상소견을 보인다. 이럴 때는 미지근한 물만 자주 마셔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의 열감과 지속되는 전신 무기력증상, 두통 등의 증상이 지속되면 반드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요즘이 일 년 중 편도주위농양, 경부 심부감염으로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증 감염 환자의 대부분은 처음에는 사소한 목감기, 바이러스 편도선염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증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적절히 치료하지 않거나 휴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해서 생활하다보면 결국에는 세균감염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당뇨를 앓거나 투석을 하는 환자들은 면역기능이 약해져 있으므로 증상이 있을 경우 바로 병원을 찾아 진찰을 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면역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 감염될 경우 건강한 이들보다 심장 및 큰 혈관들이 지나가는 종격동까지 감염이 전파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당히 높은 치사율을 보이므로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가을철에 목을 관리하는 방법은 첫째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다. 둘째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음성휴식을 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유의해야 할 점은 속삭이는 목소리는 편하게 말하는 것보다 해롭다는 것. 셋째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을 열심히 씻고 독감 예방접종을 해야 하며 전신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넷째 충분한 휴식과 비타민 섭취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목 질환으로 후두개염이 있다. 이 질환은 후두 덮개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처음에는 목안이 아프고 음식을 삼킬 때 통증을 일으킨다. 단순 목감기로 생각하고 약국에서 약을 복용하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종종 염증이 급속도로 진행돼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기도 한다. 심하면 기관절개술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흔한 질환은 아니므로 혹 목이 아프면서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하다면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여창기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두통과 목디스크 유발하는 거북목증후군

직장인이나 특히 장시간 앉아서 컴퓨터로 업무를 하는 사무직에 종사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뒷목 혹은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 부위에 통증을 호소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거북목증후군으로 볼 수 있다. ◆C자형의 정상 목, 일자형의 거북목 거북목증후군의 증상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생기지는 않다 보니 대부분 환자가 참고 지내곤 한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통증이 점점 심해져 병원을 찾게 되면 ‘거북목’ 또는 ‘일자목’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실제로 거북목이나 일자목이라는 의학적 진단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다 보니 그런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경추의 경우 7개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으로 C자형을 유지하는 것이 생리적으로 올바른 정렬 상태이며 이를 경추 전만이라고 한다. 경추 전만이 소실될 경우 머리 하중이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아 경추 마디마디에 가해지는 하중이 증가될 수 있다. X-ray 촬영 시 이러한 정상적인 경추 전만이 소실돼 경추 1번부터 7번까지 일자형으로 보이는 경우 일자목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하기도 한다. ◆방치하면 목 디스크 발병 위험 커져 현대 직장인의 경우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면서 습관적으로 구부정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된다. 특히 컴퓨터의 높이가 눈높이보다 낮을 경우 혹은 의자의 높이가 높을 경우에는 장시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목과 등, 허리가 구부정하게 된다. 고개가 1㎝ 앞으로 빠질 때마다 목뼈에는 2~3㎏ 가량의 하중이 더 가해지며 고개를 숙여 60도까지 굽히면 최대 27㎏ 정도의 부하가 더해진다. 이러한 긴장 상태가 장기화되면 뒷목이 뻐근하고 무거우며 뒷목에서 어깨 부위 혹은 견갑골 사이 부위에 통증이 지속되어 쉽게 피로해진다. 심지어 귀 뒷부분에서 머리까지 이어지는 두통이 생길 수 있으며 장기화될 경우 올바른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도 통증이 지속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부정한 자세’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며 ‘뒷목이 뻐근한 것’이 가장 흔한 증상이다. 이렇게 장기간 과도한 부하가 경추에 가해질 경우 목 디스크 발병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자목의 경우 측면 경추 X-ray를 촬영하면 쉽게 경추 정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거북목 또한 복잡한 진단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의학적으로는 귓구멍이 견관절 중심보다 앞으로 유지된 경우에 진단할 수 있다. 거북목의 경우 나도 모르게 자세가 그렇게 취해지다가도 언제든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역적인 자세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일할 때 과도하게 목을 앞으로 빼고 장시간 있을 때 관련 증상이 나타날 경우 진단된다. 도움말=인제대 부산백병원 정형외과 박대현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79) 사불산 굴불산 그리고 만불산

삼국유사를 자꾸 읽어갈수록 신라는 역시 불국의 나라였다는 것을 실감한다. 사불산과 굴불산의 믿기지 않는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의 현존함이 신화 같은 유사를 역사로 받아들이게 한다.또 당나라 황제를 감탄하게 한 만불산을 조각한 신라의 불심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감각과 과학적 기술력은 수십 세기를 훌쩍 뛰어 넘어도 신비롭고 감탄스럽다. 이는 신라의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하는 삼국유사가 의도한 제작의 목적을 보는 듯하다.문경 대승사의 사불산 사불암, 경주 금강산 백률사의 굴불암, 그리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만불산의 흔적을 더듬어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소개한다.◆삼국유사: 사불산 굴불산 그리고 만불산죽령의 동쪽 100리쯤에 우뚝 높이 선 산이 있다. 진평왕 9년 갑진년이었다. 4면이 널찍하고 사방여래를 새긴 큰 바위 하나가 갑자기 하늘에서 그 산꼭대기에 떨어졌다. 모두 붉은 실로 감싸 있었다.왕이 이를 듣고 가마를 타고 가서 우러러 경배하고, 바위 옆에 절을 지었다. 이름은 대승사이다. 비구승 망명을 불러다 연경을 외게 하고 절을 주관하되 돌을 깨끗이 하고 향불이 끊이지 않도록 했다. 부르기를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했다.비구승이 죽었는데 장사를 지내고 나니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또 경덕왕이 백률사에 갔을 때였다. 산 아래 이르자 땅 속에서 부처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보게 했더니 큰 돌이 나왔는데 4면에 사방불이 새겨져 있었다. 이 때문에 절을 지어 굴불사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은 잘못 불러 굴석이라 한다.왕이 또 당나라 대종황제가 불교를 매우 숭상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기술자들에게 다섯 빛깔 나는 담요를 만들고, 또 침단목과 좋고 아름다운 옥으로 새겨, 높이가 한길쯤 되게 산 모양을 만들어 담요 위에 올려놓았다.산에는 깎아지른 바위와 기이한 돌 그리고 물이 솟아나는 구멍을 띄엄띄엄 만들었다. 한 구획마다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여러 나라 산천의 모습과 산들바람이 집안으로 들어가고 벌 나비가 날아다니며 제비와 참새가 춤추는 모습이 은은히 숨어 보이는데 실제인지 만든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그리고 그 안에 1만 개의 불상을 모셨다. 큰 것은 1촌이고 작은 것은 8~9분쯤 되었다. 그 머리는 큰 기장 알만한 것, 콩 반쪽만한 것도 있고, 골뱅이처럼 틀어 올린 머리카락 모양과 두 눈썹 사이의 백호, 눈썹과 눈까지 또렷했다. 모두 갖추어진 모습을 비슷하게는 설명하겠지만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만불산이라고 했다.다시 금과 옥을 아로새겨 깃발과 일산 그리고 우거진 치자나무 꽃 열매 등과 장엄하게 100보가 되는 누각과 본당, 강당도 만들었다. 대체적으로 작기는 하나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앞에는 비구상 1천여 개를 돌아다니듯 만들고, 아래에는 자줏빛 금종 세틀을 늘어놓았는데 모두 종각과 좌대가 갖추어졌다. 고래 모양으로 쇠 부채를 만들어 놓고, 바람이 불어 종이 울리면 돌아다니던 승려들이 모두 엎드려 땅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는 것 같았다. 은은히 염불소리가 들리니 이는 종에서 나는 것이었다. 비록 만불이라 부르기는 하나 그 실제를 다 적을 수 없다.다 만들어지자 사신을 보내 바쳤다. 대종은 이를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신라 사람들의 재주는 하늘이 만든 것이로군. 사람의 솜씨가 아니야.”이에 구광선으로 바위 사이에 덮어두니 이 때문에 불광이라 불렀다. 4월8일에 두 거리의 승려들을 내도량으로 불러 만불산에 예배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삼장 불공에게 밀교의 경전을 천 번 되풀이 염송하며 경하하도록 했다. 보는 이마다 모두 그 솜씨에 탄복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경덕왕의 고민신라 35대 경덕왕은 34대 효성왕의 동생이다. 경덕왕은 742년에 즉위해 765년까지 23년간 왕위에 있었다. 이때가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안정적이고 힘이 팽창했던 시기다. 문화 예술적으로도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때로 드러난다.경덕왕은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안정적인 나라로 운영하기 위해 사벌주를 상주로 고치고 삽랑주를 양주로 고치는 등 지명을 고치고, 제도를 개편하는 한편 관직의 명칭도 대거 바꾸었다.또 경덕왕은 불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다. 불국사와 석굴암, 굴석사와 대승사 등의 많은 불사를 진행하며 표훈대사 등의 승려들에 대한 대우를 특별히 높였다. 특히 불사에 많은 공을 들였던 것은 안정적으로 왕위를 물려줄 아들을 얻기 위한 애착 때문이었다.경덕왕의 아들에 대한 집착은 무섭도록 강했다. 첫 번째 왕비 김순정의 딸 삼모부인이 아들을 잉태하지 못하자 성급하게 둘째 왕비로 김의충의 딸 만월부인을 맞아들였다. 그러나 만월부인에게서도 아들이 생기지 않아 경덕왕은 급기야 표훈대사를 통해 천제께 아들을 점지해 줄 것을 당부했다.표훈대사는 당시 불국사에 머물러 있었다. 표훈대사의 법력은 이미 일반성인의 수준을 넘어 하늘을 오가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경덕왕의 부탁은 표훈대사로서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표훈은 경덕왕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굴불사 부처에게 일을 의뢰하기로 하고 행장을 꾸려 굴불사로 향했다. 굴불사의 사면불에는 아홉 부처가 모두 특별한 능력을 자랑하며 각자 동서남북방에 자리를 잡고 있다.표훈은 이미 아홉 부처 중 상제와 잘 통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부처를 점찍어두고 있었다. 경덕왕을 애처롭게 생각하는 서쪽의 아미타 삼존불이었다.이들이 경덕왕을 기껍게 생각하는 것은 1천여 년이나 땅속에 묻혀 있던 자신들을 기꺼이 지상으로 불러내어 절을 지어 백성들이 매일 거르지 않고 예불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표훈은 굴불사의 사방불 앞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기 위한 거대한 상을 차렸다. 불상 주변에 팔색의 화려한 비단을 두르고, 매 끼마다 온갖 산해진미로 산처럼 먹을 것을 쌓아 정성을 드렸다. 매일 새벽 몸을 정갈하게 하고 사방불의 서쪽에서 아미타삼존불을 마주하고 앉아 기도를 드렸다.그의 깊은 정성에 삼존불은 21일 만에 감응해 표훈과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당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삼존불의 물음에 표훈은 “천년 사직을 이을 기둥을 얻고자 하옵니다”며 간절한 목소리로 아뢰었다.삼존불은 각자 “우리가 아들딸을 점지할 수도 있지만 나라를 경영할 재목은 하늘의 뜻이니 천제께 부탁을 드려야 한다”며 일의 중대함을 이야기 하고 천제가 아끼는 우협시보살이 일을 맡기로 했다.우협시보살이 순식간에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나를 닮은 딸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신다”며 천제의 이야기를 전했다. 표훈은 경덕왕에게 하늘의 뜻을 아뢰자 한사코 아들이어야 한다고 다시 당부하게 했다.이에 표훈이 경덕왕의 완고한 의지를 전하자 좌협시보살이 담당하기로 하고 사방불에서 몸을 날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제의 고집도 좀체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미타삼존불과의 두터운 친분 때문에 천제도 어쩌지 못하고, 우협시보살의 얼굴을 닮은 아들을 약속했다.자신의 의지를 꺾게 한 경덕왕의 고집에 천제는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천년 신라의 사직을 기울게 하는 역사를 써버렸다.하늘에 빌어 아들을 얻은 경덕왕은 기쁨에 겨워 표훈대사에게 크게 감사하며 불국사에 만결의 토지를 희사했다. 이어 온 나라에 축복하는 분위기를 담아 1년간 백성들의 세금을 면제케 했다.그러나 재앙의 씨앗은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하늘로 날아올라 경덕왕의 심부름을 했던 사방불의 좌우 협시보살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금도 굴불암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별개의 조각으로 떨어진 채 서있다.경덕왕은 아들을 얻었지만 7년 만에 죽음을 맞아야 했다. 아들은 7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이어 36대 혜공왕이 되었지만 숙부 언승과 김경신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본격적인 신라 하대 왕위쟁탈전이 시작되며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34) 칠곡 순심연합총동창회

순심연합총동창회는 가톨릭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순심교육재단의 칠곡지역 4개 남녀 중·고등학교를 묶어 1969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순심중·고와 순심여중·고다.순심교육재단은 ‘깨끗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돕는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 아래 1936년 왜관 천주교회 소화여자학원을 설립했다. 올해 개교 84주년을 맞고 있다.그동안 5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순심교육재단은 지역 발전의 근간과 원동력을 키우는데 앞장서고 있다.◆가톨릭 정신으로 순심인의 단합에 앞장5만 순심인의 하나 되는 힘인 총동창회는 1978년에 결성된 재경순심총동창회(회장 윤원섭·고 22회)가 중심이 됐다.올해로 43년의 전통을 가진 재경총동창회가 지금의 순심총동창회의 기반과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현재 부산·구미·포항·울산·인천·대전 등 전국 주요도시에 지역별 동창회가 생겨 동문들의 교류역할의 장이되고 있다.1990년 가을, 1천200여 명의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어울림한마당행사인 ‘제1회 체육대회’를 개최했다.매년 모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행사는 순심선후배간의 화합과 단합을 다지는 소통의 장이자 학교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1993년 1월 순심총동창회 창간호를 발간한 후 올해 제41호를 발간해 순심의 역사와 뿌리를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2012년부터는 순심인이 한자리에 모여 순심연합총동창회장 및 장학회이사장 등 이·취임식을 가지며 가톨릭정신인 순결과 깨끗함 마음으로 새해인사 모임을 함께하는 가장 의미 있는 행사도 연다.◆훌륭한 후배 양성의 밑거름 총동창회 장학재단순심연합총동창회장학재단은 2012년 순심연합총동창장학회로 설립됐다. 이 전에는 총동창회와 동기회·동문 등에서 장학 사업을 펼쳐왔다.체계적인 장학재단 운영의 중요성을 느낀 나채홍(중 16회) 초대 이사장과 윤원섭 재경총동창회장이 앞장서 설립의 기초를 마련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설립 첫해인 2012년 19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1천400만 원을 전달했다. 이후 지난 8년 동안 성적 우수자와 저소득층 등 200명이 넘는 후배에게 총 1억9천1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이 결과 서울대와 서울의대 등 서울권과 지역의 우수 대학에 입학하는 등 미래 칠곡을 빛낼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순심이 낳은 인물제11~14대까지 8년 동안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장영철 동문(중 4회)은 전 관세청장과 노동부장관, 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제21·22대 졸업생인 백선기 동문(고 21회)은 칠곡군수를 3연임 중이다. 또 학계와 재계, 법조계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며 순심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여고의 경우 권수옥(38회) 포항공대 교수, 이정은(46회) 가천대 의대 교수, 이경아(47회) 김천지청 검사 등이 순심인의 당당한 여풍을 일으키고 있다.남고는 이판석(중 13회, 고 10회) 영진전문대학 부학장, 소병욱(중17회, 고 14회)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등이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재계는 이은상(중 28회, 고 25회) 세안ENC대표, 곽근호(중 25회) A+ 에셋 회장이 있다.관계는 이목상(중 10회)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안강식(중 24회, 고 21회) 전 북대구세무서장, 이갑수(중 32회, 고 29회) 구미경찰서장, 유지용(중 34회, 고 31회) 김천세무서장 등이 있다.이 밖에 법조계, 종교계, 군 출신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했다.◆가톨릭정신을 펼치는 순심연합총동창회칠곡군은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디젤루나 타조 지역에 ‘칠곡평화마을’을 조성하고 평화의 동전 밭을 통해 에티오피아의 참전 사실을 알리고 각종 지원 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활동에는 이승호(중 28회, 고 25회)·정익균(중 30회, 고 27회) 등 동문이 앞장서 초등학교 신축, 화장실 개선사업, 책걸상 및 각종 기자재 교체, 보건의료 지원, 식수 저장소 및 식수대 확충 등 다양한 지원을 이어왔다.타조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활동으로 동문은 물론 지역 주민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이 결과 2019년 ‘제7회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 때 감사패를 받았다.◆순심연합총동창회의 후배사랑예술 활동으로 순심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순심연합총동창회는 2012년 5월 남녀 중·고 4개 학교가 연합해 창단된 청소년 악단인 ‘순심베네딕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2018년과 2019년에 각각 4천만 원의 경비를 지원해 독일 바이에른주 퀸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엑베르트 김나지움 콘서트홀에서 열린 해외 연주회가 박수갈채를 받는 등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이유는 36명의 단원 중 90%가 음악 비전공자로 구성, 어느 연주회보다 더욱 값지고 기억의 순간을 만들 수 있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정재우 총동창회장순심연합총동창회 정재우 회장(중 24회, 고 21회)은 “선배가 이루어 놓은 길을 잘 개척해 전국 최고의 동창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23대 회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에게 앞으로 동창회 운영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순심인으로서 자긍심이 있다면△올해 84주년을 맞는 모교는 농촌지역이라는 가장 큰 단점과 한계 탈피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05년 일본 다카하시 교육재단과 국제교류에 관한 협정을 맺은 후 매년 우수한 후배들이 일본대학으로 진학하는 기회를 가지는 등 국제적인 학교로 그 위상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어 순심인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있다.지금까지 일본 키비국제대학 인문학부 등에 20명이 진학해 국제교류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특히 순심베네딕도 오케스트라는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독일순회공연까지 다녀올 정도로 국내 어느 학교보다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개교 100주년을 앞둔 순심을 위해 재직기간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은△5만 동문의 염원인 동창회관 건립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데 주력하겠다. 개교 100주년 전에는 동창회관이 설립되도록 재임기간 동안 그 틀을 다듬고 싶다.장학재단을 설립해 우수한 재학생들의 장학사업 및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올해부터는 장학회의 활성화를 위해 안강식(고 21회) 선배를 이사장으로 지명해 월 후원금을 지금의 두 배 이상 늘려서 더 많은 순심의 후배들을 지원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바람직한 동창회는 자리이타(自利利他)에서 시작동문들에게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강조한다. 동창회는 동문들의 단결과 융화를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이를 바탕으로 모교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동문들에게도 도움이 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이 바람직한 동창회라는 것이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뚜벅뚜벅 대구·경북 한 바퀴)<3>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낭만여행, 안동

‘안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1천100여 년 전 태조 왕건 시절에 지어졌다.당시 왕건이 고창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며 후삼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뒤 고창군(현 안동시)을 ‘능히 동국을 편안하게 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직접 지어 안동부로 승격시키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안동의 이름은 전국으로 알려지게 됐고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을 격퇴하는 시기에도 안동사람들이 큰 역할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조선시대에는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등 수많은 대학자를 배출하고 수준 높은 유교문화와 격조 높은 선비문화를 형성하면서 한국문화의 중심이 됐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안동의 문화가 형성됐고,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은 지리적으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다. 위로는 백두대간에 닿아 있고 아래로는 낙동강이 흘러간다. 멀리 태백산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안동에서 반변천과 합류하면서 비로소 큰 강의 흐름을 갖추게 된다.동서로 흐르는 낙동강은 넓고 비옥한 풍산들과 풍천들을 만들어 줬으며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 하회마을 부용대, 그리고 곳곳에 마애절벽의 빼어난 풍광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안동에는 많은 문화유적과 전통마을, 아름다운 산사와 고택 등 문화관광 콘텐츠가 가득하다.코로나 블루로 모든 국민들이 걱정 속에 활기를 잃고 있는 요즘, 안전하게 힐링할 수 있는 안동여행, 코로나19 시대에도 떠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여행테마로 구성해 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과 전통마을들안동은 전국 75개 시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서울시의 2.5배에 달하는 만큼 볼거리, 즐길 거리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그중에서도 단연 첫 손가락은 하회마을이다.한류문화에 관심을 갖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가정 먼저 소개하는 곳, 하회마을은 낙동강의 흐름이 마을을 감싸며 ‘S’자형으로 흐르고 있어 하회(河回)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1999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한 곳이며 20년이 지난 작년 봄 그 아들 앤드루 왕자가 다시 찾은 곳, 풍산 류씨 집안이 600년을 이어오면서 조선시대 건축문화가 오늘까지도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다.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기암절벽의 부용대가 절경을 이룬다.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만송정(萬松亭)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형인 겸암 류운룡 선생이 젊은 시절부터 조성한 비보림으로 600년 시간의 흐름 속에 한결같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그리고 하회별신굿 탈놀이, 선유줄불놀이가 여행객들의 흥미를 북돋아 준다.투어를 마치고 마을을 나올 때는 오른 편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 서원건축의 백미로 불리는 병산서원도 꼭 한 번 들어야 할 곳이다.하회마을에서 경북도청 방면으로 이어지는 곳에 위치한 가일마을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고 작은 표지판을 따라 숨어 있는 마을을 찾아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다.그래서 한적하고 조용한 여행자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할 만한 곳이다. 안동군자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원래 군자마을은 낙동강 기슭 ‘외내마을’에 600년 전 광산김씨 예안파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었으나 1974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고택과 누정 등 중요 문화재를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은 곳이다.군자라는 마을 이름은 당시 안동부사 한강 정구선생이 오천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해 붙여졌다고 한다.고택과 고택 사이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단아하고 고풍스러움이 무엇인지 저절로 느끼게 된다. ◆9가지 명품 트레킹 코스, 선비순례길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의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 처음 가보는 곳을 향한 여행이 모험이 되었다고 할 정도다. 이에 비대면 여행, 안전여행이 뜨고 있다.안동시 북서부권에 위치한 와룡면, 예안면 그리고 도산면을 걸어서 가는 선비순례길은 붐비지 않는 여행에 맞춤이다.안동호의 풍광을 즐기며 퇴계 이황선생께서 몸소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원, 정조대왕의 도산별시가 치러진 시사단, 퇴계종택, 농암종택, 고산정, 수졸당, 계상고택 등 정자와 고택을 비롯해 민족시인 이육사의 고향마을까지, 굽이굽이 스토리가 얽혀 있는 9가지의 명품 트레킹 코스가 이어진다.제1코스는 선성현길이다.순서대로 도산서원길, 청포도길, 퇴계예던길, 왕모산성길, 역동길, 산림문학길, 마의태자길, 서도길까지 각 코스를 합하면 모두 91㎞라고 한다.각자의 길마다 핫 플레이스가 있다. 먼저 선성현길의 하이라이트는 선성수상길이다.물위에 떠있는 다리(부교)를 따라 안동호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1㎞를 천천히 걸으면서 호수 위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제3코스 청포도길은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의 고향마을을 지나는 길이다.시인이 노래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고향마을이 바로 그곳이다.지금은 수몰되고 남은 몇 안 되는 고택만이 남아 있어 다소 고독함과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제4코스 퇴계 예던길은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농암 종택까지 직접 걸으시던 길을 재현한 것으로 올미재에 오르면 안동 최고의 풍광을 볼 수 있다.제8코스는 신라 천년사직의 마지막을 맞게 된 비운을 겪은 마의태자의 슬픔이 담겨 있는 마의태자길이다.마의태자가 금강산에 들어가기 전 이곳에 머물며 매일 신라를 향해 홀로 회한을 삭였다는 용두산과 신라재건을 도모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건지산과 투구봉이길이 10.6㎞에 걸쳐 이어진다. ◆맛있는 안동, 즐거운 먹방여행많은 사람이 경북의 음식은 전라도에 비해 감칠 맛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갖고 있다.아마도 미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갖가지 해산물과 젓갈류가 함께 올려 진 한상차림이 없어서 그런 편견이 생겼으리라고 추측된다.깔끔하게 매운 맛, 먹고 난 후 더 생각나게 하는 슴슴한 맛은 경북음식이 주는 깊은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안동의 이름을 붙인 먹거리가 유난히 많이 알려져 있다.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 안동식혜, 안동문어, 안동갈비, 안동국시, 안동소주 등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고 안동지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는 마와 생강, 사과 등을 이용한 요리도 젊은 층에게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안동의 먹거리들은 각자의 스토리도 갖고 있다.바다 멀리 내륙지방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고등어 한 마리를 온 가족이 함께 맛볼 수 있게 하는 간고등어는 인기만점이다.1990년대를 지나면서 시장통닭이 프랜차이즈 치킨에 밀려나는 변화의 흐름에 스스로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만들어낸 안동찜닭도 빼놓을 수 없다.학문을 숭상하는 양반집안 제례상에 빠질 수 없는 안동문어도 안동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이렇듯 안동을 여행한다면 맛을 찾아가는 먹방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안동시에서는 시내권역의 먹방코스를 안동의 테마투어 코스로 개발해서 홍보하고 있다. 안동역에서 출발해 신세동 벽화마을 할매네 점빵에서 할매커피를 마시고 구시장 찜닭골목, 떡볶이 골목을 지나 문화의 거리에서 전국 3대 빵집으로 꼽히는 맘모스의 크림치즈 빵은 안동에 오면 반드시 들어야 할 곳이다.마지막으로 다시 안동역 앞 갈비골목에서 투어를 마치는 코스로서 걸어서 다니며 눈과 입이 함께 즐거운 먹방여행이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을마다 스며든 독립운동의 흔적, 안동 역사투어안동은 퇴계 이황선생 이후 영남 사림의 본 고장이 됐고 그 후로도 조선시대 사상과 윤리의 본령이 만들어 진 곳이다. 특히 나라가 위험에 닥쳤을 때 그 가르침을 직접 실천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안동이다. 최초의 항일의병으로 기록된 갑오의병은 1894년 6월 서상철의 격문으로 안동향교에서 일어났다. 당시 안동의 유림들에게 독립운동은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였으며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안동에서 독립운동 흔적을 찾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단식으로 항거한 자정순국자 향산 이만도 선생의 향산고택부터 24명의 독립 운동가를 기리는 풍산읍 오미마을의 오미광복운동 기념공원이 있다.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떠나며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 1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임청각도 빼놓을 수 없다.경술국치 후 백하 김대락을 비롯해 150명이 넘는 마을사람 전체가 만주로 망명한 임하면 내앞마을과 김동삼 선생 생가터, 그리고 그 앞에 건립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등 나열하기만으로도 벅찰 정도다. ◆직접 손으로 체험하는 DIY 여행, 안동포와 안동한지 체험안동포는 안동에서 생산된 대마포(大麻布)를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상품에 포함될 정도로 귀한 옷감이었다.신라 선덕여왕때부터 만들어졌으며 특히 신라 화랑들도 즐겨 입었다고 한다.아직도 80여 가구가 안동포를 짜고 있는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안동포전시관에서는 안동포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무엇보다 올이 곱고 통풍이 잘된다는 점에서 최고급 옷감이라고 할 수 있다.마을에서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베짜기를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체험여행지로 한 군데를 더 들린다면 풍산읍 입구에 있는 안동한지체험관을 추천한다.우수한 국내산 천연닥나무를 사용해 만드는 안동한지는 흡수성과 발산성이 뛰어나 창호지와 화선지 등으로 사용되고 최고급 공예품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이처럼 안동을 느끼면서, 배우면서 그리고 체험하면서 여행하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도시 전체가 문화관광 콘텐츠로 가득 차 있는 곳, 마을마다 역사와 낭만을 발견할 수 있는 곳.소개하지 못한 관광콘텐츠가 아직도 많다. 코로나19가 조금 더 잠잠해지면 안전하게 힐링하면서 안동을 여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자궁경부암-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유일한 암

자궁경부암은 자궁의 입구에 해당하는 자궁목 부분에 발생하는 암이다.자궁경부암의 가장 큰 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에 감염되는 것이다.인유두종바이러스는 암과 연관된 고위험 유형과 생식기 사마귀와 연관된 저위험 유형이 있다.대략 100여 종 이상의 유형이 밝혀졌고 그중 약 15종은 고위험 유형으로 자궁경부암을 유발할 수 있다.특히 16형과 18형은 대표적인 발암성 인유두종바이러스로 분류되며, 자궁경부암의 약 70%는 이 두 유형에 의해서 발생한다.인유두종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과의 피부접촉, 성 접촉에 의해서 감염되는 것으로 성생활을 하는 여성의 50~80%는 살면서 적어도 한번이상 인유두종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보고됐다.대부분 바이러스 감염은 일시적이어서 수개월에서 1년, 길게는 2년 사이에 별다른 증상이나 영구적인 후유증 없이 사라지지만 고위험 유형의 지속적인 감염은 자궁경부 상피 내 종양으로 진행되고 그 중 일부가 암으로 진행된다. 자궁경부암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증상이 있다면 성교 후 출혈이 가장 흔하고 다음으로 비정상적인 질 출혈, 질 분비물의 증가, 냄새 나는 질 분비물, 골반통 등이다. 자궁경부암은 35~39세, 60~64세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다. 위험인자는 어린나이에 성관계를 경함하는 것, 여러 명의 성교 상대자, 이른 임신,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성 매개성 감염, 면역저하상태, 경구피임약의 장기간 복용, 흡연 등이 있다.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 경험이 있기 전인 인유두종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이전에 인유두종 예방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만 12세 모든 여아에게 무료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14세 이전에는 2회 접종만으로 면역력이 생긴다.그 이후에는 3회 접종을 한다.자궁경부암 예방 접종 후 사망했다는 등의 부작용 사례가 있어서 접종을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의 부작용은 다른 예방 접종의 경우와 동일한 수준이다.흔한 부작용은 두통, 발열, 오심, 어지러움, 피로, 통증, 부기, 홍반, 가려움증 등이 있고,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사라진다.현존하는 암을 예방하는 백신을 접종하는 경우는 자궁경부암이 유일하다.따라서 미리 예방 접종으로 면역력을 획득하는 것이 암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자궁경부암의 두 번째 예방법은 정기적인 검사다.자궁경부암은 그 진행속도가 느리고 암으로 진행되기 전 단계로 상피 내 종양이 있다.따라서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자궁경부세포진검사를 받고, 가능하다면 인유두종바이러스 검사를 같이 받는다면 자궁경부암으로 진행되기 전에 진단할 수 있다. 도움말=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인제대 서울백병원 산부인과 노지현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림프부종의 치료

림프부종은 림프액 생산과 순환의 불균형에 의해 단백질이 풍부한 세포외액이 세포 사이 간질구획에 정체되면서 조직의 부종이 생기고 이로 인해 염증, 지방조직의 비대, 섬유증 등이 발생하는 진행성 질환이다.주로 팔, 다리에 발생하나 다른 부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원인과 진단림프부종의 원인은 크게 일차성과 이차성으로 나눌 수 있다.일차성 림프부종은 매우 드물고 주로 유전성 질환이다.반면 이차성 림프부종은 필라리아증과 같은 기생충 감염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하지만 미국과 유럽, 우리나라 등에서는 유방암, 부인암 등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 림프절 절제,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시행한 후에 팔 또는 다리가 붓는 림프부종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림프부종의 일반적이면서 중요한 증상은 바로 ‘부종’이며 주로 한쪽에서 발생한다.부종이 발생한 경우 비만, 지방부종, 정맥울혈, 혈관기형, 류마티스 질환, 심부전 등과 같은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부종인지를 먼저 감별한다.이후 림프신티그라피와 같은 검사에서 림프순환의 저해와 진피역류가 확인되면 림프부종으로 진단할 수 있다. 림프순환을 기능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림프관-정맥 연결술을 시행하기 위해서 림프부종이 발생한 부위의 피하조직에 존재하는 표재성 림프관을 찾아야 한다.림프관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인도시아닌 그린(ICG) 림프조영술을 시행한다.ICG 림프조영술에서 연결할 만한 림프관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혈관화 림프절 전이술과 같은 다른 수술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비수술·수술 치료림프부종 치료의 중심은 비수술적 치료법인 완전울혈제거요법이다.이 치료법은 도수림프배출, 압박요법, 운동, 피부관리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프로토콜이 있다. 림프부종의 진행을 막고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 치료방법은 물론 여러 환자들에게 효과적이기는 하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만큼 고령 혹은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제한점이 있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성형외과의 미세수술을 기반으로 한 수술적 치료법이 개발됐다.수술적 치료법은 비수술적 치료로 호전되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압박요법을 시행하기 힘든 환자들에게 림프순환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능적 수술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림프관-정맥 문합술 림프부종이 발생한 부위의 림프관을 현미경을 이용한 미세수술로 주변의 정맥혈관이나 세정맥혈관에 연결해 림프액이 정맥으로 배출되도록 하는 수술이다.전신마취 혹은 국소마취로도 수술이 가능하며 림프관의 단면과 정맥의 단면, 림프관의 측면과 정맥의 단면, 림프관의 단면과 정맥의 측면, 림프관의 측면과 정맥의 측면을 연결할 수 있다. 하나의 정맥에 여러 개의 림프관을 연결할 수도 있다. 수술 후에는 조직 압박 치료를 해야 한다.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압력차에 의해서 정맥에서 림프관 방향으로 혈액의 역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통상 수술 후 6개월에서 1년까지 압박치료를 지속해야 림프관-정맥 연결 부위가 막히지 않는다. -혈관화 림프절 이식술혈관화 림프절 이식술은 림프부종이 발생한 부위에 림프절과 이들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 정맥 및 혈관망이 포함된 조직을 피판(flap) 형태로 이식하는 수술이다.혈관화 림프절 이식이 가능한 부위로는 턱끝밑림프절, 쇄골위림프절, 서혜부림프절, 외측 흉부 림프절, 대망림프절, 공장간막림프절 등이 있다. 림프부종 발생환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림프부종 치료 시 환자의 병력과 림프부종의 부기 정도, 환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림프관-정맥 문합술 및 혈관화 림프절 이식술과 같은 림프순환의 기능적 복원이 가능한 수술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말=영남대병원 성형외과 김일국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78) 영묘사 장륙

영묘사는 전불시대 칠처가람 중의 하나로 신라시대에 영향력이 상당히 컸던 사찰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선덕여왕 때 두두리라는 도깨비들이 하룻밤에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선덕여왕이 영묘사 법회에 참석했다는 기록으로도 절의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다.유명사찰이었던 만큼 전하는 설화도 다양하다. 선덕여왕을 사모했던 지귀가 심화로 절을 태워버린 이야기는 유명하다.영묘사에는 신라시대 승려이자 조각가요 도술가, 예술인으로 전해지는 양지 스님의 작품이 여럿이다. 향가로 전하는 영묘사의 장륙존상과 목탑, 기와, 사천왕상 등을 만들고 현판의 글씨도 양지 스님의 솜씨다.영묘사는 기록으로도 전하는 것처럼 유명 일화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절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조차 몰랐다. 흥륜사지로 전해지면서 사적 제15호로 지정했지만 이곳에서 영묘사 명문 기와가 출토되면서 영묘사지로 전해지고 있다.여기에서 발굴된 얼굴무늬수막새는 2018년 11월27일 대한민국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됐다.◆삼국유사: 영묘사 장륙선덕왕(재위 632~647)이 절을 짓고 소상을 만든 인연은 모두 ‘양지 법사전’에 실려 있다.경덕왕(재위 742~765) 즉위 23년(764)에 장륙존상을 금으로 다시 칠했는데 비용이 조 2만3천700석이 들었다.양지전에서는 불상을 처음 만들 때의 비용이라고 하였다. 지금 두 설을 모두 기록해 둔다. ◆영묘사영묘사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시 635년에 창건된 규모 있는 사찰이다. 영묘사에는 당시 최고의 장인으로 전해지고 있는 양지 스님의 작품이 많다. 양지 스님은 영묘사 전탑의 기와, 사천왕상 등을 만들고, 현판도 직접 썼다고 전한다.특히 영묘사 장륙존상을 만든 내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장륙존상은 흙으로 빚었는데 이때 도성의 백성들이 흙을 나르며 부른 향가가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서럽더라/ 더럽도다 이 몸이여/ 공덕 닦으러 온다”는 풍요다.장륙존상은 경덕왕 때 금으로 칠했다는 기록도 있다.영묘사의 위치에 대한 논란도 있다. 경주 송화산 기슭 서천변에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있다는 설과 부 서쪽 5리에 있다는 기록, 동천동에 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1976년 경주시 사정동 국당리 흥륜사지 발굴에서 ‘대령묘사조와’라는 기와편이 발견된데 이어 지속적으로 명문기와가 출토되면서 현재의 흥륜사지가 영묘사지라고 결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발굴조사에서 명문기와편과 금당지, 목탑지, 기단유구, 동서회랑지 등이 발견되면서 영묘사는 삼국시대에 이미 창건되어 선덕여왕과 통일신라 이후에 대대적인 재건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영묘사는 조선 중종 재위기인 1515년 화재로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영묘사 지귀와 선덕여왕 설화선덕여왕은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용모가 아름다워 백성들로부터 칭송과 찬사를 받았다. 여왕이 행차하면 백성들이 여왕을 보려고 거리를 메웠다. 활리역의 지귀라는 젊은이도 사람들 틈에서 여왕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깊이 사모하게 되었다.지귀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선덕여왕을 부르다 미쳐버렸다. 어느 날 여왕의 행차에 지귀가 백성들 틈에 나타났다. 지귀가 선덕여왕을 부르며 뛰어가자 관리들이 그를 잡았다. 이 소란을 지켜본 선덕여왕이 관리에게 연유를 물었다.지귀가 여왕을 사모하여 미쳐 쫓아온다는 말을 듣고 여왕은 관리에게 지귀가 자신을 따라오게 하라고 전했다. 지귀는 기뻐 춤을 덩실덩실 추며 여왕을 따라갔다. 여왕은 영묘사 법당에서 불공을 드렸다.지귀는 여왕이 불공을 드리는 동안 목탑에 기대어 기다리다 잠이 들어버렸다. 여왕은 불공을 마치고 나오다 잠든 지귀를 보고, 자신의 금팔찌를 벗어 지귀의 가슴 위에 올려두고 돌아갔다.지귀가 잠에서 깨어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그 기쁨은 불씨가 되어 지귀의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라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불은 지귀가 잡고 있던 목탑에 옮겨 붙어 순식간에 탑을 태웠다. 지귀는 온 몸에 불이 활활 일어나는 불귀신이 되었다.여왕은 술사에게 명하여 지귀의 불에서 화재를 예방하는 주문을 짓게 해 백성들에게 돌렸다. 이때부터 화재를 예방하는 주문이 생겨났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천년의 미소선덕여왕이 도깨비들에게 명하여 연못을 메우고 영묘사를 창립했다. 이 때문에 연못에 살며 도를 닦던 이무기가 승천의 기회를 놓쳐 영묘사를 찾는 기도객들에게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그 이무기는 이미 상당한 도력을 지녀 사람으로도 변신하는 재주를 가졌다. 이무기는 영묘사 불목하니 지귀로 변신해 영묘사의 온갖 일에 간섭하며 방해했다.지귀는 노골적으로 부처의 권한을 가로채 영묘사를 찾는 기도객들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었다. 영묘사의 기도효험이 높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전국에서 참배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모시는 법사의 도력이 높아 이무기의 장난을 알아채고 여왕에게 이를 아뢰었다.선덕여왕은 법사의 방침에 따라 양지에게 장륙존상을 조성하도록 명했다. 양지 스님도 법력은 이무기의 재주에 못지않았다.양지는 이무기의 방해를 미리 알아차리고, 전국에서 백성들이 장륙존상을 조성하는데 참여하게 했다. 이무기가 가장 싫어하는 땀 냄새가 진동하게 하려는 것이 양지의 비방이었다. 그러나 불상을 조성하는 백성들이 잠든 틈을 이용해 이무기는 조성해둔 불상을 허물어뜨렸다.이를 지켜본 양지가 하루는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나타나는 이무기의 목을 잡고 물었다. “네 녀석이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국사로 진행하는 불사를 함부로 망치는 일은 용서할 수가 없다”면서 어르고는 “네 사정을 알고 있으나 이미 지난 일이니 합당한 보상을 할 테니 말하라”고 타일렀다.지귀로 변한 이무기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선덕여왕이 나를 망치게 했으니 선덕여왕과 혼인하게 해 달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양지는 “여왕은 나라의 어머니이므로 사사로운 개인과 혼인할 수 없다. 네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면 죽여 후환을 없애겠다”고 으르자 지귀가 납작 엎드리며 용서를 구했다.지귀는 빌면서 “그렇다면 여왕이 가장 아끼는 물건을 제게 주신다면 가슴에 품고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하게 살겠다”고 말했다.양지는 지귀가 기어이 영묘사를 허물어뜨리려 한다는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알았다. 여왕님의 금팔찌를 선물하도록 주선하겠다”고 달래어놓고 장륙존상을 완성했다.양지는 장륙존상을 완성한 다음날 여왕이 장륙존상에서 불공을 드리는 동안 금팔찌를 얻어, 불씨를 주술로 심은 뒤 지귀의 가슴에 얹어 주었다. 지귀는 여왕의 팔찌를 보고 기쁨에 겨워 가슴 깊숙이 간직했다. 그러나 그 금팔찌가 자신을 태워 죽이는 불씨라는 것을 지귀는 꿈에도 몰랐다.선덕여왕이 왕궁으로 돌아간 뒤 지귀는 불귀신이 되어 목탑을 태우고 금당으로 뛰어들었지만 장륙존상이 뿜어내는 불력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불길은 더 이상 번지지 못하고 지귀는 한 줌 재가 되어 영원히 사라졌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