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가지 끝에/달 불러 앉혀 놓고//댓소리 한 자락을/물안개로 풀어놓은//이 저녁/노을로 감싸는/당신의 이 눈길!「대구시조27호」(2023, 그루) ‘노을 앞에서’는 조운의 단시조 ‘고매’를 떠올리게 한다. 매화 늙은 등걸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허울 다 벗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이라는 작품이다. 그만큼 간명하고 간결한 서경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치가 흐르는 서경을 통해서 애틋한 서정을 표출하는 ‘노을 앞에서’는 제목이 한몫을 한다.노을이 전면에 등장한 가운데 소나무 가지 끝에 달 불러 앉혀 놓고 댓소리 한 자락을 물안개로 풀어놓은 저녁이다. 이때 노을로 감싸는 당신의 눈길은 과연 그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에 눈길 다음에 느낌표까지 찍게 만든 것일까? 애틋하다 못해 애절하기까지 하다. 저녁과 눈길 앞에 이, 라는 지시어를 씀으로써 더욱 그 뜻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소나무, 달, 댓소리, 물안개, 노을, 당신, 눈길’이라는 시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다 말 못 할 아픔과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화자는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격한 감정을 안으로 다독이면서 한 편의 단아한 단시조를 직조하여 긴 울림을 안긴다. 또한 당신의 눈길을 노을로 감싸는 미적 정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김석근 시인은 ‘이 일을 어쩔꼬’에서 바보인 줄 알면은 바보라도 면할 텐데 바보가 아니라며 끝끝내 우겨대니 낭패네 이 일을 어쩔꼬 죽도 밥도 아닌 나를, 이라고 마음속의 생각을 진솔하게 토로한다. 어찌해 죽도 밥도 아닐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성찰을 거듭하는 것 자체가 진중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에.‘송로주 연가’에서 솔가지 솔잎 끝에 방울방울 맺힌 이슬 네 가슴 옹달샘에 고이고이 품었다가 꽁꽁 언 무심한 강에 솔 향기로 채웠으면, 이라고 노래한다. 간절한 사랑 시편이다. 참으로 순수한 서정의 결이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솔가지, 솔잎, 이슬, 옹달샘, 꽁꽁 언 강, 솔 향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다 집약하면서 강을 수식하기를 무심한, 이라고 한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강이 무심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경이 얼비치고 있기 때문이다.이렇듯 살아가는 일은 기쁘고 행복하다가도 아프고 서글프고 서럽기도 한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혼자이고 각자도생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각기 살길을 도모하는 중에도 가까운 가족과 이웃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울렁더울렁 살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이정환(시조 시인)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