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는 세금일 뿐이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 물은 열을 받아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안으로 삭이지만 비등점을 넘어서는 순간 무섭게 끓어오른다. 반응이 늦다고 깨춤을 추다간 된통 당한다. 작금, 민심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LH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분노는 민심의 일단을 보여준 돌출사건이고 서울과 부산시장 등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표심은 빙산의 일각이다. 민심 대폭발이란 미션을 떠안을 악역은 세금 폭탄일 가능성이 크고, 그 도화선은 단연 부동산세금일 확률이 높다.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납부자가 최근 4년간 4.2배 늘어났고, 종부세 납부자 중 1주택자의 비율이 43.6%까지 올라갔다. 세액으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2016년 대비 1주택자 종부세액은 무려 9.4배나 늘어났다. 아닌 밤중에 세금 폭탄을 맞았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 급이다.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민심이 폭발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의 결과라 할 밖에 없다.종부세는 참여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응해 다주택 소유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부유세이다. 이젠 이를 조자룡 헌 칼 쓰듯 징벌적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다. 무분별한 표퓰리즘으로 뿌린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고집스럽게 공급 억제 정책으로 일관했다.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꼴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1주택자 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폭증했다. 설상가상 과표인 공시 가격을 비정상적인 속도로 현실화시켰다. 종부세와 재산세가 급등하는 건 불문가지다.부동산 보유세가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재분배차원의 이념적 징벌적 조세 도구라 하더라도 담세력의 범위 안에서 부과하는 세금일 뿐이고 형벌로 기능해선 안 된다. 부동산 보유가 불법도 아닌데, 부동산 보유에 벌과금을 부과할 수 없고,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세액을 징수할 수 없다. 집 한 채 밖에 없는 은퇴자에게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세와 종부세를 과징하는 것은 복지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횡포다.모두 다 잘 사는 것이 이상적 가치이긴 하지만 평등만이 유일한 절대가치는 아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소중한 가치들을 서로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도 다양한 기본권을 함께 보장하고 있는 터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강제할 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그 한계도 아울러 가진다. 세금을 징수·집행할 권한을 가지지만 국민대표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조세법률주의는 절대왕권과 싸워 확립한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슬로건은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을 관통하는 정신을 간명하게 표상한다. 숭고한 목적을 가진 세금이라도 국회에서 입법한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 부동산 공시 가격을 부동산 시가에 연동시키고 이를 과표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절차는 법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부동산 공시 가격을 현실화한다는 명분으로 과표를 무리하게 인상하는 것은 국회 승인 절차 없는 편법 증세이다. 위헌 소지가 있다.빚을 내지 않고 집 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동산 공시 가격을 그대로 과표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 부동산 과표에서 빚을 공제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빚은 이자라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자동 조절된다. 빚이 많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상환능력도 없는데 무작정 빌려주지도 않겠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무한정 빚을 내는 사람도 없다. 자기 책임 하에 독자적으로 판단해 형편에 맞게 균형을 유지한다. 국가가 간여할 영역은 제한적이다.부동산 보유세는 미실현이익에 과세한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이미 납부한 세후소득에 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이중과세라는 태생적 한계도 지닌다. 소득 없는 은퇴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는 윤리적으로 난감하다. 집을 팔고 이사 가라는 의미라면 주거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마저 있다. 조세제도로 근사한 형이상학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폼은 나지만 애당초 잘못된 과욕이다. 세금은 그냥 세금일 뿐이다.

공시가 재조사 후 속도 조절 여부 결정해야

대구시 등 지자체의 급등한 아파트 공시가 불복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공시 가격 현실화 과정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공시가를 적용할 경우 서민 부담이 한꺼번에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 여당 일각에서조차 ‘속도 조절론’이 나오는 상황이다.공시가의 현실화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급격한 인상은 조세 저항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저항은 애초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이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소유자들이 반발하는 등 부작용이 터져 나오고 있다.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2일 “공시 가격이 올라가면 세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등의 부담도 증가한다. 장기적으로 공시 가격을 현실화해야 하지만 급격한 현실화로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져 이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 마련과 중앙정부에 속도 조절을 건의하는 등의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권 시장은 “공시 가격의 급격한 현실화와 관련해 공시 가격 재조사 및 중앙정부 건의 등을 통해 시민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대구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0.01% 하락했으나 올해에는 13.14%로 뛰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등도 공동주택 공시가 속도 조절 주장에 가세했다.처음부터 조세당국과 사회보험 담당 부서의 의견을 듣고 추진했으면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 당국이 책상머리 계획을 일방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이 커진 것이다. 국회도 방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실에서 공시가 상승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이를 등한시했다는 것이다.정부는 공시가 산정 과정의 오류에 대한 비판을 감내하고 이를 수정해야 한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공시가 산정 주체의 지자체 이관 주장은 그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한 후 추진할 일이다. 자칫 서둘렀다가는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위험성도 없지 않다.정부 여당도 고민은 되겠지만 일단 이들 지자체의 재조사 결과를 받아들고 공시가 재산정 등 조정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국민 모두가 코로나19로 심적,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마당이다. 서민 세 부담을 경감시켜주지는 못할망정, 세 폭탄을 안겨서는 안 될 일이다. 국토부가 정책의 신뢰 훼손을 이유로 공시가 재조사를 반대하고 있지만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다. 4·7 재보선에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인했지 않은가.

100년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경숙대구 중구의회 의원도시재생뉴딜사업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며, 노후된 주거지와 쇠퇴한 구도심을 효과적으로 되살리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취지로 시작됐다.이에 국토교통부가 LH 도시재생지원기구를 통해 뉴딜사업의 추진방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지방자치단체는 이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가이드라인에는 주거환경 개선 방안으로 오래된 건축물 리노베이션도 포함된다. 이는 재건축이나 신축에 비해 비용을 훨씬 낮출 수 있고 근대와 현대의 조화로움에 실용성이 더해지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근대 건축물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도 보존되니 일석이조가 된다.경북 문경시 산양면에 위치한 1944년에 지어진 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해 역사적 가치를 살린 사례도 있다.대구의 원도심인 중구에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 근현대까지 역사를 담은 유일무이한 근대건축물들이 많이 있으며 다른 도시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자산이다.중구 동산동, 향촌동을 비롯해 북성로에는 적게는 80년, 많게는 100년 이상의 건축물들이 효용적 가치가 높은 콘텐츠가 됐다. 중구청은 이를 이용해 2014~2020년까지 35곳을 리노베이션 했다.대구 읍성상징거리 조성사업을 기점으로 1930년대 일제 건축물의 외형을 가지고 있던 와이어 철물점 삼덕상회 등 총 17개소가 새롭게 리모델링 됐다. 지난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사업으로 1960년과 1968년에 학원과 판매점으로 사용했던 건축물 4곳 등이 리모델링 됐다.‘솔솔솔, 빨간 구두 속 보물찾기’ 사업에는 1910년 일제강점기 소금창고로 쓰였던 곳을 갤러리 겸 카페로 탈바꿈 시킨 ‘cafe 소금창고’ 등 14개소가 공공기관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 멋지게 거듭났다.이로써 관광객이 늘어났고 거리의 연인들이 커피를 마시고 공연과 미술작품을 보고 즐기는 장소로 유명한 핫플레이스가 됐다.하지만 지난해 9월께 북성로의 리노베이션 사업이 진행됐던 1910년의 카페 소금창고 등이 대구역 힐스테이트 아파트 재개발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중구청에서 세금으로 지원비를 투입한 것은 5년 동안 유지하기로 한 조건이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2019년 공모로 선정된 북성로 뉴딜사업은 한 쪽은 공구상가로, 한 쪽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 구간에는 공들여 리노베이션 한 건축물과 우리가 지켜야할 100년의 가치를 지닌 근대 건축물이 포함돼 있다.중구청은 그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축 아파트 건설에 왜 포함시킨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담긴 건축 자산을 잃고 말았다. 아파트의 가치가 아무리 올라가더라도 100년의 가치를 따라갈 수는 없기에 매우 아깝고 안타깝다.

붉은 신발/김진숙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짐승 같은 시간들 바람에 씻겨 보내도//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닦고 또 닦아내는 사월의 문장들은//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아파라, 동백 꽃송이 누구의 신발이었나「정음시조」(2020, 2호)김진숙 시인은 제주 출생으로 2006년 제주작가, 2008년 시조21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미스킴 라일락’, ‘눈물이 참 싱겁다’, 현대시조선집 ‘숟가락 드는 봄’ 등이 있다.‘붉은 신발’의 배경은 제주 4·3사건이다. 비극의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 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 이라는 첫 수에서 그러한 정황들을 잘 헤아릴 수 있다. 실로 그 일은 감당 못할 짐승 같은 시간들이어서 바람에 씻겨 보내도 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시의 화자는 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 라고 슬픈 울음이 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행불자 묘역은 누군가의 아버지, 아니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하여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를 닦으면서 끓어오르는 아픔을 다독인다. 그런 후 닦고 또 닦아내는 사월의 문장들은 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이라고 그 뜻을 간절히 되새긴다. 그것은 실로 흩어진 역사를 모아 짝을 맞추는 일이다. 4·3사건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에 젖은 신발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을까? 그날의 아픔을 과연 그 누가 씻어줄 수 있으랴? 끝으로 화자는 아파라, 동백 꽃송이 누구의 신발이었나, 하고 결구에서 마음 속 깊이 저미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화자는 동백꽃송이를 바라보면서 붉은 신발 즉 피에 젖은 아버지의 신발을 떠올렸던 것이다. 앞으로는 동백꽃을 바라볼 적마다 붉은 신발이 기억될 것이다. ‘붉은 신발’이 한 편의 진혼곡이기 때문이다그의 다른 작품 ‘나는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다’를 보자. 떠나지 못한 섬은 늘 바다를 맴돌았고, 한소끔 파도를 끓여 문밖에다 내걸면 하얗게 생의 노래는 자주 닻을 내렸다고 노래한다. 이어서 나는 늘 아비에게 가장 아픈 새끼손가락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촛불 켠 소녀처럼 기도란 걸 처음 했던 것을 생각한다. 불안이 커지지 않게 물어 뜯곤 했던 밤이었다. 그리해 손톱과 불안 사이 불안과 결핍 사이 어둠을 갉아대도 이빨은 또 자라나서 남몰래 초승의 한 획 훔치고도 싶었다고 고백한다. 성장통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끝수는 잘근잘근 씹어대는 어제의 결심들이 혀 끝에 닿았다가 툭, 떨어져 달아날 때 그토록 뱉고 싶던 말 이름 석 자 아버지, 라고 맺고 있다. 화자가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던 것은 아버지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사월에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자리는 늘 위태로웠다. 오래 전부터 역사의 전면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았으랴. 더 모진 세월을 감당했을 것이다. 시인은 ‘붉은 신발’과 ‘나는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다’에 아버지를 등장시켜서 개인적인 그리움과 더불어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하얗게 꽃 핀 산딸나무 곁을 지나며 더 이상 이 땅에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비는 아침이다.이정환(시조 시인)

변화하려면 두 배 더 빨리 뛰어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땅 속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겪고 원래 세계로 돌아온 일곱 살 소녀 엘리스는 6개월 후 다시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체스판의 세계인 거울 나라에서 칸과 칸 사이를 누비던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붉은 여왕의 “빨리, 더 빨리”라는 재촉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달렸지만 이상하게도 앨리스는 출발 장소인 나무 아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 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여기선 죽어라고 뛰어야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어.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해.”영국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후속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이다.붉은 여왕이 주는 이 교훈은 미국의 진화학자인 베일른이 생태계의 평형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되고 마는 현상을 설명할 때 동원되는 이야기다. 경영학에선 주로 적자생존 경쟁론을 설명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경쟁이 시장의 모든 기업을 강하게 만든다는 이론이다.변화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결국 도태된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이론을 증명해준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워크맨’을 히트시켰던 소니, 세계 필름시장을 주도하면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던 코닥, 세계 최초로 노트북PC를 상품화한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D램을 최초로 개발한 인텔이 그랬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 최고라 하더라도 경쟁 기업에 뒤처져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하지만 붉은 여왕이 주는 교훈은 ‘이상한 거울 나라’나 생물학의 적자생존이나 경영학의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 속 붉은 여왕의 경고는 종종 현실이 돼 우리들 앞에 나타날 때가 많다. 지난해부터 폭등한 부동산 시장이 그렇다. 집 한 채를 장만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달려왔는데 집값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심기일전, 다시 뛰어보지만 집값은 더 멀리 달아나 버렸다. 달려도 달려도 잡히지 않는다.어차피 끊임없이 변하는 게 세상 이치다. 나 역시 숨이 턱 막힐 만큼 쉬지 않고 달리지만 겨우 출발과 같은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달려도 앞서가지 못한다는 데서 좌절감을 느낀다.범위를 조금 넓히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아나가는 청년들이 이상한 거울 나라 속 앨리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자 사자 뛰는데도 취업은 물론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다. 게다가 기회는 평등한 게 아니라 박탈당했고, 과정은 공정한 게 아니라 졸속이었으며, 결과마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낀 이들의 불만이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로 표출됐다.현실이 이런데도 여야정치권은 아직 두 배 더 빨리 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정신 차린 여당은 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 반성하고 성찰하겠다고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합당을 두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양상이다.‘제3의 물결’, ‘권력 이동’ 등 저서를 남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집단별로 변화의 속도를 비교했다. 기업의 변화속도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비정부조직인 NGO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정부는 25마일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학교가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이었고 법 조직의 변화속도는 고작 1마일이었다.정치조직에 변화와 혁신을 맡겨뒀다간 대한민국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붉은 여왕의 경고를 되새긴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하는데 정치권은 과연 그럴 준비가 돼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동화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사회의 전 조직이 지금이라도 당장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을 때다. 앨빈 토플러에게 묻는다면 분명 정치조직부터라고 할 것이다.

백신 수급 불안, 접종 혼란…방역 차질 없어야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3주간 연장됐다. 코로나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4차 유행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예방접종센터마다 백신 물량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접종 차질이 불가피하다. 백신 접종도 보류와 개시를 오락가락하며 불안을 키우고 있다. 방역 당국은 기존에 확보된 백신 보급 및 접종에 차질이 없도록 유통시스템을 재점검, 방역에 허점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백신 불안을 조기에 잠재워야 한다,대구지역은 지난 8일부터 75세 이상 고령자 접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으나 예방접종센터마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접종 계획이 헝클어졌다. 이달 중에는 접종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접종센터마다 전화문의가 빗발치고 있으나 접종 일정조차 알려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방역 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혈전’ 발생 부작용을 우려, 접종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12일 특수학교 종사자와 보건교사, 감염 취약시설 종사자 등과 30세 이상 백신을 접종한다고 밝혔다. 백신 접종에 따른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AZ 접종이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접종 기피 사례가 늘어 백신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2일 587명 늘었다.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다. 휴일 영향으로 전날 614명에 비해 27명 줄었지만 1주간 발생자 수는 일평균 600명 선을 넘어섰다. 대구 16명, 경북 15명이 늘어 다시 확산 조짐이다.정부는 12일부터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를 내달 2일까지 3주 연장했다. 수도권과 부산 등 2단계 지역의 유흥시설에 대해서는 영업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날 0시부터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시행, 거리두기 단계와 관계없이 모든 실내에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해야 한다. 위반 시 개인은 10만 원, 시설 운영자는 15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특별방역점검 회의를 열어 AZ 백신의 안전성 논란 일단락 및 집단 면역 목표 조기 달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소식은 없다.백신 확보가 문제다. 정부의 백신 확보 실패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어렵겠지만 백방으로 노력, 백신 확보 방안을 찾길 바란다. 백신 접종에 대한 안전성 홍보도 강화해 불안 심리를 안정시켜 주어야 한다.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국민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등 방역수칙을 지켜 주길 바란다.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데 너무 답답하다.

모서리는 서럽다/ 하외숙

그녀의 취미는 조약돌 줍기/ 뭇 섬에 다녀올 적마다 슬쩍슬쩍 갖다 옮긴 게/ 유리진열장 속에 섬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늘 모서리에 붙어 앉는 그녀/ 책 귀퉁이도 접지 않는 그녀/ 날선 칼날로 싹둑싹둑 무를 써는 그녀/ 그녀가 바닷가 몽돌을 만나고부터 한없이 둥글어졌다// 예리한 눈빛, 오똑한 콧날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며/ 스케이트 날 세우듯 예각처럼 살았다/ 굽히고 꺾이면 지는 것이라 배웠다// 모서리는 자존심이라 되뇌던 그녀가/ 차르르 차르르/ 몽돌이 바닷물에 씻기는 소리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그녀의 머릿속은 자주 그믐이었다」 (시와반시, 2021)수석은 강가나 바닷가, 산 등 대자연에서 모양이나 문양, 색깔이 기묘한 돌을 수집해 집에 갖다놓고 감상하는 취미생활이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동양 3국에서 주로 행해진다. 사람이 들고 옮길 수 있는 정도의 돌을 대상으로 하고 정원을 장식하는 큰 돌이나 바윗돌은 수석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어떤 형상을 닮거나 상징하는 돌은 신묘한 흥취를 유발한다. 수석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인생의 깊은 진미를 발견하려면 성숙한 심미안과 창의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돌은 동호인에게 이해하기 힘든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응마주색난석(鷹馬酒色蘭石)이라는 말이 있다. 10대엔 매, 20대엔 말, 30대엔 술, 40대엔 여색, 50대엔 난초, 60대엔 수석에 관심을 둔다는 의미다. 물론 억지로 짜 맞춘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일만한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역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에서 정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선호가 바뀐다. 성에 눈뜨기 전인 청소년기에는 매와 말처럼 날쌔고 활발한 동물에 사로잡히고 성욕이 넘치는 청·장년기 시절엔 이성에 탐닉하며 움직임이 둔해지는 노년기엔 난초나 돌에 심취하는 식이다.조약돌만 수집하는 취미도 큰 카테고리로 보면 수석으로 취급할 수 있지만 결이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그냥 예쁘고 좋아서 수집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거래대상이 되거나 취미의 유형으로 공식적으로 분류되는 정도는 아니다. 조약돌을 보고 즐기다 보면 조약돌의 함의를 우연히 깨닫게 된다. 거칠고 모난 돌도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비바람과 물결에 단련된다. 거친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모난 모서리도 깎여서 둥글게 변모한다.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표면이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나이가 차면 조약돌을 닮고 싶어진다. 젊고 패기만만하던 시절, 사소한 일에도 날을 잔뜩 세워 칼을 휘둘렀다. 늘 모서리에 붙어 앉았고 책 귀퉁이도 접지 않았다. 무를 써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던 사람이 자갈과 몽돌을 통해 인생을 깨닫는다. 모난 부분이 깎이고 갈리어 둥글둥글하고 반들반들하게 된다. 콧날을 세우고 매서운 눈빛으로 세상사를 재단하며 유난을 떨었던 기억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자존심이 과한 탓에 남과 부딪힌 적이 다반사였다. 끝없이 밀려오는 세월의 물결에 모서리는 둥글게 깎이고 자존심마저 맥없이 무너진다.그렇다고 모서리가 없는 몽돌과 표면이 매끈한 자갈이 절대 선은 아니다. 모두 몽돌과 자갈일 필요는 없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간직한 모난 돌도 필요하다. 모난 돌이 모난 돌을 단련한다. 원만한 돌은 숙성된 결과일 뿐이다. 결국 자갈이 될지언정 처음부터 모두 자갈일 필요는 없다.오철환(문인)

2021년 도서관주간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4월12일(월)부터 18일(일)까지 1주일간은 ‘도서관주간’이다. 올해로 57회를 맞았다. 한국도서관협회는 도서관의 가치와 필요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을 왕성하게 이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1964년 도서관주간을 정하고, 매년 같은 기간에 전국의 각종 도서관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동안 도서관주간은 1967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때문에 운영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도서관주간은 명실공히 도서관과 이용자의 축제기간이다. 이 때문에 설립 주체에 따라 국·공립·사립도서관으로, 설립 목적에 따라 공공·대학·학교·전문·특수도서관으로 구분되는 전국의 각종 도서관들은 매년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 도서관주간을 축하하고 있다. 올해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도서관주간 행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지치고 힘든 국민을 위로하고 있다.제57회 도서관주간을 앞두고 공모한 공식주제와 공식표어에도 코로나 사태의 영향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공식주제는 ‘당신을 위로하는 작은 쉼표 하나, 도서관’(인천광역시 수봉도서관)이 선정됐다. 또 공식표어로는 ‘도서관, 책을 다독! 내 삶을 다독다독!’(수성구립 용학도서관)과 ‘집콕 중인 당신, 도서관이 희망이 되어 드릴게요’(박현희)가 선정됐다. 용학도서관이 제안한 표어는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어(多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내 삶을 다독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다른 해의 표어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난해 공식주제로 선정된 ‘도서관 책 한 권, 세상을 테이크아웃하다’(북구구수산도서관)는 대구가 코로나 사태의 확산지가 된 상황에서 도서관의 문을 닫고 폐가제 대출방식인 ‘북 워크 스루’를 운영하던 모습을 담아냈다. 또 2019년 선정된 ‘도서관, 어제를 담고 오늘을 보고 내일을 짓다’(달성군립도서관)에서는 평상시의 도서관 모습이 평화롭게 그려진다. 3년째 공식주제와 공식표어 선정기관으로 대구지역 구립 또는 군립도서관이 이어지는 점은 우리 지역 도서관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해석된다.전국적으로도 올해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민간단체인 한국도서관협회 주도로 도서관주간이 운영됐지만, 올해부터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이 동참해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제57회 도서관주간 기념행사를 추진하면서 대국민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입법 움직임도 긍정적이다. 도서관주간 첫날인 4월12일을 국가기념일인 ‘도서관의 날’로 정하고, 도서관주간을 정부가 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도서관법 전부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됐다. 도서관주간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이다.이밖에도 도서관법 전부개정안에는 도서관의 구분을 체계화하고, 공공도서관 설립을 위한 사전절차를 도입하고, 국립 및 공립 공공도서관은 사서 및 자료 기준에 맞춰 등록할 것을 의무화하고, 공립 공공도서관에 한해 관장을 사서직으로 임명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한편 도서관주간의 유래를 살펴보면 미국의 도서관운동에서 자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도서관협회가 1964년 발표한 도서관주간 취지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며 미국에서는 금년도 행사를 합해 7회째’라면서 ‘미국에서는 독서의 상징을 열쇠(Reading is the Key)로 표시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열쇠이며, 둘째는 보다 나은 세계로 향하는 열쇠이며, 셋째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정한 판단을 내리게 돕는 열쇠라는 설명이다.이와 함께 취지문은 지금 적용해도 손색이 없는 도서관의 가치를 적었다. ‘도서관주간은 책과 도서관의 봉사가 개인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중요한 영향력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도서관이 그 국가의 문화와 교육발전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널리 인식시키고, 국민의 독서를 도와주는 커다란 행사’라면서 ‘국민의 생활에 있어서 도서관이란 무엇인가를 일반시민에게 이해를 촉진시키는 사회적인 운동이다’라고 강조했다.올해 도서관주간을 맞아 다짐하는 한편, 소망하는 것이 있다. 코로나19의 4차 확산이 우려되는 시점에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개인방역을 비롯해 도서관 소독과 환기 등 방역수칙을 더욱 철저하게 지킬 것을 다짐한다. 또한 ‘도서관의 날’이 하루빨리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도서관이 시민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한편, 시민 모두가 지적 자유를 향유하도록 지원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대구 시민 봉인가요

'정말 이래도 되나요. 대구 시민은 봉인가요.’얼마 전 대구 최대 온라인 부동산커뮤니티에 오른 게시글이 화제다. 분양 중인 수성구 아파트의 견본주택을 보고 온 후 착잡함을 드러낸 글이다.살던 집을 처분하고 월세살이 각오까지 하며 이른바 '영끌'해서 준비했던 아파트 청약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견본주택을 보고는 실망감을 넘어 대구를 무시하는 기분 마저 들었다고 했다.명색이 대기업 건설사인데 마감재나 도색은 몇 년 전 그대로이고, 안전을 위한 장치나 발코니 확장하면 제공받던 당연한 것들이 빠져 있었다는 거다. 대구 시민을 호구로 보는 건설사의 갑질이라는 거친 표현도 썼다.해당 게시글에는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분양하는 게 아니라 호구 모집하는 것 같다’ ‘아몰라 비싸게 받을게 그래도 살 사람 줄섰어’ ‘대구는 건설사에게 호구 제대로 당하는 중’ ‘청약하려고 나부터 안달나 있는데 건설사가 갑질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등 대체로 공감을 드러내는 글이 대부분이다.글 하나를 일례로 들었지만 최근 대구 분양시장은 내놓으면 완판 되는 호조세가 몇년 간 지속됐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 프리미엄이 형성되면서 분양받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까지 보인다. 그래서 분양시장 주도권을 건설사가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조건이 나빠지는 건 사실이다.발코니 확장비나 유상 옵션이 그렇다.얼마 전 대구 남구에서 분양된 33평(전용면적 84㎡) 발코니 확장비가 3천950만 원에 책정됐다. 남구에서 확장비로 4천만 원에 육박한 단지는 처음이다. 분양가와 별개로 발코니 확장비는 건설사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권한이 있는 남구청은 ‘강제할 권한이 없다’며 건설사 요구대로 승인을 내줬다. 청약을 넣은 대구 시민들이 그만큼 비용을 더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작년 상반기만 해도 대구 신규 공급 아파트 평균 확장비는 2천만 원 초반대. 이마저도 1년 전보다는 50% 가까이 오른 금액이다. 사실상 강제 사항인 발코니 비용을 급격히 올려도 지자체의 브레이크가 없다보니 계단식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선택사항으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수성구 분양 단지에는 17개 항목을 패키지로 묶어 3천만 원 중반대와 7천만 원 중반대에 판매 중이다. 또 다른 단지 역시 드레스룸의 내부 수납장 마저 옵션으로 돌렸다. 33평 옵션 비용만 2억 원대.유상옵션을 뺀 주택 내부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이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나올 정도다.브랜드에 대한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특히 대형 건설사가 내놓은 상품이나 조건은 ‘아몰라, 비싸도 대충 만들어도 살 사람 줄섰어’ 그 모습이다.그래서 대구 시민 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대형 역외 건설사들이 청약자만 봉으로 보는 걸까.시공사가 결정된 대구 재건축·재개발 사업지 90%가 역외 건설사다. 대구 주택건설시장을 역외 건설사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의 지역 사회 기여도는 찾기 어렵다.본공사 이전 단계인 모델하우스 건립부터 분양·홍보사업도 역외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지역 관련 업체는 ‘시장은 확대됐지만 수주는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본공사 전 단계에서 지역 업체 참여를 의무화하거나 권장할 장치가 없는 탓이다. 이들 건설사의 지역 사회 공헌 소식도 듣기 힘들다. 수익만 챙겨 빠져나가는 형국이다.지자체가 목소리 내야 할 때가 아닌가.지역의 중소 규모 건설·디자인 업체 대표가 한 말이 생각난다.

TK의 고민

4·7 재·보궐선거가 막 내렸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 4년의 성적표다. 25번이나 쏟아낸 부동산 정책이 파국으로 몰았다. 위선의 ‘내로남불’과 불공정의 ‘LH 사태’가 결정타다. 국민의 심판은 냉정했다. 1년 전 총선에서 몰아준 지지를 1년 만에 되돌려놨다.대구·경북(TK)은 이번 선거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TK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졌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선거가 던진 과제는 정책 대결 실종과 차악 선택이다. 국민 모두에게 숙제다. 정책 대결은 오간 데 없고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 넘쳐났다. 정책 대결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생태탕’과 ‘내로남불’만 있었다.-덜 나쁜 후보 선택, 선거 한계 극복 과제다음 대통령 선거도 보나 마나다. 정책 대결은 정치학 교과서의 퇴색된 이론만으로 남을 뿐이다. 거악 보다는 차악을 선택했다. 기형적인 판도에 인물 대결도 의미가 퇴색했다. 여당 후보 못잖게 야당 후보도 적잖은 문제를 드러냈다. 하지만 민심은 차악으로 향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를 두 개의 나쁜 옵션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깨끗한 후보, 존경받는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는 일은 기대난이다.그동안 진보와 보수의 무능과 타락의 끝 모를 진영 싸움에 국민들은 넌더리를 냈다. 그래서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보다는 덜 나쁜 사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정권 심판과 국정 안정이라는 피 튀기는 대결만 있을 뿐이었다. 공약은 외면받고 네거티브만 남았다. 역대급 진흙탕 싸움이 됐다.두 번째는 지역 출신 유력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박근혜는 TK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지만 모두 실패한 대통령이다. 지금 홍준표와 유승민이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 있지만 여론 지지의 한계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반면 TK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더 크게 보인다. 윤석열 지지가 고향인 충청도와 서울보다 높다. 정권 교체에 대한 TK의 갈구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과연 윤석열이 TK의 빈 가슴을 메워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권의 이재명이 있지만 지역민에겐 물음표만 잔뜩 던졌다.세 번째는 보수 터전 TK 정치권이 ‘토사구팽’ 위기에 몰렸다. 재·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 터져 나온 ‘영남배제론’의 중심에 서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낡은 이념과 특정 지역에 묶인 정당이 아니라, 시대 변화를 읽고 국민 모두의 고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거듭해 달라”고 했다. 차기 대통령선거 승리를 위한 당 쇄신과 개혁에 걸림돌로 보고 당직 등 일선 후퇴를 종용 받고 있다. TK 의원들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지역 이해 대변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네 번째는 정치의 본질 문제다. TK 정치인들의 자질이 의심받고 있어서다. 국민의힘의 재보선 승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역 출신 곽상도·송언석 의원은 지역구가 아닌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당 간부 폭행으로 물의를 빚었다. 지역민들의 자긍심에 먹칠을 했다. 국회의원들의 일탈행위는 정치인을 도매금으로 욕 먹일 뿐만 아니라 정치혐오의 주요인이다. 보수 재건에 재를 뿌렸다.-꼰대질 배격하고 개혁과 쇄신 고삐 좨야국민의힘은 작은 승리에 안주, 근본을 잊어버리는 패착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21대 총선의 아픈 기억을 잊어선 안 된다. 당 개혁과 쇄신 고삐를 다시 죄고 차기 대선에 주력해야 한다. 진보 꼰대들의 행태에 민심이 돌아섰다는 점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민심에 순응하고 꼰대질을 경계해야 한다. 겸손을 미덕 삼고 오만과 위선을 멀리해야 한다.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유권자에 머리 숙여야 한다. TK의 고민이자 숙제다. 슬기로운 대처방안이 필요하다. 지역 인재를 키우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진심 어린 정치인에게는 국민도 화답한다.“정부는 비틀거리고 야당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환멸만 커지고 있다”는 외국 언론의 지적이 귀에 따갑다.

대구시-예총, 영화인협회 보조금 제재 엇박자

대구예총의 납득할 수 없는 산하단체 지원이 논란을 빚고 있다. 횡령을 이유로 대구시의 보조금 지급이 중단된 산하 대구영화인협회에 매년 일정 금액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구시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자세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예총 소속 단체는 민간단체다. 아무리 예술문화단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단체가 시민의 혈세로 마련된 시비를 지원받으면 안된다. 이는 규정 이전에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예총이 지원한 금액도 사실상 시민의 돈이기 때문이다.대구영화인협회는 지난 2015년 협회장의 사업비 횡령 문제로 현재까지 7년째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 그러나 예총은 대구예술제 참여를 이유로 매년 3천만 원 가량을 대구영화인협회에 지원하고 있다. 분야별 10개 협회가 진행하는 축제에 1개 협회만 빼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보조금 지원의 이유다.대구예총은 2018년까지 예술제 전시 명목으로 영화인협회에 매년 약 5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공연으로 분야를 바꿔 출연료, 제작비 등의 명목으로 3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시의 제재가 장기화되자 지원금액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대구시의 제재성 보조금 지원 중단과 예총의 예술제 참여 비용 지원이 엇박자를 보이는 상황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역 예술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에 대한 각종 지원은 당연히 장려되고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운영에 문제가 있는 단체라면 정상화가 우선이다.대구시의 지원금 유보는 정상화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 조치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예총의 지원은 그러한 제재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산하단체 지원에 원칙이 없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대구시도 직접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한 다리 건너 간접 지원을 묵인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소란스러울 것 같으니 방관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현재 대구시는 영화인협회를 제외한 예총 소속 9개 협회에 매년 사업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금은 협회별로 4천9백만 원~4억 원에 이른다.영화인협회는 횡령문제를 일으킨 협회장이 최근 다시 선임돼 6회(18년)째 연임 중이다.영화인협회는 예총 산하 10개 단체중 유일하게 정관상 연임 횟수 관련 규정이 없다.영화인협회에 대한 시비 지원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구시와 예총의 적극적인 노력이 아쉽다. 다시 한번 경위를 파악하고 조속한 시일 내 영화인협회가 공적 지원금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중지왕(花中之王)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먼 산봉우리가 깨끗하게 눈앞에 다가선다. 맑고 고운 봄날이다. 햇살 가득한 양지쪽 정원에는 작약이 큼직하고 화려한 꽃을 자랑하며 벌써 피어나 오월처럼 일렁인다. 두려움에 떨면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이를 위로 하려는 듯, 선별 진료소 뒤편에 서서 풍성한 ‘부귀화’가 여기에서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고 속삭인다. 지난봄, 우울하기 그지없던 그때에도 하염없이 피어나 있지 않았던가. 자연은 변함없이 다시 돌아와 그때 그 빛과 향기로 자리를 지키며 본분을 다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향이라는 ‘국색천향’ 모란의 향을 즐겨볼 일이다.모란은 예로부터 화왕(花王)이라고 해 꽃 중의 꽃으로 꼽았다. 중국 유일의 여 황제였던 당나라 측천무후는 어느 겨울날, 꽃나무들에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령을 내린다. 다른 꽃들은 모두 이 명령을 따랐으나 모란만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래서 불을 때서 강제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끝나자 화가 난 황제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낙양으로 추방해버렸다. 이후 모란은 ‘낙양화’로도 불렸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모란은 자그마한 꽃나무다. 아름답고 화려한 모란은 꽃의 대표 자리를 차지했고 목단, 부귀화라고도 불린다. 오래전부터 화단이나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었다.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워 과거에는 ‘꽃 중의 왕’이란 뜻의 ‘화중지왕’ 혹은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향’이란 뜻의 ‘국색천향(國色天香)’ 등으로 불렸다. 자그마한 나무가 검은 가지에 자색의 꽃을 올해도 잔뜩 단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하다.지난봄, 어느 새벽 모습이 떠오른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서 모란 나무를 이리저리 살피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자초지종을 여쭤보니, 코로나19로 병원이 폐쇄되면 모란이 말라서 죽어버릴 것 같아 얼른 옮겨 다른 데 심어 잘 키워보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모란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러실까. 해마다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세월 보내기를 낙으로 삼았는데, 코로나가 덮쳐 그 꽃을 더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부리나케 달려오신 모양이었다. 선별진료소 앞과 뒤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도, 코로나란 녀석도 두렵지 않고 오로지 꽃나무만 눈에 들어오신 게다. 어르신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다짐했었다. 코로나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고 다시 꽃은 피어날 것이니 봄이 되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뵐 수 있기를….삶에 지칠 때, 자신만의 이상향을 꿈꾸게 되는 것 같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평생 사랑했던 땅 ‘월든’처럼 마음속 유토피아를 상상만 해도 아늑해진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 시절에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홀로 사색에 잠기고 책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용한 삶을 택했던 소로는 자신이 다른 하버드졸업생들처럼 되지 못하고 가정교사나 연필 제조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다른 이들이 불쌍히 생각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숲속을 산책하면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느끼고 배우고 일구는 삶을 직업으로 삼았다. 익숙한 일상을 버리고 월든 호수로 떠나 오로지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땅을 직접 갈아 감자와 완두콩, 순무를 심었다. 종일 일하기보다 새벽 5시에서 정오까지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산책과 글쓰기, 명상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했다. 소박한 농사꾼이자 조용한 수행자의 삶을 그는 사랑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적게 걱정하고 크게 만족했다. 월든 호수의 갈대 사이에서 속삭이는 바람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호수에서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할 일은 넘친다고 생각했고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지극한 내면의 희열을 느꼈다. 고향에 머무는 재능이 있는 사람, 멀리 떠나지 않아도 바로 그곳이 천국임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평생 고향에 머물러도 세상 모든 곳을 여행하는 듯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혜안, 단조롭게 보이는 자연 속에서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 그것이 소로의 지혜였다.완전히 자신의 의도대로 살아보기 위해 평생 애썼던 소로,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때 깨닫지 않았으랴. 내가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농사와 명상을 결합한 삶, 낚시와 글쓰기를 병행하는 삶, 자연 일부로 완전히 동화되는 소박한 삶, 봄이 무르익는 이 즈음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으리라.화중지왕 옆에서 이상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인생/ 최옥영

화려한 것을 자랑하며/ 짝을 구하는 공작같이/ 존경과 논리의 이념으로 치장해서 유혹한다// 짝짓기를 마친 공작은/ 순진한 눈망울의 낙타가 되어/ 거친 광야의 땅으로 간다/ 사막에서는 신과 빛조차 악마와 같다// 깃털이 자라 노쇠한 바다가 되지만/ 고난의 여정에서 깨달은 지혜로/ 허물을 벗어던지고 뱀이 된다/ 뱀의 지혜는 깊이와 넓이도 한이 없지만/ 추악함에도 끝이 없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지혜는 애써 외면해야 하는 가시이다/ 지혜롭기 어려운 까닭은/ 순간에 반짝이는 빛이기 때문이다// 벗겨진 허물에 따라/ 개나 원숭이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뭐라 해도/ 자연은 사람을 개처럼 끌고 간다/ 야생의 늑대는 자연의 고삐를 자르고/ 자유롭게 산책하길 원하지만/ 달을 보고 짖어대는 소리는 쓸쓸하여라// 푸쉬킨의 시어에 매료된 때가 좋았을까/ 아름다운 문장들은 상투를 틀고/ 진부해져 버렸다/ 삶은 단 한 번도 나를 속인 적 없고/ 항상 내가 스스로 속여 왔다// 그렇구나/ 내 고꾸라진 지팡이에/ 늦더라도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구나/ 언제나 욕심 부리는 것이/ 인생이로구나「추억의 풀무질」 (그루, 2020)인생을 제대로 정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변한다. 인생을 폭넓게 조망하고 생애를 두루 살펴보는 지혜로운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충분한 경험과 탁월한 통찰력이 그 전제다. 자칫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기 십상이다. 경험은 오랜 세월 성실히 살아가는 가운데 차곡차곡 쌓여지고 통찰력은 타고난 능력과 끊임없는 절차탁마 끝에 비로소 얻어진다. 연륜이 실린 현명한 인생론은 그 결실이다.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인구에 회자될 뿐 아니라 생명 또한 길다.다른 성인도 마찬가지겠지만 공자의 삶은 그 자체 인생론이다. 학문에 뜻을 둔 15세는 지학(志學), 인생 목표를 세운 30세는 이립(而立),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40세는 불혹(不惑), 하늘의 뜻을 안 50세는 지천명(知天命), 남의 말을 잘 듣고 받아들인 60세는 이순(耳順),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은 70세는 종심(從心). 나이에 따른 공자의 변화 표징은 인생의 이정표로 보통명사화 됐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긴 어렵지만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인생에 대한 감회 정도는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있을 터다.짝을 구하기 전 화려한 날개를 펼치는 공작, 짝짓기를 마치고 짐을 가득 실은 채 거친 광야를 가는 순진한 낙타, 허물을 벗어던진 뱀 등은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다양한 동물의 행태에서 찾아낸 은유는 절묘하다. 허물을 벗은 후의 모습이 각기 달라진다는 생각은 현실적이고 교훈적이다.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개나 원숭이, 늑대도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아프게 가슴에 와 닿는다. 허물을 벗은 후에 천명을 깨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아도 도리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는 삶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되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오리니. 정작 삶은 속인 적 없는데 스스로를 속인 건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목에 꽃 피우고 싶은 마음은 과욕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오철환 (문인)

자질 논란 지역 국회의원, TK 욕 보일라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4·7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투표를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또 다른 의원은 선거개표 상황실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며 당직자에게 행패를 부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서울시장 보궐선거일에 벌어진 일이다. 민심이 집권 여당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한 날이다. 민심과 동떨어진 처신과 행동을 한 이들이 과연 지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받는 상황이다. TK(대구·경북)의 자존심을 긁어 놓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사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이 숙지지 않고 있다.대구 중·남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서울시장 투표를 했다”는 글을 올려 지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송파구 장미아파트 경로당에 마련된 제3투표소에서 서울시장선거 투표를 마쳤다”며 서울시장 선거가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이번 선거에서 진절머리나는 문재인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 투표로 국민의 힘을 보여달라“고 썼다. 투표를 독려하려다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곽 의원은 지역구에 주소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 초점이다. 법적 문제는 없지만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으로서 자질과 인식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대구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현재 국민의힘 대구시당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설을 밝히는 등 차기 대구시장 출마를 꿈꾸고 있다.김천 출신의 송언석 의원은 7일 국민의힘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사무처 직원을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송 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파문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국민의힘 사무처 당직자 일동은 성명서를 내고 “오늘(7일)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은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본인의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사무처 국장 및 팀장급 당직자에게 발길질 등의 육체적 폭행과 욕설 등의 폭력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당직자들은 이 폭력을 묵과할 수 없다며 송 의원의 공개 사과와 탈당을 요구했다. 당의 위신을 해치고 민심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지적이다.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벌어지자 더 겸손하겠다고 고개숙였던 국민의힘이다. 투개표 상황 속에 벌어진 일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역 국회의원의 자질을 의심받는다. 지역구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단순히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당사자들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 이번 보선에서 드러난 준엄한 민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준우 시시비비/ 대구백화점과 ‘빅3’ 백화점

박준우논설위원 겸 특집부장77년 역사의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1일부터 영업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백화점 측은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업종전환하는 등 회생 방안을 찾을 거라 하지만 그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1944년 설립된 옛 대구상회 시절부터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나눠온 대구백화점의 퇴장 소식은 그래서 시민들에게 대구경제의 현주소와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대구의 백화점이나 아파트 건설 시장이 외지 대기업에 넘어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변화 대응력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지역기업의 한계에다, 온라인 중심으로 개편되는 시장환경, 그리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탈지역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백화점 시장은 2003년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2011년 현대백화점, 2016년 신세계백화점까지 소위 국내 백화점 ‘빅3’가 모두 대구에 터를 잡으면서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앞서 동아백화점이 2010년 이랜드그룹에 매각되기도 했다.시민들과 지역경제계는 그동안 빅3의 시장 독점에 대해 우려가 컸다. 당장 지역민이 쓴 돈이 지역에 재투자되지 못하고 외지로 유출되는 것의 부작용을 걱정했다. 향토 기업의 매출이 지역경제와의 상호부조라는 기대효과가 있는데 반해 외지 업체에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이 때문에 외부에서라도 개입해 이들에게 지역 기여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를 반영해 실제로 대구시는 빅3 대기업과 지역의 전통시장, 소상공인 등이 함께하는 상생발전협의회를 제도화하고, 나아가 이들의 현지 법인화도 추진했다.그 결과 가시적 결과물도 있었다. 매년 시가 이들 대기업을 대상으로 지역기여도 평가를 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현대백화점이 용역과 인쇄 발주 100%, 사회 환원 기부액 26억8천만 원, 입점 175개, 공익활동 108회 등으로 베스트기업에 선정됐다. 이 정도라도 물론 적지 않은 지역 기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빅3가 지역에서 올리는 연 매출과 비교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2020년 국내 67개 백화점 점포들의 잠정 매출치 분석자료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이 연 매출 7천800여억 원으로 10위권에 올랐으며, 이보다 조금 뒤처져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20위권,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상인점이 각각 40위권에 올랐다. 또 이를 토대로 업계에서는 빅3의 2020년 대구 연 매출 규모가 최소 1조5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은 당연한 일이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도태되는 것도 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지역민들은 그동안 지역에 진출하는 대기업들에 끊임없이 지역과의 상생·협력을 요구해왔고, 지방정부 역시 중앙정부에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 추진을 주문했다.결국 한 출발선에 서서 같이 출발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서로 간에 있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서울·수도권 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이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결과로 지금과 같이 지방이 어려워졌으니 이를 일정 부분 중앙정부와 수혜자들이 책임지라는 요구이기도 하다.지역 아파트 건설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구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가운데 현재 시공사가 결정된 데가 69곳인데, 이 가운데 지역 건설업체가 수주한 사업지는 8곳, 11.5% 남짓이라고 한다. 또 얼마 전 끝난 2021학년도 대학 신입생 모집에서는 대구·경북권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큰 곤욕을 치렀다. 일부 대학의 경우 정원에 수백 명이 미달하는 낭패를 겪었다.이런 현상을 두고 여러 원인 분석이 있지만, 그중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에 가려는 학생, 학부모들의 성향이 영향을 끼쳤다는 대학가의 분석이나, 미래 재산가치 증식 측면에서 시장은 어쨌든 지명도 높은 유명 대형건설사를 더 선호한다는 업계의 지적은 아프게 와닿는다.지역기업이야 당연하고, 지방정부, 지역정치권도 이런 지적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당장은 경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이지만 이게 정치, 사회 분야로까지 언제 번져갈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