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과일은 포도다. 8천 년 전 고대 유적지에서 포도씨가 발견된다. 대홍수가 끝나고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했을 때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포도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포도가 언제 전래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와당의 포도 문양을 볼 때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개량종 포도 시배지는 경기도 안성이다. 안성포도는 1901년 프랑스 신부가 묘목 20주를 가져와 성당 마당에 심은 것을 효시로 보고 있다. 본격적인 재배는 1906년 뚝섬에 독도원예 모범장을 설립하고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153개 품종을 도입해 시험재배를 거쳤다. 그 중에서 캠벨얼리 품종이 우리나라에 가장 알맞은 품종으로 추천됐다. 이후 100년 이상 캠벨얼리는 포도의 왕좌를 지켰다. 누구나 포도를 이야기할 때 보랏빛의 캠벨얼리를 연상한다. 그러나 최근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 초반에 거봉 재배가 늘어나면서 2016년에는 캠벨얼리가 61.4%, 거봉이 23%를 차지했다. 두 품종이 우리의 포도시장을 양분했다. 그러나 씨 없는 청포도로 통하는 샤인머스캣이 도입되면서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해 캠벨얼리는 36.8%로 줄어들고 샤인머스캣이 31.4%로 늘어나면서 왕좌를 넘보고 있다. 조만간 샤인머스캣이 왕좌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샤인머스캣의 급성장 요인은 당도와 맛, 향, 식감, 씨가 없어 먹기에 편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영천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베테랑 강소농을 만났다. 명신포도원을 운영하는 김동섭(54) 대표다. 김 대표는 샤인머스캣 7천920㎡와 거봉 3천960㎡, 골드스위트 1천980㎡를 재배한다. 연간 2억5천만 원의 조수익을 거둔다. ◆귀농 24년…이젠 베테랑 농부김 대표는 군대 제대 후 포항의 철강회사에서 일했었다. 보수나 복지혜택은 좋았으나 회사생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자기 주도로 일하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평생 포도농사를 지었다. 경운기에 포도를 싣고 공판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정에 큰 변화가 왔다. 당장 포도농장을 운영할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군 포도농장을 버릴 수도 없었다. 결국 김 대표가 귀농을 했다. 아버지의 사고는 가슴 아팠지만 농사일은 즐거웠다. 포도 재배기술을 익히고, 농장을 관리하는 일이 적성에도 잘 맞았다. 자신의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듯이 일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고,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것도 좋았다. 영농 규모도 점차 늘려 포도 면적이 1만6천500㎡에 이른다. 규모의 확장만큼 소득도 늘었다. 영농경력이 늘어난 만큼 기술도 쌓였다. 이제는 베테랑 농부로 통한다. 샤인머스캣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특정 품종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샤인머스캣과 거봉, 골드스위트의 3품종을 재배한다. 내년에 미인포도를 추가로 심을 계획이다. 품종의 다양화를 통해 소득의 안정화와 노동력의 분산을 기하고, 단일 품종 재배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농업의 포트폴리오를 실천하는 것이다. ◆성공비결은 공부귀농 초기에는 캠벨얼리와 거봉을 재배했었다. 재배기술이 부족해 고품질과 다수확은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 자신만의 기술과 비법을 가지고 포도를 재배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농가마다 다른 기술을 배워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농업에 대한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농업기술센터를 드나들면서 전문교육으로 문제를 줄여 나갔다.교육을 받고 자신의 농장에서 실천함으로서 기술력을 쌓아나갔다. 포도 마이스터 대학에서 2년간 포도 재배법을 공부하고 일본 견학을 3회나 다녀왔다. 2014년 일본 견학에서 샤인머스캣의 맛에 매료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재배가 막 시작되는 시기여서 많은 농가들이 주저하고 있었다.가락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했다.“앞으로 가장 유망한 포도 품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상인이 “맛과 당도, 저장성 등을 감안 할 때 샤인머스캣이 가장 인기 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6월 묘목을 심기에는 다소 늦은 시기였지만 포트묘를 구입해 심었다.정확한 재배력도 기술도 없었지만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2년차에 첫 수확을 했고, 높은 가격에 팔렸다. 2㎏ 한 상자에 2만 원을 받았다. 재배 방법이 비슷한 거봉의 가격과 비교하면 대박이었다. 샤인머스캣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영천과 상주, 김천지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3년 전에는 가락동시장에서 4㎏ 한 상자에 7만2천 원을 받아 상위권을 기록한 적도 있다. 이 같은 성과는 18브릭스를 넘어서는 고당도에 맛과 향, 식감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한 송이가 700g 정도로 규격화 된 포도를 생산 한 것도 고품질로 인정받은 큰 요인이었다. 김 대표가 베테랑 농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포도에 대한 끝없는 공부와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실천하는 것이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농사는 협업, 농사꾼 몫에 충실‘농사는 ‘천·지·인’의 협업사업이다’는 것이 김 대표의 농사철학이다.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서도 안 되지만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힘을 모으고 조화를 이룰 때 맛과 다수확이 보장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햇볕과 비와 기온, 바람 등은 하늘의 일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태풍과 가뭄도 마찬가지다. 땅도 비슷하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과일이 잘 자라는 땅이 있고, 곡식이 잘 자라는 땅이 있다.땅마다 지력도 다르다. 작물을 계속 재배하면 지력은 점점 떨어진다. 모두를 바꿀 수는 없지만 보완은 할 수 있다. 퇴비를 뿌리고 객토를 해야 한다. 사람이 할 일은 관찰과 관리다. 작물이 자라는 것을 살펴보고 관리한다.비료도 뿌리고, 병해충 방제도 한다. 김 대표도 다르지 않다. 매일 농장을 둘러보고 잎과 줄기와 열매를 관찰한다. 땅의 상태도 살핀다. 생육상황에 따라 비료와 영양제의 종류와 량을 결정하고 시기를 정한다. 토양의 수분함량에 따라 물을 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토양의 물리성을 파악하고 나무의 성장속도, 지상부와 지하부의 균형도 맞춰야 한다. 이처럼 천·지·인의 협업이 이뤄질 때 고품질과 다수확의 여부가 결정된다. 김 대표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선진농가를 벤치마킹하고 교육을 통해 새로운 기술도 익힌다. 저탄소인증과 GAP인증도 받았다. 생산량의 90%를 가락동시장에 출하하고 10%를 직거래로 판매하지만 직거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재구매 고객이다. 그는 “농사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타산지석이란 생각으로 배우고 일한다”며 “어디를 가든 무엇이든 배우고, 내 농장에 적용한다”고 말했다. ◆샤인머스캣은?샤인머스캣 열풍은 태풍보다 강한 듯하다. 블로그에서 ‘#샤인’을 검색하면 66만 건이 뜬다. 1988년 일본에서 육종한 청포도다. 높은 당도에 머스캣 향과 망고 맛,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씨 없는 포도로도 통한다. ‘100년에 한 번 정도 나올만한 포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8월 하순에서 10월 중순까지 수확한다. 저장성이 좋아 수출에 적합하다. 최근에 장기저장기술이 개발돼 6개월 이상 저장도 가능해, 설 명절은 물론 3월까지도 맛볼 수 있게 됐다. 2006년 국내에 처음 재배됐으며, 최근 재배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육종했지만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다. 일본이 해외품종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중국과 베트남으로 많이 수출된다. 일본이 해외품종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샤인머스캣의 이 같은 인기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기회가 됐다. 18~20브릭스 정도의 당도와 한 송이가 700g 정도인 것을 최상품으로 본다. ◆즐기는 명품농사귀농 이후 포도 재배에 주력했고, 규모도 점차 늘려 1만6천500㎡에 이른다. 이제는 점차 규모를 축소해 전문화를 이룰 생각이다. 체력과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좀 더 확대도 가능하지만 너무 농사일에만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10년 후의 목표가 3천960㎡로 현재의 20% 수준이다. 단순한 규모의 축소는 아니다. 전문화, 집중화를 통한 고품질을 달성해 소득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명품포도의 고가전략이다. 규모 축소에 따른 시간적 여유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다. 여행도 하면서 여가를 즐긴다는 계획도 있다. 김 대표는 “등산 마니아였지만, 농사일로 인해 그동안 산을 멀리 했었다”며 “앞으로는 전국의 명산들을 오르면서 건강도 관리하고, 일과 여유를 함께 누리는 소확행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산 정상에의 행복감과 최고 품질의 포도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함께 누리는 농사꾼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농장명: 명신포도원▲대 표: 김동섭▲구입문의: 010-3813-9384▲소재지: 경북 영천시 북안면 신리리 79-5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