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넘어 공존과 포용의 사회로

양극화를 넘어 공존과 포용의 사회로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2011년 9월17일, 그러니까 꼭 8년 전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든 것이다. 20대 청년들이 많았다. ‘Occupy Wall street. (월가를 점령하라.)’ 대표 슬로건이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로 불리게 됐다.‘We are the 99%. 우리는 99%에 속한 사람이다.’ 자주 등장한 구호였다. 극소수 수퍼리치(거대 부자)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궁핍한 다수 서민의 저항이었다. 일부는 인근의 리버티 플라자공원에서 노숙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행진도 있었지만 불의한 체제와 궁핍한 삶을 주제로 한 토론도 활발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그들의 주장과 함성을 전 세계로 퍼 날랐다. 사진들과 함께였다. 지구촌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공감과 지지가 쇄도했다. 시위대들은 지구촌 곳곳의 목소리들을 모으기로 했다. 10월15일을 ‘전세계 공동의 날’로 정했다. 82개국 900여 개 도시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저항의 세계화’라 할만 했다. 한국의 시민들도 호응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로 모였다.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 현장에 걸린 현수막 구호였다. 1%를 위한 정책들과 투기자본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뤘다. 월스트리트 점거(오큐파이) 시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는 사실에 있다. 이 때의 자본주의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자본주의’였다. 성공한 소수가 한 사회의 부와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패한 다수는 빈곤과 절망에 처해지는 자본주의였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부자 나라에서는 식량이 넘쳐났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발육부진과 기아 사망이 넘쳐났다. 양극화가 주 타깃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대 99의 사회’라는 슬로건과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도 양극화를 겨냥한 것이었다. 소수 투기자본의 탐욕과 서민의 생활고, 높은 실업률과 극심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이슈화시켰다. 1980년대 이후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토론도 활발했다.그러한 우려와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 ‘정글자본주의’, ‘20대 80의 사회’ 등의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널리 읽혔고 ‘희망고문’, ‘헬조선’이라는 비아냥이 청년세대에 널리 퍼졌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동조시위에 참여한 80% 혹은 99%에 속하는 서민들도 주로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성토했다. 다행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1년 전인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지구촌을 휩쓸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모델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각 나라들에서 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대안체제를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도 빨라졌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도 영국의 블레어총리와 사회학자 기든스, 그리고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에 의해 ‘제 3의 길’ 노선이 주장되고 실천된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그렇게 된 계기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강요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대표적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급증했고 중산층은 붕괴되었다. 노숙자로 전락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진행된 양극화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는 탄식과 신음이 넘쳐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뿐만이 아니라, 실업자로 혹은 신용불량자로 대학문을 나서는 청년들의 절규도 숙지지 않고 있다. 3포, N포의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미래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 절박하고 시급하다. 사회경제 시스템의 운영 원리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서 공존과 포용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그래서 80% 혹은 99%가 활력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고개숙인 청년들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8년째를 맞는 월스트리트 점거시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숙제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농무

농무(農舞)/ 신경림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계간『창작과 비평』 1971년 가을호 .........................................................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를 발표하면서 시업의 길로 들어선 시인은 곧 낙향해 10년 넘도록 시를 쓰지 않았다. 1956년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침울하고 가난한 시기였다. 그의 낙향은 등단 무렵 유행한 모더니즘 정서와 자신의 시풍이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술회하였다. 이후 농사와 날품팔이로 전전하던 그는 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을 재개했다. 10년 동안 만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노래와 얘기를 대신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쓴 시편들이다. 시에는 우리들 삶의 모습과 정서가 표현되어야 하고,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때 감동을 준다는 시론을 그는 줄곧 펴왔다. ‘농무’는 선생의 평소 시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으로, 고단한 민중의 삶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내 농민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한국 현대시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처음엔 이문구 작가의 주선으로 한 ‘유령출판사’에서 3백부 자비로 출간되었던 이 시집이 2년 뒤 75년 ‘창비시선’ 1호로 간행되는데, 지금까지 75쇄는 찍었을 것이고 어림잡아 75만 부는 족히 팔려 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살면서 시집을 한 번도 사본 일이 없거나 평소 시를 무슨 사교가 전파하는 전도 ‘찌라시’처럼 여기는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시’일 수도 있겠다. 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생생하게 떠올려주는 시는 농민의 울분과 암담함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렇듯 힘 있는 언어로 독자들을 감동시킨 시가 전에 또 있었던가. 당시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짓는 농민의 답답한 심정과 발버둥치는 모습이 오히려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변주된다. 그들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거나 ‘서림이처럼 해해대’며 즐거운 듯하지만(꺽정과 서림은 홍명희의 '임꺽정'에 등장하는 인물로 서림은 나중 꺽정을 배신한다), 결국은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며 자신들의 삶을 자학하거나 체념하고 만다. 오늘날 농촌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흘린 땀에 비해 그 대가는 알량하고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추수를 앞둔 들판에서 피를 뽑으며 주름웃음 짓는 늙은 농부의 모습이 TV에 비춰졌다고 신바람이라 생각지는 마시라.

사위질빵 꽃

사위질빵 꽃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바람결이 한결 선선하게 다가온다. 추석이 지났다. 아부다비에 사는 조카는 늦은 밤 사막의 보름달을 보내왔다.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보며 가족의 건강을 소원하면서. 5시간 늦은 시차로 그제야 뜬 달을 보면서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렸으리라.유난히 일찍 찾아온 추석, 눅눅하던 날도 말끔해져 명절 분위기를 더했다. 고운 옷으로 갈아입은 가족이 차례를 모시러 모여들었다. 명절 연휴가 되지 않으면 좀체 틈을 내기가 힘든 직장인들이라서 훨훨 세계를 향해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조상 음덕을 잊지 않으려고 몇 시간씩 달려오는 것을 보니 대견하다. 가족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일상의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 가치가 절실하게 느껴지니 세월이 절로 사람의 마음을 어른처럼 만들어 가는가 싶다.추석이면 둥근 달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깔아 시 영상을 보내주는 이가 이번에는 ‘달빛 기도’를 전해왔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중략…//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외국에서 온 식구들이 인사하고 싶다고 하여 친정어머니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하늘도 한결 가을 분위기다. 그림 같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서 산을 오른다. 부모님을 찾아가는 길, 노랑나비와 호랑나비가 산 아래까지 내려와서 춤을 춘다. 우리의 길 안내를 하려는 모양이다. 조금 뒤처져 걷고 있으면 다시 날아와 우리 곁을 맴돈다. 걸음을 재바르게 옮기면 다시 저만치 앞에서 날개 짓을 한다. 수풀 우거진 산길이라 길이라도 잃을까 봐서 노심초사 손을 이끄는 것 같다. 산소를 찾아 오를 때마다 나타나는 저 나비를 보면, 꼭 어머니 아버지의 현신인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 온다. 돌아보니 동생의 눈가에도 물기가 촉촉하다.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부모의 숨결인 것 같다.산소가 보이는 산 중턱에 올라서니 묘지 둘레에 초록의 망이 빙 둘러쳐 있다. 제부가 멧돼지 방지용 울타리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한여름에 들렀을 때 우거진 잡풀 덩굴 속에서 무덤 위에 난 멧돼지의 난동 흔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안쓰러워 무더위 속에서 바로 시내에 나가서 고춧대를 지지하는 알루미늄 막대기를 군데군데 세워 망 울타리를 만든 것이라니. 힘센 멧돼지가 머리 조금만 쓰면 그까짓 쯤 쉽게 떠밀어 버릴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 울타리는 제부의 정성을 아는 듯 오롯이 세워둘 때의 그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사위의 장인 장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함에 더없이 고맙고 대견하다.지극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들에 감동하였을까. 산소 주변을 둘러보니 심어둔 적도 없었는데 하얗게 피어난 꽃들이 또 하나의 울타리처럼 빙 둘러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위질빵이었다. 상아색에 가까운 하얀색이랄까. 꽃을 활짝 피운 덩굴 풀, 사위질빵이 이웃한 나무들을 감아 올라가 빈틈없는 울타리로 서있다. 하얀 꽃을 머리에 잔뜩 이고서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어머니의 함박웃음같이.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은 장모가 사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식물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수확물이나 땔감을 나르는 도구로 지게였는데 두 어깨로 무거운 짐을 지기 위해서는 지게다리 양쪽에 튼튼한 질빵을 만들어 달아야 많은 짐을 져 나를 수가 있었다. 모처럼 처가에 온 사위에게 농사일을 덜 시키기 위한 장모의 지혜로 사위질빵 줄기로 만든 지게 질빵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 끊어지기에 조금만 지고 나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식물의 줄기를 걷어서 질빵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식물이다. 여러 가닥의 줄기가 뻗으면서 자라나 상아색 꽃망울을 달고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위질빵을 보니 어머니가 평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 선한 사위의 얼굴이 다시 보인다. 참으로 흐뭇하다.깊어가는 가을이 오면 하얀 머리카락 같은 털을 달고 사위질빵 씨앗이 맺게 되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더 멀리로 날아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서 더 튼실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리라. 사위질빵은 꽃도 곱지만, 향은 자연 속 시인인 듯 은은한 향기로 여운을 남긴다. 열매가 익어 가면 작은 씨앗 끝에 흰 깃털이 호호백발 할머니의 머리카락처럼 짧게 밑으로 처져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아들딸 낳고 잘 살라’는 부모님의 소망을 간직한 듯, 사위질빵꽃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며.

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중략)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중략)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시조집 『해남에서 온 편지』(태학사, 2000)....................................................진한 남도사투리의 정서가 따로 해석이 없어도 통째로 스며든다. 시인이 이 시의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어 마저 소개한다.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시를 쓰기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엄니도 하늘로 간 ‘애비’를 따라나섰고, 고향집도 사라져버렸다고 한다.그리움은 보고픈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의 묵힌 정서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그리움이 별밭에 일렁이는 은하수라면 고향에 계시는 부모들의 대처로 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차라리 겨울비탈에 선 애절한 나목이다. 부모둥지 떠난 자식들의 고향 찾는 횟수가 고작 일 년에 두어 번. 그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너나없이 승용차가 있고 씽씽 고속열차가 달려도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힘들게 고향을 찾아와서도 재깍 내뺄 궁리만 앞선다. 처음부터 복귀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듯하다. 그래야 잘나가는 자식의 유세처럼 보인다.우리 ‘엄니’들이 일찌감치 명절날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그리움을 예약하시는 마음에 비해 추석 한나절부터 서두르는 귀경행렬을 보면 도회 사는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참 야속하고 사무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노모는 홀로지만 참으로 꿋꿋하다. 짐짓 자식들에게 유혹의 추파를 보내지만 쉽사리 먹혀들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안다. 수녀가 되어 종신서원 받은 딸자식과 엄마의 특수한 관계와 사정은 별개로 치고, 지금 우리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그 불균형은 장차에는 더욱 더 심화되리라.어머니 안 계시는 추석을 세 번째 지냈다. 남 보기엔 무심한척 해도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겠다. 작은 아이와 둘이서 ‘오붓하게’ 차례를 지내고 한 상에서 음식을 먹고 술도 한잔 했지만 좀처럼 적막함은 사위어들지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와는 지방의 ‘신위’ 앞에 절을 올리는 게 고작이고 손녀 지혜와는 영상통화로 만족해야했다. 나도 어쩌다가 ‘노인 홀로 가구’가 되어있지만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받들어줄 것이란 기대는 거의 무망하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 못지않게 정서적 안정과 자립이 필요한 때다. 도리 없다, 저 달은 언제나 둥글고 환한 얼굴이지만 자식에 대한 기대는 팍팍 줄이고 그리움 또한 탈탈 털어내는 수밖에는.

우리에게도 노변정담(爐邊情談)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노변정담(爐邊情談)이 필요하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앤 리차드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제45대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유명 여류 정치인이다. 그녀가 정치인으로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1988년 아틀란타주에서 있었던 민주당대회 기조연설이 엄청난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연설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다.“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너무도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이 제가 알았던 지도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에게 희생이 필요하며, 이러한 어려움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준 지도자들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다르고, 또는 고립되어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관심사가 있어서 힘들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고, 국가적 사명감을 부여해 주었습니다.”어린 시절 라디오를 통해 당대의 지도자를 접하며 자란 그녀가 이렇게 말한 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다. 고비 때마다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 불리는 대국민 담화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자국민들에게 국가적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그렇다면 도대체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까?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대국민 담화는 취임 직후인 1933년 3월12일 ‘은행위기에 대해’라는 13분짜리 연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작 노변정담이라 칭해진 것은 이것부터가 아니라 ‘유럽전쟁에 대해’라는 2번째 담화부터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평소 참모들과 벽난로를 에워싸고 대통령 담화문을 만들고 암기한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CBS 방송 경영진이 2번째 담화 직전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노변정담이라 칭한 것이 유래가 된 것이다.노변정담은 당시 미국의 명운을 좌우할 대내외 정책과 법안 등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것만으로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고 정책 추동력이 생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2가지 특징이 노변정담에 없었다면, 아마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커녕 당시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첫번째는 노변정담이 마치 친구를 대하는 듯한 진심 어린 말투와 염려스러운 어감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큰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1차 담화문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내 친구들(My Friends)’로 시작되어, “이것은 나의 문제 이상으로 당신들의 문제입니다. 일치단결한다면 잘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와 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1, 2인칭을 써서 친근하게 매듭지어진 것처럼 말이다.두번째는, 노변정담이 주요 정책이나 법안을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명료하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수많은 소문과 억측에 편승하지 않도록 예방했다는 점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23일의 ‘전쟁의 경과에 대해’라는 담화를 발표하기 전 국민에게 세계지도를 준비하라고 요구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계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속 번영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디서 전쟁을 하고 있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등 국민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변정담이다. 우리 모두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분열로 치닫는 사회를 보면서 위기의 한복판에서 각자도생에 빠져 외롭고 힘든 나머지 위로과 격려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인들이 누렸던 것처럼 이번 추석에는 ‘내 친구들’로 시작되는 노변정담이 꼭 듣고 싶다고 한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추석 / 권선희

추석 / 권선희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겄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재?/ 글캤재?-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애지, 2017)...................................................................추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얼까? 고향, 가족친지, 둥근달, 송편, 황금들녘, 성묘, 차례, 한복, 선물 그리고 고된 노동, 처량함, 귀성길 정체, 용돈, 고스톱, 추석 특선영화... 요즘은 긴 연휴와 해외여행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환한 둥근 달은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총체적으로 대변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나 사람을 떠나보내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의 초점이 둥근달로 모인다. 가만 달의 숨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설렘이고 고향땅 부모이며 지상에 부재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살아계신 고향의 부모로서는 달려올 자식들에 대한 기다림이리라. 시에서 ‘금마’는 경상도에서 3인칭 남성을 칭하는 대명사다. 비록 가족은 아닐지라도 화자에게는 피붙이나 다름없는 친숙했던 이웃인 것 같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던 아이가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여다볼 낯짝이나 있을까 연민한다.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처묵고는 사이’ 소식 없는 것이라 애써 위안한다. 이제 이 땅의 모든 순한 길은 그 고향을 향한 설렘과 그리움의 등불로 환해졌다. 지금은 비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지만 보름달을 볼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양쪽 부모 다 계시고 고향의 정경이 고스란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날갯죽지 다 찢겨나가고 고향 또한 낯선 객지가 되어버린 이도 있으리라. ‘금마’도 돌아올 길을 잃어버린 날개 잃은 천사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간직된 고향의 원형이야 달라지랴. 다만 부모가 아무도 안 계시거나 가고 싶어도 찾아갈 형편이 못 되는 이에겐 둥근달이 내내 심란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 빚던 어린 시절의 고향이 지금은 너무 아스라이 있다. 어머니가 개시로 내 입에 가장 먼저 넣어주었던 그 송편 맛은 잊을 수 없다. 하늘보다 내 마음에 서둘러 먼저 뜬 둥근달이 그리운 얼굴들과 포개어진다.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없는 이웃의 얼굴들과 고단한 현실로 작아지고 모난 마음의 한 구석도 본다. 저 달빛에 젖은 마음의 꽃가지가 휘면서 까닭 모를 눈물이 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절망을 떠올리며 부모님께 다 하지 못한 도리를 생각한다. 자식들에게 태만했던 지난날의 회한도 불쑥 치밀어 오른다. 거처를 옮기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혼자 조용히 보낼까했는데 ‘뜻밖’에 작은애가 올라온단다. 내 집에서는 평시에도 달이 훤히 잘 보이는 편이다.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나도 작은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삭혀진 그리움도 소환하여 되살려볼 참이다.

“저도 짝짝이인걸요”

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 저도 짝짝이인걸요일주일 전에 수술한 환자가 병원을 찾아왔다. “좌우 눈썹의 높이가 짝짝이라고 다들 한 마디씩 해서 너무 걱정이 되어서 왔어요, 잘못된 거 아니에요”라고 한다.수술하고 나니 가족들이며, 친구들이 다들 와서 한 마디씩 하고 가는데, ‘짝짝이’가 되었다고, 지금 재수술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해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 전에 찍었던 환자의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올려놓고 함께 보았다. 좌우 얼굴이 서로 달라서 눈썹의 높이가 서로 달랐던 수술 전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얼굴에 보였던 불만스러운 모습이 사라지고,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언제쯤이면 같아질까요” 라는 질문에 “얼굴의 모습이 좌우가 서로 달라서 낮은 쪽 눈썹을 조금 더 당겨 올려놓았으니 시간이 지나고 부기가 빠지면 비슷하게 될 겁니다. 조금씩 더 좋아질 것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답했다. 가끔 수술 전 사진을 보여 주어도 받아들일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수술 전에 이러한 내용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한 것이 있는 수술청약서에 자신의 글씨로 서명한 것을 눈앞에 보여주면 어쩔 수 없이 수긍한다.수술하기 전에는 내가 해 준 말들을 흘려 듣느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는데, 수술을 하고 나서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고 나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사람들의 얼굴을 누구나 좌우가 다르다. 필자의 얼굴도 좌우가 조금 다르다. 그래서 한쪽 눈에만 쌍꺼풀이 살짝 보이고 다른 눈은 쌍꺼풀이 다 덮여서 좌우가 ‘짝짝이’다. 눈썹의 높이가 서로 다른 탓이다.그래서 수술하기 전 환자들에게 얼굴의 좌우가 다르다고 “제 눈도 짝짝이인걸요”라고 말해준다.사람의 눈에 어떤 얼굴이 가장 예쁜 얼굴로 보일까? 여러 연예인들의 얼굴 모습을 보여주고 그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을 고르게 했더니, 얼굴의 좌우 모습이 자로 잰 듯이 똑같은 사람의 얼굴이 가장 많이 선택이 되었다고 한다.즉 사람의 심리 속에는 좌우의 얼굴 모습이 같을 때 가장 미인이라고 느끼는 성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성형외과 의사들에게는 얼굴 전체 모습의 좌우를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같아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눈, 코, 턱 등 얼굴의 좌우가 다른 것을 같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한 분야가 되었고, 중년이 된 경우에는 좌우의 얼굴 주름이 서로 다른 것을 맞추어 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좌우가 서로 다른 것을 교정하는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후 이것이 완전히 같아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껏 좌우가 다른 모습의 형태와 습관을 가지고 살아온 모습이라, 비록 수술로 교정을 해 주었다 하더라도 수술 부위 주변의 근육이나 인대, 조직이 여기에 맞추어 변화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이런 경우에는 수술 전 서로의 차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환자와 충분히 상의해서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교정할 것인지 결정한 후 수술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수술과정에서 교정하는 양이 양쪽 눈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회복기간 역시 좌우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그렇기 때문에 수술을 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인내심과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처음 부기가 빠지는 1~2주 동안은 어느 정도 같아지는 것 같다가도 그 이후에는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는데 그 때부터 걱정이 늘어진다.심지어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거울만 들여다본다는 사람도 있고, 매일 한 번씩 전화하는 경우도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약간은 무던하게 지내는 것이 차라리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수술을 많이 한 쪽의 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결국 같은 모습이 될 텐데 아무래도 조급한 마음이 앞서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한다.그런 걱정을 안고 있는 환자들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너무 걱정 마세요.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당직변호사

▲12일 이혜영 ▲13일 이환희 ▲14일 이효주 ▲15일 임성우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자영업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자영업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몰락, 벼랑 끝, 빈사 상태, 한숨…요즘 자영업을 다룬 언론사 기사 제목에 포함된 단어들이다. 각종 정치적 이슈로 우리 사회가 보수, 진보라는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동안 자영업 대란, 자영업의 몰락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말이다.이같은 현상은 통계청 자료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8월말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가구 가계소득 증감률 추이’에 따르면 국내 가계사업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3분기 연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사업소득은 개인이 계속적으로 사업을 해 얻은 순수익 중 가계에 들어온 금액을 말한다. 가계사업소득이 줄었다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수익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2분기 국내 가계사업소득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8%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3.4%, 올해 1분기 1.4%의 감소율을 보인 이후 3분기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이는 일자리를 잃은 빈곤층이 급증하면서 근로소득마저 계속 내리막길을 걸은 결과이기도 하다. 소득 하위 20%(1분위)에서 근로자가구비중은 지난해 2분기 43.1%에서 올해 2분기에는 29.8%로 대폭 내려앉았다. 현재 소득을 기준으로 최하위층 가구의 70%가 자영업자 또는 무직자 가구이고, 근로자 가구는 불과 30%라는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특히 하위계층이 일자리를 잃은 결과다.특이한 것은 하위계층의 사업소득은 늘어나고 상위계층의 사업소득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의 사업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5.8% 증가했다. 2분위(하위 21~40%), 3분위(소득 41~60%)의 사업소득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1%, 4.1% 증가했다. 반면 4분위(상위 20~40%)는 16.6% 감소했고 5분위(상위 20%)에서도 0.5% 감소했다.이를 두고 청와대의 통계해석이 구설에 올랐다. 1~3분위 사업소득이 증가한 것을 두고 올해 2분기 전체적인 소득 수준이 상당한 개선이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통계청의 발표이후 “작년 1~2분기에 비해 올해 1~2분기가 전체적으로 나아졌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전문가들은 어쩔 수 없이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본다. 자영업자들의 실질 소득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4분위에 있던 자영업자 소득이 줄어들면서 3분위로 내려앉고 3분위는 2분위로 떨어지면서 하위계층의 사업소득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문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자영업자들은 희망을 잃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연적으로 분배와 성장이 이뤄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는 정책과는 정반대의 결과다.일부에선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작년 기준 자영업자 수는 568만명으로 폐업률(창업자 대비 폐업 비율)이 72.2%에 이를 만큼 자영업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들의 몰락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제켜두고 개인 탓으로만 보는 것도 맞지 않다. 실제 50대 이후엔 재취업의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고 20~30대들은 취업문턱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이런 노동시장의 문제가 이들을 자영업이란 불구덩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결국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게 자영업의 몰락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쉽게도 이때까지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부정책은 카드수수료 인하와 소상공인 경영자금 지원이었다. 청년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중소기업 일자리 확대를 위해 쓴 그 많은 예산에도 효과는 미미하다. 당장의 실적보고용 정책이나 일시적인 자금지원 정책은 이들의 몰락을 잠시 늦추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빚을 내서 겨우 사업을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은 폐업조차 맘대로 못한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임금은 조금 적더라도 재취업이나 업종변경을 할 수 있도록 길을찾아 주는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자영업자들이 정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겠는가.

대구시 신청사 후보지 선택 방법

대구시 신청사 후보지 선택 방법오철환객원논설위원 대구시 신청사 유치경쟁이 지역 간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총선과 맞물려 해당 구청들이 배수진을 치는 모양새다. 다들 숨이 넘어간다. 이와 관련 대상후보지의 적극적 입지 평가와 더불어 상대적 약점을 우선 따져볼 필요가 있다.중구의 현 위치부터 본다. 현 주차장 부지에 최소 지하 5층, 지상 50층 이상 랜드마크를 민관공동사업으로 추진할 여지가 있다. 관용 및 공용공간을 제외한 공간을 면세점 등 품격 있는 생활공간으로 분양하는 조건이다.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민관공동사업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점이 최대강점이다. 스카이라운지에 전망대까지 갖춘다면 관광산업에도 기여하리라 본다. 국채보상로를 따라 지하공간을 조성하여 중앙지하상가와 연결하면, 국채보상공원, 2·28중앙공원 및 동성로 중심상권은 물론 약전골목, 근대골목 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이는 시너지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도심 활성화의 기폭제가 되고, 대구경제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경상감영과 대구읍성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다. 지하철 1호선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접근성도 좋아진다. 결정적 약점이라면 드림저축은행을 비롯한 인근 땅을 매입하는 수고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점이다. 신청사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초래될 도심 공동화와 심리적 박탈감이라는 부작용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다음은 북구의 옛 도청 부지를 살펴본다. 대상 부지를 중앙정부로부터 확보할 수 있고, 도청이 있던 곳이라 행정타운 기능에 익숙한 곳이다. 배산임수로 풍수가 좋다는 소문도 플러스알파다. 어떻게 설계하고 개발하느냐에 따라 그 간극은 비록 크지만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백지상태의 공간을 어떻게 가공하느냐는 부지 선정 이후의 과제다. 부지 선정에 영향을 미칠 사항은 아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워의 혼잡비용과 경북이 버리고 간 땅이라는 점이 취약점으로 작용한다.달서구의 옛 두류정수장 부지도 유력하다. 지하철 2호선과 달구벌대로에서 멀지 않다. 대구시 소유로 예산이 별도로 지출되지 않긴 하나 땅값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비록 시유지라 하더라도 시가상당액만큼 가치가 희생되기 때문에 공짜는 아니다. 인근에 있는 이월드, 두류공원, 코오롱음악당, 문화예술회관 등은 양면성이 있다. 기존시설은 상호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이웃이긴 하다. 하지만, 힐링과 거리가 있는 시청의 딱딱한 업무가 인근지역과 잘 어울리는 기능인지 의문이다. 평상시에도 유동인구가 많고 항상 행사가 끊이지 않는, 현 교통 혼잡지역에 유동인구를 불러들이는 시청이 굳이 또 들어와야 되는지 고민해볼 부분이다.마지막 후보지는 달성군 화원이다. 달성군은 대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신성장허브다. 화원은 1호선이 지나는 낙동강변의 지리적 중심이고, 달성군에서 부지를 무상 제공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군지역이라는 심리적 거부감과 잠재이용자의 누적이동거리가 큰 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각 후보지의 개략적 사항을 짚어 보았다. 비교평가에 정성적 성격이 강한 만큼 객관성이 담보되긴 어렵다. 항목별 가중치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발상의 전환이 유용하다. 기회비용 개념을 활용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자체 또는 그러한 기회가 갖는 가치’를 말한다. 신청사로 인해 포기된 최선의 기회를 가치로 환산하여 그 가치가 가장 작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각 후보지의 기회비용을 추산해 보기위해 신청사가 들어선다면 포기되어야할 최선의 기회를 각각 상정해 본다.현 시청 부지는 공원이나 공용주차장 용도가 신청사로 포기될 최선의 기회일 수 있다. 옛 도청부지는 경북대, 창조센터 등과 연계한 ICT파크가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최고최선일 수 있다. 신청사로 인해 포기해야 할 기회는 ICT파크다. 옛 두류정수장 부지는 인근지역과 시너지가 가능한 힐링공간이 최유효사용일 수 있다. 신청사가 들어선다면 힐링공간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다. 화원은 신성장허브의 중심으로 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신성장허브 핵심을 포기하는 대가가 기회비용이다. 공원과 주차장, ICT파크, 힐링공간, 신성장허브의 중심 등이 각각 상정된다. 신청사로 인해 최선의 다른 용도를 포기해야하는 대가가 가장 작은 곳이 최적입지다.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최종선택은 시민의 몫이다.

추석 무렵 / 맹문재

추석 무렵/ 맹문재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가/ 열무맛처럼 담박했다/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 인사 같았고/ 떡집 아주머니의 손길 같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편안한 나의 사투리에도/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터넷 검색이 필요 없었다/ 월말 이자에 쫓기지 않았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를 태운/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 할머니의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고/ 우체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유롭게 햇살을 받았다/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고/ 신문 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계간 《애지》 2006년 가을호....................................................고향은 이렇듯 ‘겁나게’ 편안하고 ‘억쑤로’ 푸짐해야 마땅하다. 고향으로 달음박질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렇듯 무장해제를 당하기 위해서다. 말씀의 긴장이 필요치 않고 주머니가 좀 심심해도 상관이 없다. 혁대를 조일 이유도 서류를 매만질 필요도 없다. 일기가 어떻든 심히 염려할 바는 아니며, 인터넷이니 SNS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려도 나쁘지 않겠다. 얼마간은 탱자탱자하며 대체로 ‘운짐’달 일이라고는 없다.추석 무렵의 고향은 지난 계절의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으므로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그러니 여기는 모두 황토빛깔의 동색이라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하고, ‘신문 대금 수금원의 눈빛’마저 착할 수밖에 없겠다. 고향이 반도의 어디든 모두 느낄 수 있는 고향의 정취요 정서인 것이다. 설령 체감하기 쉽지 않더라도 예전의 풍경을 전하는 이 시처럼 그러면 그런 것이고 그리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고향의 넉넉함과 안온함과 친근함도 하루 이틀 잠깐 머문다면 제대로 느끼기가 쉽지 않거니와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가는 시간 빼고 뭐 빼면 남는 게 없다. 다행히 올해 추석은 주말에 물려 4일 연장 휴일이니 휴가로서는 적당한 수준이다. 실속 있게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여행가방을 미리 챙겨두었을 것이다. 이럴 때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내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얄밉기도 하다.‘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런 말도 진짜로 입에서 송송 나올 것 같다. 오일장의 좌판도 전보다 물량이 훨씬 풍성해졌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추석물가도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알곡이 완전히 여물지는 않았지만 농심으로 들판은 출렁인다. 이럴 때 둥실 뜬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최소한 3분 이상은 달과 독대하면서 눈과 마음을 씻을 일이다. 떨어져 있던 온 가족이 어울려 맛난 음식 나눠먹으며 추억을 깔깔거려도 좋겠다.느슨했던 가족애를 확인하고 엄마 품 같은 고향의 정취를 빵빵하게 충전해갈 수 있다면 답답하게 꽉 뭉쳐진 세상사도 조금은 부들부들해지리라. 그런데 시내를 다녀보니 거슬리는 게 눈에 띈다. 내년엔 총선도 있고 하니 이것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보면 그만인데, 난삽하게 내걸린 정치인들의 불법 추석인사 현수막. 사람들이 모두 구수해지고 착해져가는 마당에 민심인지감수성이 떨어진 그들만의 빳빳한 사심. 추석 풍경에 티가 아닐 수 없다.

‘자살공화국’ 오명 벗어야

‘자살공화국’ 오명 벗어야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세계 1등 기록을 여러 개 갖고 있다. 양궁,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골프와 같은 스포츠 종목뿐만이 아니다. 공산품도 여럿 있다. 2017년 기준,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제품은 77개에 달했다. 최근 일본이 집중 공격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품목도 5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우리의 문화상품들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노래와 춤에 이르기까지 한류 돌풍이 그것이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 대륙 청소년들까지 열광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BTS를 보라.뿐만 아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 역시 수출품 목록에 올랐다. 독재와 부패에 저항하고 있는 세계의 양심 시민들도 한국의 민주화 의지와 역량을 부러워하며 배우고 있다. 해방 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까지 성공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IT 정보화혁명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 등에서도 세계 일류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비상식적인 도발도 우리나라의 놀라운 발전에 대한 견제 목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하지만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둠도 있고 부끄러운 1등 기록도 여럿 있었다. 청소년 공부시간과 통근 시간,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들 가운데 1등이다. 성별 임금격차와 노인빈곤율도 마찬가지다. 하나 더 있다. 자살률이다. 2003년 이후 줄곧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해 왔다. 불명예요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실제로 우리는 우울한 자살 기사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고 있다. 직장상사의 갑질로 괴로워하던 회사 직원, 생활고에 내몰린 일가족의 자살 뉴스가 툭하면 보도되고 있다.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의 자살 뉴스도 적지 않다. 그를 모방한 베르테르 효과형 자살도 있다. 한참 신나야 할 중고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하거나 학교에서의 왕따, 폭력에 신음하다 자살했다는 소식도 종종 접하곤 한다. 사실상 사회적 타살로 볼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은 것이다.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4.3명이었다. 자살률은 1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집계한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2.1명이었다. 19.4명인 2위 헝가리와의 격차도 매우 크다. 자살자 수는 2017년 기준 1만2천463명이었다. 하루 평균 34.1명, 42분에 한명 꼴로 자살하는 셈이다.사망원인별로 보면 자살은 5위로 집계된다. 교통사고 사망률의 2.5배 수준이다. 하지만 청소년, 청년으로 눈을 돌리면 다르다. 10대와 20대, 30대의 경우는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사망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서 30.9%, 20대에서는 44.8%에 달했다. 가정해체와 학교폭력, 숨막히는 입시체제와 취업난, 과도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9월10일, 오늘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전 세계에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2003년에 제정했다. 우리 정부는 2022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20명 이내로 그리고 연간 자살자 수를 1만명 이하로 끌어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종합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 생애주기별로도 세심하게 예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자살 고위험군 지지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국민 모두도 자살 위기에 놓인 이들에 대한 긴급 대처 방법을 익혀야 한다.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며, 학생들을 극도의 경쟁체제로 내모는 대입 제도와 학교 문화도 개혁해야 한다. 생계난에 신음하는 저소득층과 특별히 자살률이 높은 노인세대를 위한 사회안전망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기업을 비롯해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갑질 관행도 척결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도 바꿔가야 할 것이다.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인 사회통합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생명존중의 문화를 함께 키워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살예방 성과에서도 세계 1등을 차지하면 좋겠다. 오늘,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 그런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